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느 6:1-9
찬송: 204장, 405장, 364장, 484장
제목: 사명을 완수하려면
목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신앙적 대처방법을 알게한다.
오늘 본문은 3월 2일 “위기가 닥칠 때”라는 제목으로 담임목사님이 설교하신 내용입니다.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의연하게 대처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받았던 본문입니다.
제가 8시 기도회 때마다 느헤미야를 본문으로 설교하고 있는데 오늘이 6장이라 같은 본문이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성벽 재건이라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바사의 왕궁에서 높은 직책까지 버리고 왕에게 간청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입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면서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당연히 받아야 할 총독의 녹까지 받지 않으면서 백성들을 배려하며 일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백성들이 한 마음이 되어 협력하고 도와주어 일사천리로 일이 잘 진행되었을 것 같지만 성경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혹은 교회에서 사명을 감당할 때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느헤미야릍 통해 지혜를 얻고 문제해결의 열쇠를 찾아보겠습니다.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1. 장애물이 있습니다(1-2)
1-2절,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대적이 내가 성을 건축하여 그 퇴락한 곳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라 [2]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과 그들을 따르는 대적들이 성벽재건의 완공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오노평지에서 만나자고 제안을 했는데 느헤미야를 해치고자하는 속셈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명을 감당할 때 장애물이 있기 마련입니다. 장애물이 없이 순조롭게 모든 것이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신앙의 위인들의 삶을 보아도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가족들을 기근에서 구하시기 위해서 요셉을 일찍 애굽으로 파송하셨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그 사명을 감당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장애물들을 만났습니까? 그를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이 장애물이었고 보디발의 아내가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장애물들이 결국 사명을 감당케 하는 도구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장애물이 없었다면 요셉이 어떻게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모세는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애굽에 가서 바로에게 이야기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바로라는 큰 장애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10가지 재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가 싶더니 홍해가 가로놓이고 광야가 나옵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일당이 모세를 대적하기도 합니다. 사람과 환경의 장애물이 앞길을 가로막았습니다.
다윗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 왕의 사명을 주셨지만 왕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과 역경이 있었습니까? 골리앗이라는 장애물과 사울이라는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황무지나 아둘람굴과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야 했으며 적국인 블레셋으로 망명을 하여 미친체해야 하는 어려운 지경에도 처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어떻습니까?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세계를 누비며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할 때 장애물이 없었습니까? 유대인들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여행중에 강과 바다와 시내와 광야의 위험을 겪는 환경의 장애물도 수없이 만났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명을 주실 때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장애물들이 따르는 경우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어버릴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힘들게 얻은 것은 그만큼 값지고 소중한 것입니다. 크고 귀한 사명이면 그만큼 더 큰 장애물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데 어려움과 장애물이 있을까하며 이상히 여기지 말고 하나님이 그만큼 소중히 여기시는 것임을 알고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명을 완수하려면
2.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3-4)
3-4절, “내가 곧 저희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4] 저희가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보내되 나는 여전히 대답하였더니”
대적들이 느헤미야를 해하고자 오노평지에서 만나자고 할 때 느헤미야는 성벽공사를 계속해야 하므로 내려갈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대적들이 네 번이나 사람들을 보내어 만나자고 했지만 똑같이 대답하고 행동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기중심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하든지 혹은 대적들이 모략을 꾸미고 방해를 해도 한결같이 자기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대적들이 백성들을 선동하기도 하고 위협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람은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팽이가 중심을 잡았을 때는 빨리 돌지만 흔들리지 않다가 넘어질 때는 중심을 잃고 쓰러집니다. 씨름경기를 보면 결국 상대방의 중심을 무너뜨리는 사람이 이기게 됩니다. 사명자도 사명감이 흔들리면 무너집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에 대한 의심이 생기거나 사명의식이 흐려지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천하에 당할 사람이 없던 삼손이 왜 무너졌습니까? 들릴라라는 여인이 그의 중심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지켜야 할 힘의 원천에 대한 비밀을 말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이 세고 지혜가 많으면 무엇합니까? 마음의 중심이 무너지면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됩니다. 다니엘의 위대한 한 점은 하나님을 향한 자기중심을 끝까지 지켰다는 것입니다. 사자굴에 들어갈지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사명자는 이처럼 중심을 잡아야 하고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대적들의 모략과 위협에도 꿋꿋할 수 있었던 것은 성벽재건이라는 사명에 대한 자기중심이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완수하려면
3. 기도해야 합니다(9)
9절, “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대적들이 방해하고 위협했지만 느헤미야가 끝까지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기도입니다. 아무리 의지와 책임이 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느헤미야에게도 이런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백성들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었겠지만 혼자있을 때 맥이 풀리고 힘이 쭉 빠질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 어떻게 이겨냈을까요? 기도입니다.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동생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의 형편을 듣고 울면서 수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던 중에 왕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질문할 때 하나님께 묵도하고 왕에게 대답할 정도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희생하며 최선을 다한 이후에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생각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또한 대적들이 방해하고 협박할 때도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큰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느헤미야가 이런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기도에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저와 여러분들은 기도하러 오셨습니다. 기도할 때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기도는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거울입니다. 그레이엄이라는 사람은 ‘기도는 아침의 열쇠요 저녁의 자물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느헤미야처럼 사명을 완수하려면 먼저 장애물이 있음을 각오하고 주저하지 말고 장애물을 오히려 디딤돌로 삼고 나아가야 합니다.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를 우선하고 기도로 힘을 얻으며 기도로 마무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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