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성령충만의 은혜

하마사 2009. 5. 8. 06:07

본문: 행 2:1-13

찬송: 427장

제목: 성령충만의 은혜

목표: 성령을 충만히 받아 은혜를 누리며 살게한다.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우리 교회의 어버이들과 세상의 모든 어버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늘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행전을 어떤 사람들은 성령행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만큼 성령의 활동이 크다는 의미이지요.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고 베드로를 비롯하여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때 오순절날에 성령이 불같이 임하여 모인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성령강림의 역사 후에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시작되었으며 놀랍게 부흥하였습니다.

1-13절을 중심으로 ‘성령충만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성령충만의 은혜는

 

1. 체험의 은혜(4)

4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120명의 성도가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는데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이야기를 할 뿐만 아니라 모인 사람들이 자기나라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각자에게 필요한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고전 12장에는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에 대하여 열거하면서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분별, 방언, 방언통역의 은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롬 12장에도 은사에 대하여 말씀하는데 예언, 섬기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권위하는 은사, 구제하는 은사, 다스리는 은사, 긍휼을 베푸는 은사가 있습니다.

엡 4장에 보면 사도직의 은사, 선지자직의 은사, 복음 전하는 은사, 목사직의 은사, 교사직의 은사가 있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이런 은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체험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고 봉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똑같은 일을 할지라도 효과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봉사하는 사람 자신도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았을 때와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봉사할 때 기쁨과 감사의 차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교사는 지식의 은사나 가르치는 은사를,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들은 방언의 은사나 방언 통역함의 은사를 받으면 좋겠지요. 목사님들은 지혜의 말씀이나 능력행함의 은사, 영분별이나 다스리는 은사 등 목회에 필요한 다양한 은사들을 받으면 좋겠지요.

우리는 모두 은사자입니다. 그리고 사모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은사를 주십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이처럼 체험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2. 소통의 은혜(7-8)

7-8절,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이 방언을 말하는 제자들을 보고 무식한 갈릴리 사람인데 어떻게 자신들의 언어로 이야기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요즘에 정치권의 화두는 소통입니다. 같은 당내에서도 서로 소통이 되지 않고 당과 정부가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며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같은 나라에서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힘들어하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그런데 제자들이 하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거주하던 나라의 언어로 듣게 되었습니다. 언어의 소통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말이 통하는 것은 마음이 통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부부간의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은 마음이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에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은 마음이 단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언어의 소통은 중요합니다. 바벨탑 사건을 아시지요? 창세기 11장에 보면 사람들이 시날평지에 성과 대를 쌓아 하늘에 닿게 하여 자기들의 이름을 내자며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시고 언어를 혼잡케 하여 성 쌓기를 그치게 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살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언어가 다르면 마음의 소통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함께 살기가 힘듭니다.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혈액이 흐르다가 어딘가 막히면 문제가 생깁니다. 산소도 잘 공급되어야 하는데 막히면 문제가 되어 건강에 손상을 입히게 됩니다.

세상사의 모든 것이 이처럼 소통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소통이 잘 되는 곳이 행복합니다. 성령충만을 받은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행 2:44-47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나님과의 소통이 잘 되면 사람과의 소통도 잘 됩니다. 소통이 되니까 모이기를 좋아합니다. 물건을 서로 통용합니다. 나눔이 있습니다. 찬송이 있습니다. 마음이 소통되면 이렇게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면 소통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3. 변화의 은혜(12-13)

12-13절,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방언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떤 사람들은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했습니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이상한 현상과 이상하게 들리는 소리는 술 취한 사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지 못한 사람은 방언이나 여러 가지 은사를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믿지 못합니다. 오히려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별나게 믿는다고 은근히 반감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령충만을 받은 사람은 새 술에 취한 사람처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갑니다. 성령이 주관하시는 대로 자기를 맡기고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갑니다. 권능을 받아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아갑니다. 과거에 부끄러워했던 것들이 오히려 자랑거리가 됩니다. 바울사도는 주님을 만나기전에 자랑거리였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부끄러움과 수치의 상징이었던 십자가를 자랑거리로 삼고 일생을 살았습니다.

성령을 충만을 받아 변화되는 모습을 17절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현실이 아무리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내일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변화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의 은혜는 체험의 은혜, 소통의 은혜, 변화의 은혜입니다. 이런 성령충만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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