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본이 되는 성도

하마사 2009. 5. 11. 21:25

본문: 엡 5:1-7

찬송: 507장

제목: 본이 되는 성도

목표: 본이 되는 성도로 살게한다.

 

 

좋아하는 사람이나 닮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대로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연예인들을 모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연예인들의 옷이나 물건을 똑같이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심지어는 그들이 잘못하는 것까지도 따라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얼마전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양말을 신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내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왜 지은이가 양말을 신으면서 발을 문지르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린이집을 가기 전에 양말을 신는데 꼭 발을 문지르고 난후에 신는가 했더니 내가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본이 되는 사람을 본받고 모방하려는 습성이 우리들에게 있기 때문에 좋은 모델을 만나는 것이 신앙성장에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는 바울사도가 본이 되는 성도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사랑으로 행하는 성도(1-2)

1-2절,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성도들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과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죄라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희생적인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생활원리가 희생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표현하면서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이 하나님 아버지께 기쁨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향기로운 제물이 되신 것처럼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하며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어지는 단어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있으며 글로 쓰고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뜻도 되지만 강조해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사랑 받기를 원하지만 모두를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랑받기를 원하는 모두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친히 죽으셨습니다. 본이 되는 성도는 바로 이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힘들어도 사랑으로 행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2. 구별된 성도(3)

3절,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게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음행’이란 합법적인 결혼생활 이외에 빚어지는 모든 성적 부도덕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세상이 갈수록 성적으로 타락하여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국가의 몰락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로마의 몰락은 성적인 타락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이 바로 서야 교회가 서고 나라가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육체적인 음행뿐만 아니라 영적인 음행은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 위에 다른 것을 더 사랑하면 영적인 음행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가치를 하나님보다 우선하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본이 되는 성도는 영적이고 육체적인 음행의 죄와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더러운 것’이란 윤리적, 종교적으로 추한 모든 행위를 가리킵니다. 갈 5:19-21에서 는 육체의 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탐욕’은 지나치게 탐하는 욕심을 의미한다. 얼마전에 사업하는 집사님을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어 대화하는 중에 지나친 욕심이 결국 사람을 파멸로 나아가게 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자족할 줄 모르고 끝없이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려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을 조급하게 하고 사회를 각박하게 만들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물질만능주의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으로 안되는 것도 되게 하고 명예와 권력도 살 수 있기 때문에 돈을 벌기위해 과도한 욕심을 부리며 불법과 편법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성경은 경고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바울사도는 하나님으로부터 구별된 성도라면 이런 여러 가지 악한 것들은 생각지도 말고 이야기하지도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이 되는 성도는 세상의 여러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믿음 안에서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약 1:27) 구별된 성도입니다. 이런 구별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감사하는 성도(4)

4절,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어리석은 말’은 죄악의 성향을 지닌 좋지 못한 말로서 바보같이 중얼거리거나 분별없이 뇌까리는 군소리들을 가리킵니다. ‘희롱의 말’은 본래 '재치 있는 농담'이라는 좋은 의미였으나 여기서는 외설적인 내용을 포함한 '상스러운 농담이나 독설'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언어생활을 성도들은 멀리 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에 있어서 최선의 태도는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 '유카리스티아'는 '유'(좋은)와 '카리스'(은혜)의 합성어이기 때문에 칼빈은 '유카리스티아'를 '은혜스러운 말'로 해석합니다. 성도들은 은혜로운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말이 곧 삶을 대변합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삶의 태도 역시 부정적입니다. 긍정적이고 은혜로운 말을 하는 사람은 그분의 삶 역시 늘 은혜롭고 복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카리스티아'는 성도들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말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입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말이 항상 흘러넘쳐야 합니다. 감사하는 말을 하면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감사하는 성도가 됩니다.

(골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2:6-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본이 되는 성도는 사랑으로 행하는 성도, 구별된 성도, 감사하는 성도입니다. 이런 본이 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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