설교/설교

사방에 평안

하마사 2009. 8. 2. 22:04

본문: 대하 15:8-19

찬송: 470장

제목: 사방에 평안

목표: 아사처럼 사방에 평안을 누리며 살게한다.

 

 

평안이란 단어는 국어사전에 ‘걱정이나 탈이 없음’, ‘무사히 잘 있음’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걱정이나 탈이 없이 무사히 살기를 원합니다.

나폴레옹이 독서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병사 한 사람이 와서 물었습니다.

"장군님은 어느 때가 가장 두렵습니까?" 나폴레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발할 때가 가장 두렵다네. 면도사의 칼이 왔다 갔다 할 때면 으스스하기까지 하다네. 그래서 나는 면도할 때 부하를 시켜서 이발사 아들의 목을 잡고 있게 하여 이발사가 내 목을 벨 때는 그 아이의 목도 잘린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네."

나폴레옹과 같은 독재자에게만 두려움과 불안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모두가 다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삽니다. 인간이 겪는 불안과 괴로움은 죽음이 올 때까지 그칠 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평안을 갈망하며 살아갑니다.

 

사방에 평안을 원한다면

 

1. 버려야 합니다.(8)

8절, “아사가 이 말 곧 선지자 오뎃의 예언을 듣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가증한 물건을 유다와 베냐민 온 땅에서 제하고 또 에브라임 산지에서 빼앗은 성읍들에서 제하고 또 여호와의 낭실 앞 여호와의 단을 중수하고”

 

본문은 아사의 제 2차 종교개혁을 다루고 있는 부분입니다. 구스사람 세라와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오는 아사에게 선지자 아사랴가 나타나 하나님께 대한 순종으로 말미암는 축복과 불순종으로 인한 저주를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선지자 아사랴의 훈계를 들은 아사는 제1차 종교개혁에 이어 다시한번 유다왕국에서 우상 숭배를 척결하고 성전을 중수하는 일을 했습니다. 우상을 타파하되 그와 관련된 모든 것까지도 제하고 우상 숭배자들을 징계하는데 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는 비록 왕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며 충고를 듣는 즉시 유다 땅에 있는 우상과 관련된 가증한 물건을 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결단으로 인해 그는 재위 41년 가운데 25년 동안 남유다는 평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마음의 평안을 빼앗아 가는 다섯 가지의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다섯 가지는 탐욕, 성취욕, 시기심, 분노, 교만입니다.

마음에 욕심이 가득차면 평안할 수 없습니다. 자기의 것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해야 하고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더욱 힘써 노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는 말씀이 있듯이 욕심은 죄에 이르게 되고 죄는 결국 마음의 평안을 빼앗아가게 됩니다.

마 19장에 나오는 부자청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자 청년은 이 모든 것을 지키었다고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그 때 주님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자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재물이 결국 그 청년의 평안을 잃게 만들었고 근심하게 하였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는 성취욕은 사람을 발전하게 하지만 지나친 성취욕은 결국 평안을 빼앗아갈 수 있습니다.

질투심과 시기심이 사람의 마음에서 평안을 앗아갑니다.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하기 시작하면 마음의 평정을 잃게 되고 삶을 곤고하게 만듭니다.

사울이 처음에 왕이 될 때는 참으로 겸손하고 훌륭한 인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울왕이 돌변하게 된 이유가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돌아올 때 환영 나온 여인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열렬히 춤을 추며 환영하자 사울이 불쾌해하며 심히 노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나라를 구하고 자기를 구해준 영웅이지만 마음속에 시기심이 생기자 경쟁자로 보이기 시작했으며 결국 마음의 평정을 잃고 다윗을 죽이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가련한 삶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분노가 마음의 평안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화>

징기스칸은 사냥을 위해 매를 데리고 다녔는데, 매를 사랑하여 마치 친구처럼 여기며 길렀습니다. 하루는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매를 공중으로 날려 보내고 자신은 목이 말라 물을 찾았습니다. 가뭄으로 개울물은 말랐으나 바위틈에서 똑똑 떨어지는 샘물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을 잔에 받아 마시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자신의 매가 그의 손을 쳐서 잔을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물을 마시려고 할 때마다 매가 방해하자 징기스칸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칼로 매를 내리쳤습니다. 그는 죽은 매를 치우면서 바위 위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죽은 독사의 시체가 샘물 안에서 썩고 있었습니다.

화를 내는 것은 자칫 일을 그르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사람은 화가 나면 이성이 마비되어 평상시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합니다. 노한 사람은 대개 나중에 후회할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성급하게 성내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 없습니다. 성을 내면 쓸데없는 말과 행동을 하여 싸움이 벌어지고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교만이 평안을 잃게 만듭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는 말씀이 있습니다.

헤롯이 통치할 때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헤롯의 미움을 사서 관계가 매우 악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헤롯의 영토에서 양식을 수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의 시종 블라스도를 설득시켜 왕과 화평을 청했습니다. 약속된 날에 헤롯이 왕복을 입고 왕좌에 앉아 연설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것은 신의 소리지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으므로 주의 천사가 벌을 내려 그는 5일간 중병을 앓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마음속에 있는 욕심, 성취욕, 시기심, 분노, 교만과 같은 것들을 버려야 평안할 수 있습니다. 아사왕은 가증한 우상을 버렸습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그것이 설령 나쁜 것이 아닐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하나님을 싫어하게 만들면 우상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신 축복의 아들이었지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때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브라함처럼 자식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물질, 권력, 명예, 지식, 취미 혹은 어떤 사람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우상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으면 집착이 일어나게 되고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을 버릴 때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음을 알고 버릴 것을 버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찾아야 합니다.(15)

15절, “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저희의 만난바가 되시고 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남한산성에 등산을 가서 산성주변을 돌면서 성을 쌓았던 사람들은 외적의 침입을 막아 평안하게 살기를 원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흉노족을 막기 위해 산을 이어가며 만리나 되는 어마어마한 성을 쌓았습니다. 성안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평안을 기대하며 힘들게 대공사를 했습니다. 외부의 적을 막으면 평안이 찾아오리라 생각하며 오랜 시간을 들여가며 공사를 했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도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 가면 높은 담 주변에 cctv와 경비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혹은 국가나 지역을 떠나 모든 사람들은 평안을 원합니다. 인적이 드문 산 속에 들어가 홀로 마음의 수양을 하며 평안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수도원이나 기도원에 들어가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며 심신의 평정을 찾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나 그렇게 살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모두가 그렇게 살아서도 안됩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혼탁하고 분주한 세상 속에서 살면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살면서도 평안을 찾을 수 있어야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요 14: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화>

많은 그리스도인이 애창하는 찬송가 470장 「내 평생에 가는길」의 작사자는 미국 시카고 무디교회의 회계집사이자 법리학 교수이며 변호사였던 스페훠드였습니다. 시카고 대화재로 미시간 호수변에 투자했던 부동산을 다 잃은 그는 병을 얻은 아내를 요양시키기 위해 유럽 여행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인과 네 명의 아이를 먼저 보내고 화재 뒤처리로 나중에 출발한 그는 가족을 태운 배가 영국의 철선과 정면 충돌 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웨일스에 도착한 아내는 그에게 전문을 띄웠습니다. '혼자만 살아남았음. '

그는 네 자녀를 모두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아내를 데리러 가는 길에 자녀들이 목숨을 잃은 해상을 배로 통과하며 이 찬송가의 가사를 작사했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그 참을 수 없는 슬픔 앞에 이러한 고백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470장 찬송가 1,2절을 불러보겠습니다. 작사자의 마음을 떠올리며 가사를 생각하며 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다함께 찬양>

물질과 사랑하는 자녀들을 잃었습니다. 잃은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평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잃은 속에서도 모든 것을 가지신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에 평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평안하려면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사왕은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하나님께서도 만나주시고 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버림이 없이는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실 공간을 마련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어디에 계실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려면 내 자리를 비워야만 합니다.

버린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으로 채워져야만 합니다.

눅 11장에 이런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갔다가 쉴 곳을 찾지 못해 다시 자기가 있던 사람에게로 갔더니 그 집이 깨끗이 청소되어있자 자기보다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어렵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버리기는 잘 버렸는데 버린 후에 채우지 않으면 허무감이 엄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다 버렸지만 보상이 없다는 실망감이 몰려올 수도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신학교를 다닐 때 신학교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국의 교회들과 후원자들, 학교의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십시일반 헌금을 하여 오늘날 장신대 신축건물이 아름답게 지어졌습니다. 그 때 저도 두 아들이 어릴 때라 돌잔치를 하고 많은 분들이 선물로 돌반지를 주셔서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신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아내와 상의하여 돌반지를 모두 건축헌금으로 기쁘게 바쳤습니다. 그런데 건축을 담당하고 있던 담당자가 건축헌금을 횡령하였다는 소식을 후에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은 맞지만 그 헌금이 개인의 사욕을 위해 쓰여졌다고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씁쓸하고 허전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버릴 것을 버렸지만 내 생각과는 다를 때 마음의 평안이 깨어지기 쉽습니다. 교회분쟁으로 6년간이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수요일에 있을 명도소송 재판과 11일에 있을 교인총회 심리를 위해 매일저녁 교회를 위한 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버릴 것을 버리면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제 그 이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실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다리면 끝은 반드시 선하게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설령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을 끝까지 찾으면 어떤 순간에도 평안을 지속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잠 8:17절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버릴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 하나님이 만나주시고 평안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3. 드려야 합니다.(16-19)

16-19절, “아사왕의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었으므로 아사가 그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니 산당은 이스라엘 중에서 제하지 아니하였으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온전하였더라. 저가 또 그 부친의 구별한 물건과 자기의 구별한 물건 곧 은과 금과 기명들을 하나님의 전에 드렸더니 이때부터 아사왕 삼십 오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으니라.”

 

얼마전에 어떤 권사님이 십일조를 봉투에 써서 헌금해달라고 부탁을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정에 큰 어려움이 생겨 한 달 십일조를 못했는데 그것이 계속 마음에 찔려 2개월분의 십일조를 한다며 6만원을 주셨습니다. 폐지를 수집하여 팔은 돈과 아들이 보내주는 용돈을 모아 바치는 십일조 3만원은 돈의 액수를 떠나 그분에게는 정말로 귀하고 값진 물질입니다. 같은 3만원일지라도 그 값어치는 성경에 나오는 과부의 두 렙돈처럼 주님이 기뻐하시는 헌신의 제사입니다.

사방에 평안을 얻기 위해 헌금을 많이 드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사왕의 아버지 아비야가 북이스라엘 여로보암왕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구별한 것과 아사왕이 구스사람 세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구별해서 놓은 은과 금과 기명들을 하나님의 전에 드렸더니 전쟁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에 물질을 많이 드렸기 때문에 전쟁이 없었다기보다는 그 위에 있는 구절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온전하였더라.”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온전’이란 말은 ‘끝까지 지속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일평생 끝까지 지속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일평생 마음을 드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드린 증거가 그의 할머니 마아가의 태후자리를 폐위시킨 것입니다. 마아가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섬기자 폐위시키고 우상을 찍고 빻아서 기드론 시냇가에 흔적도 없이 불살라버렸습니다. 아사의 철저한 개혁의지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찾으려고 했던 그의 마음의 중심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마음이 없이 물질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없이 시간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없이 몸을 드려 봉사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없이 개혁의 흉내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더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와서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큽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 삶을 드려야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한 두 번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봉사를 할 때도 한 두 번은 어려워도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도 한 두 번은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시면서 지속적으로 효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꾸준하게 지속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번에 약 20일 동안 재판을 앞두고 교회를 위한 기도회를 저녁마다 하고 있습니다. 22일에 명도소송 재판이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연기가 되어 2주일 더 기도회에 참석해야 한다며 힘들어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이번의 기도회 이전에도 매일 저녁 교회에 모여 기도를 지속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꾸준히 새벽기도회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며 기도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찬양대원, 교회학교 교사, 차량부원으로 10년 근속, 20년 이상 근속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처럼 무엇인가를 오래 동안 지속하는 사람들은 아사처럼 마음이 온전한 분들입니다. 왜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왜 그만두고 싶을 때가 없었겠습니까? 마음의 평안이 깨어질 때가 없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마다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을 찾으면서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며 여기까지 오신 것입니다. 교회가 어려움을 당한지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왜 갈등이 없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고통당하는 교회를 생각하며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며 지속적으로 자리를 지키고 계신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은 사방에 평안으로 인도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가정, 일터, 교회, 이 나라와 민족을 평안으로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평생 온전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솔로몬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된 후에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며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그 마음을 보시고 지혜와 총명뿐만 아니라 부귀영화까지 그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혜를 체험한 솔로몬이었지만 말년에 하나님을 향한 그 마음이 변하여 이방의 아내들을 취하면서 그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들여와 결국 나라가 둘로 분열되는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왕상 11:4-5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음이라.”

아버지 다윗의 마음처럼 온전치 못하여 버려야 할 우상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자 하나님이 친히 두 번이나 우상을 버리라고 경고를 하셨지만 그 명령을 무시했습니다. 일평생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며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분쟁이 종식된 이후에 우리의 마음이 변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하며 하나님께 마음을 온전하게 드릴 때 사방의 평안으로 계속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방에 평안을 원하십니까? 동서남북으로 평안한 삶을 누리기 원하십니까?

버릴 것을 버려야 합니다.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탐욕과 성취욕, 시기심, 분노, 교만과 같은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악한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버린 후에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헌신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일평생 온전히 드릴 때 하나님의 평강이 사방으로부터 임할 줄 믿습니다.

이런 평강의 주인공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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