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의 삶

하마사 2008. 6. 14. 21:29

본문: 느 10:28-39

찬송: 405장, 502장, 427장 / 484장

제목: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의 삶

목표: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사는 사람임을 알게한다.

 

느 10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27절까지는 자기들의 죄악을 회개하고 언약을 새롭게 한 방백들의 명단이 기록되었고, 28-39절까지는 온 백성들이 언약에 순복할 것을 맹세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신앙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들의 죄악에서 떠나기를 맹세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약에 인친 자들의 명단에서 맨 앞에 기록된 사람이 당시의 총독이었던 느헤미야였습니다. 이렇게 백성의 지도자가 솔선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도자가 솔선수범할 때 백성들이 감동을 받고 한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28절 하반절의 ‘무릇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좇아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는 사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지식과 총명이 있는 사람은 세상의 법을 넘어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지식과 총명이 있는 사람은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몸의 구별(30)

30절, “우리 딸은 이 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 아들을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자손, 즉 언약의 백성은 이방인과 혼인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방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별하며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의 모습으로 전환하는 경건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율법에서 이방인과 통혼을 금지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철저한 배타주의적인 삶을 살아가라는 명령이 아니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영적 순수성을 지니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도 12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리가운데 살아가는 양들은 뱀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이 필요합니다. 또한 비둘기 같은 순결을 유지하려면 뱀같은 지혜가 동시에 있어야 합니다. 죄악이 관영한 세상 속에 살아도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몸을 구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사는 지식과 총명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2. 시간의 구별(31)

31절, “혹시 이 땅 백성이 안식일에 물화나 식물을 가져다가 팔려 할지라도 우리가 안식일이나 성일에는 사지 않겠고 제 칠년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을 탕감하리라 하였고”

 

백성들은 안식일에 주변 이방인들이 물화나 식물을 가져다가 팔려 할지라도 그런 것들을 사지 않고 안식일을 지키겠다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은 오늘날 주일에 해당됩니다.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을 지켰지만 신약시대에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주일이란 주님의 날을 의미합니다. 주일을 온전히 지킨다는 것은 시간을 주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시간속에 사는 존재입니다. 시간이 그만큼 소중합니다. 시간은 생명과 같습니다. 주어진 생명의 시간이 다하면 하나님의 품에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린다는 것은 생명을 조금 떼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시간의 사용내역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십니까? 하나님께 드려지는 시간은 헛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시간, 말씀을 대하는 시간이 가장 귀합니다.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면서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국 '헌팅턴 프레스'라는 신문사 건물 입구에는 세 개의 동상이 나란히 서 있는데 시간의 귀중함을 알리는 동상입니다.

하나는 사람이 지구본을 껴안고 온화한 모습을 짓고 있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지구본 위에 대단히 거만한 표정으로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 있습니다. 또 나머지 하나는 사람이 지구본 밑에 깔려 살려 달라고 부르짖으며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입니다.

퍽 인상적인 동상들이기에 대부분의 방문객들이 신문사 사장에게 물었습니다.

"지구본은 흘러가는 시간을 상징합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생이라는 시간 때문에 웃는 자도 있고, 우는 자도 있지요.

지구본을 껴안은 동상은 시간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며, 그리고 지구 본 위에 서 있는 모습의 동상은 시간의 귀중함을 무시한 사람이며, 마지막 지구본 밑에 깔려 있는 모습은 시간을 무시하다가 실패하거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시간에 후회하는 인생이 되지 않도록 24시간을 25시간처럼 사는 때를 아끼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물질의 구별(32-36)

32-36절, “우리가 또 스스로 규례를 정하기를 해마다 각기 세겔의 삼분 일을 수납하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쓰게 하되 [33] 곧 진설병과 항상 드리는 소제와 항상 드리는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정한 절기에 쓸 것과 성물과 이스라엘을 위하는 속죄제와 우리 하나님의 전의 모든 일을 위하여 쓰게 하였고 [34] 또 우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들이 제비 뽑아 각기 종족대로 해마다 정한 기한에 나무를 우리 하나님의 전에 드려서 율법에 기록한 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단에 사르게 하였고 [35] 해마다 우리 토지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로 하였고 [36] 또 우리의 맏아들들과 생축의 처음 난 것과 우양의 처음 난 것을 율법에 기록된 대로 우리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주고”

 

백성들은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성전세와 십일조를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성전세는 예배와 제사를 위해 사용되었고 또 성전을 유지하기위한 수리비, 시설비, 운영비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성전에서 번제나 소제를 드릴 때 필요한 나무는 돈으로 사지않고 종족대로 제비를 뽑아 순서를 정해서 정한 기한에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사는 모든 백성들이 공동으로 협력하여 진행되었습니다.

또한 십일조를 드리기로 맹세한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를 회복한 자들로서 율법을 순종하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들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인정하고 경제생활 면에서도 그들의 신앙을 회복하여야 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을 잘 이해하고 지키므로 하나님의 재물을 맡은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다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첫 열매와 처음 난 것을 하나님의 전에 바친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이 언약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큰 표시였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소유물 모두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장자와 처음 난 것을 그것들의 대표로서 받으시므로 모든 이스라엘을 받으시는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행복의 문을 여는 193가지 이야기’라는 책에 있는 글 중에 불행한 사람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완벽주의자는 불행하다. 그는 모든 걱정을 껴안고 인생을 살아간다.

둘째, 항상 남과 비교하려 한다.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경쟁심은 평안을 앗아간다.

셋째, 자기 자신만이 가장 옳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이런 사람과는 함께 지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늘 고독하다.

넷째, 작은일에 신경을 집중시킨다. 이런 사람의 표정은 항상 불만과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다.

다섯째, 매사에 의심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여섯째, 이웃을 위해 절대로 사랑과 물질을 베풀지 않는다. 한번 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밖으로 나올 줄 모른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버느냐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무엇을 위해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쓸 것인가는 그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지혜와 총명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으로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고 생명과 같은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하고 물질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구별된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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