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 53:1-12
찬송: 138장
제목: 고난받는 메시야
목표: 예수님이 고난받는 메시야이심을 알고 그분의 영광을 함께 누리며 살게한다.
본문은 여호와의 종 곧 메시야의 고난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장차 인류의 구속주로 오실 메시야는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연약하고 볼품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죽임을 당할 것이지만 그것이 바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방법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 받는 메시야는
1. 멸시받는 메시야입니다.(3-4)
3-4절,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림을 당했습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라고 환영했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에는 환영인파 뿐만 아니라 제자들마저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철저히 멸시를 받았고 버림당했습니다.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이” 멸시를 당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한센병자 즉 나병환자 취급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나병환자는 사람들 근처에 오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고 한센병이 발병하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가까이 오면 자기를 알려 피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철저히 사람들과 분리되는 병이었습니다. 고난의 종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는 이처럼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버림받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요 만민의 구속자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와 외면을 받으셨으며 끝내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였지만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오해를 받았습니다. 이는 욥이 시험을 받을 때 그의 세 친구들이 욥의 고난의 원인이 죄에 있다고 공격한 것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현세적 인과응보 사상에 근거하여 예수께서 고난당하는 것은 예수님 자신의 범죄함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고난 받으시는 그리스도를 모욕하였고,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실 때 그를 경멸하였던 것입니다.
고난받는 메시야는 멸시와 천대와 오해까지 받는 종의 모습이었습니다.
2. 희생하는 메시야입니다.(5-7)
5-7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의미를 가장 명백하게 밝혀 주는 것으로서 그분의 모든 고난이 오직 우리를 위해서 되어졌음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의 예언대로 가시관과 못과 로마 병정들의 창에 찔려 상함을 받았습니다. 이런 고난의 결과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찔림과 상함이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입니다. 주님이 채찍에 맞아주심으로 죽음의 병에서 놓임을 받아 영적 강건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가 가진 육체적이고 영적인 질병과 상처를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이 낫게 하시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고 하시며 주님이 친히 한 알의 밀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심으로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생명은 희생을 동반합니다. 한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모진 진통과 아픔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희생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성장했습니다. 신앙의 선배들의 순교의 피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원형극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기도 했고 카타콤 동굴에서 평생을 살면서 신앙을 지키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십자가 이후에 부활이 있듯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더욱 강력하게 일어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높은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희생하셨습니다. 주님의 희생으로 오늘 우리는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누리는 평안은 예수님과 그 누군가의 희생의 결과입니다. 오늘 나의 감사는 예수님과 그 누군가의 눈물어린 희생의 산물입니다.
이제는 나의 희생을 통해 누군가가 생명을 얻고 기쁨을 누리며 살도록 희생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높임받는 메시야입니다.(12)
12절,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멸시를 받고 희생하신 고난의 메시야는 마침내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되고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되는 존귀한 자리에 이를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얻게 될 영광을 세상 정복자의 영광의 모습에 비유한 것으로 세상의 정복자가 그 전리품을 그의 신하들과 나누어 가지듯 예수님께서도 부활을 통해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고 승리하신 후 영광의 왕으로서 메시야 왕국을 영원히 통치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멸시와 천대와 오해를 받았지만 그리고 희생을 당하셨지만 하나님이 높여주시고 존귀케 해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빌 2:9-11절에서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증언했습니다.
욥의 고백도 그러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요셉도 고난의 계곡을 통과하여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어 기근에서 죽어가는 백성들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다윗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수없이 지났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인물들은 고난과 희생을 거치며 성장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받는 메시야는 우리를 위해 멸시받고 희생하셨지만 하나님이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높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한 알의 썩어진 밀알로 희생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고난 후에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은혜가 있음을 분명히 믿고 끝까지 예수님을 바라보고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www.ikwangsung.kr/bbs/skin/morning_service/sermon/sermon.php?id=morning_service&no=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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