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욘 4:1-11
찬송: 494장
제목: 불평을 감사로 바꿉시다.
목표: 배타성과 고집과 교만으로 인한 불평을 그치고 감사하며 살게한다.
요나가 40일이 지나면 성이 멸망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니느웨성의 왕과 온 백성 그리고 짐승들까지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길에서 돌이켜 전심으로 회개하는 니느웨성 백성들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요나는 기뻐하고 감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불평했습니다. 요나의 불평을 통하여 나를 돌아보고 불평대신 감사하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나가 불평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1. 배타심입니다.(1-3)
1-3절,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요나가 니느웨의 구원을 원하지 않았던 이유는 자기들만이 구원얻을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배타적인 선민의식과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모든 이방 민족은 마땅히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편협한 민족주의, 그리고 니느웨가 멸망당하지 않고 존속할 때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위기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선지자였지만 적국이었던 니느웨가 멸망하기 원했기 때문에 단순히 하나님의 심판만을 선포했으며 하나님이 심판을 멈추자 오히려 심히 싫어하며 분노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 이스라엘만이 구원을 받아야 하고 자기나라를 침략해 올지도 모르는 니느웨는 망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불평했습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이나 대상에 대하여 배타심과 편협심을 가지고 있을 때 불평하기 쉽습니다. 직장에서 그 사람만은 승진되지 말아야 하는데 승진하고 잘 될 때 불평이 생깁니다. 안되어야 할 그 이웃집이 남들보다 더 잘될 때 불평할 수 있습니다. 부흥하지 말아야 할 그 교회가 더 부흥하고 잘 될 때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괴롭혔던 그 나라만은 안 되어야 하는데 다시 세계의 강국이 되었을 때 불평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이 요나의 마음일 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마음일 수 있습니다. 내가 기준이 되어 판단하고 정죄하기도 합니다. 내 생각과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지금까지 배타적인 생각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지는 않았습니까?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회개하며 불평대신에 감사하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고집입니다.(5)
5절, “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앉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하니라.”
요나는 말씀을 전하기는 했지만 결국 재앙으로 니느웨성이 망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성 동편에 초막을 짓고 그늘에 앉아서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박 넝쿨을 준비하여 그늘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벌레가 박 넝쿨을 먹어 말라 죽게 되자 요나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며 하나님께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달래시며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박 넝쿨을 네가 아꼈듯이 니느웨성에 사는 십이만 여명의 사람들과 육축들을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않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자기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고 감사한 것이 아니라 그 성이 망하는 것을 보려는 심사로 초막을 짓고 구경하는 요나를 보면 얼마나 고집스러운 면이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전파한 대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성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는 고집을 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되지 않자 하나님께 불평하였습니다.
고집부리다가 자기뿐만 아니라 백성들조차 어려움에 빠지게 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애굽의 바로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고집을 부리다가 10가지 재앙을 받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 고집을 버리지 않으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에 자기의 생각을 맞출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자기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감사하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교만입니다.(9)
9절,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
요나가 불평한 원인 중에는 니느웨성이 멸망하리라고 한 자기의 예언이 빗나가 선지자로서의 자존심이 훼손된 데 대한 불만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존심 상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고 분노하는 것은 그 뿌리가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심판을 미루거나 실행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토기장이가 진 흙 한 덩이로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을 만들 수 있으며 그릇을 깨트릴 수도 있는 것은 토기장이의 주권입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따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롬 9:20-21,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요나는 자기가 심판을 예언했는데 왜 심판하지 않느냐고 하나님께 따지면서 불평하고 있습니다. 모든 결정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를 니느웨로 파송한 분도, 심판을 예언하라고 지시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박 넝쿨을 준비하여 그늘을 만들어주시고 벌레를 준비하여 박 넝쿨이 시들게 하시고 뜨거운 동풍을 불게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요나는 그 때마다 기뻐하기도 하고 죽는 것이 낫다고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박 넝쿨의 그늘로 인해 기뻐할 때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다가 박 넝쿨이 시들자 곧바로 불평하고 있습니다. 하찮은 박 넝쿨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요나는 죽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난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박 넝쿨 하나에 목숨을 걸고 있는 모습입니다. 수많은 니느웨 사람들이 멸망당하는 것은 안타깝지 않아도 박 넝쿨이 사라지는 것은 참지 못했던 것입니다.
교만은 자기 자리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천사가 천사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데 그 자리를 이탈하여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다 마귀가 되었습니다. 사울이 급하다고 제사장 사무엘의 자리를 침범했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습니다. 교만하면 자기 자리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감사하지 않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전파하는 자기 사명만 충실하게 감당하고 하나님의 뜻에 맡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서 자기가 판단하고 불평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8년을 살아오면서 요나처럼 배타심과 고집 그리고 교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기보다 불평하며 살아오지는 않았습니까? 박 넝쿨과 같은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면서 감사대신에 불평하지는 않았습니까? 배타적이고 편협한 마음을 버리고 자기고집을 꺾고 교만을 물리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하고 불평을 감사로 바꾸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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