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 12:1-11
찬송: 511장
제목: 예수님과 어떤 관계입니까?
목표: 예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고 헌신자로 살게한다.
어울리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습니다.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귄다는 의미이지요. 이렇게 볼 때 예수님과의 관계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네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저와 여러분은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1-3): 헌신자
1-3절,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님이 베다니에 가셨을 때 죽었다가 살았던 나사로와 그 누이들인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을 반겨 맞이하며 잔치를 열었습니다. 마르다는 잔치음식을 위해 분주히 일했으며 나사로는 식사자리에서 대화하며 예수님과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300데나리온(오늘날 환산하면 약 3,00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의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씻었습니다. 모두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각자 말씀을 듣거나 음식을 만들거나 향유를 부어 최선의 사랑을 표현하였습니다.
나사로를 살려주신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의 잔치를 열었으며 힘에 지나도록 헌신하였습니다. 그 중심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역할에 따라 최선을 다해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2. 예수님을 이용하는 사람(4-6): 기회주의자
4-6절,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씻어드리자 옆에 있던 가룟유다가 마리아에게 비싼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지 않고 허비하느냐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고 돈궤를 맡아 관리하면서 돈을 훔쳐갔기 때문에 실제로는 돈을 탐냈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다니면서도 예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속으로 자기이익을 추구하며 예수님을 이용하는 기회주의자였습니다.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챙기려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 은 30에 팔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자기이익이 있을 때 믿음생활을 잘하지만 이익이 없고 손해가 될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에 누를 끼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3. 예수님을 구경하는 사람(9): 관람자(구경꾼)
9절,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함이러라.”
몇 일전 어르신들을 모시고 서울대공원으로 효도관광을 다녀왔습니다. 동물원을 구경하는 데 어떤 곳은 한산하였지만 호랑이 우리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호랑이를 관람하고 있었습니다.
동물을 구경하는 사람들처럼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보려고 베다니로 모여들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유월절을 앞두고 외국이나 지방에서 예루살렘에 상경한 사람들로 나사로의 부활소식을 접하게 된 자들이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왔을 때 가까운 동네인 베다니에 들러 예수님과 나사로를 볼 목적으로 온 구경꾼들이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난 사건은 당시에 큰 이야깃거리였기 때문입니다.
관람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믿음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전하시는 생명의 말씀을 듣고자 함도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렸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과 나사로를 구경하려고 온 관람자들이었습니다.
교회는 열심히 나오고 겉으로 믿음생활은 잘하는 것 같지만 쇼를 관람하는 관람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전심으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관람하고 구경하는 사람처럼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4.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10-11): 대적자
10-11절,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소식은 베다니지역 주변의 문제가 아니라 유월절 순례인파로 인해 전 유대, 나아가 유대지방 밖의 유대인 공동체에까지도 전파되자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대표하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긴장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반신반의했던 자들이나 호기심만을 가지고 찾아온 사람들도 나사로의 부활사건으로 인해 예수님을 믿게 되자 자신들의 입지가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과 나사로까지 함께 죽이려는 모의를 꾸미게 되었던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고 약하고 소외된 자의 친구가 되셨으며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소망과 용기를 주셨던 예수님의 인기가 높아지자 예수님을 대적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욕하고 비하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어지럽히고 허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느니 자기의 주먹을 믿고 돈을 믿으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과의 관계가 어떻습니까?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 3남매처럼 예수님을 사랑하는 헌신자입니까? 가룟유다처럼 예수님을 이용하는 기회주의자이십니까? 쇼를 구경하듯 예수님을 구경하는 관람자입니까? 대제사장들처럼 예수님을 반대하고 교회를 허무는 대적자입니까?
죽었던 자를 살려주신 은혜를 알고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며 섬겼던 3남매처럼 우리를 구원해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며 충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헌신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