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 17:1-14
찬송: 479장
제목: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주는 교훈
목표: 멸망중에서도 보호받는 남은 자로 살게한다.
본문은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의 멸망, 북이스라엘 멸망을 예언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중에 4-11절에 기록된 북이스라엘 멸망에 대한 예언을 중심으로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주는 교훈이란 제목으로 말씀전하겠습니다.
사마리아 즉 북이스라엘의 멸망예언은 이미 사 9:8-21에 기록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거듭된 하나님의 징계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은 교만과 패역으로 인하여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을 예언한 반면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결국 멸망하게 될 이방국가를 의지하여 그들과 동맹을 맺고 그들의 우상을 섬긴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패망하게 됨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사야는 국가로서의 북이스라엘은 이방국가와 동맹을 맺어 세속적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에 필히 멸망할 것이나 그 백성은 한번 택하신 선민이므로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의 의인들과 같이 소수의 의인들이 반드시 여호와께 회개하고 돌아와 구원받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북이스라엘은
1. 점진적으로 쇠퇴해 갑니다(4).
4절, 그 날에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 그 살진 몸이 파리하리니”
아람과 동맹한 북이스라엘의 점진적인 쇠퇴를 의인화시켜 표현한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형제국인 남유다를 공격하기 위해서 이방민족인 아람과 연합함으로서 스스로를 천하게 만드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을 서서히 파멸시켜가시기로 작정하셨는데, 이런 쇠퇴의 과정을 ‘몸이 파리하리니’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처음에는 그들의 살진 몸이 파리하게 말라지듯이 그 나라의 영광도 쇠하여 망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한 때 찬란했던 이스라엘의 영광은 과거지사가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중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점진적으로 몸이 쇠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픈 사람 같지 않던 사람도 병에 의해서 몸이 허약해지고 나중에는 기력이 쇠하여 말도 못하고 눈도 겨우 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유하고 창대하던 가정이나 사업이 몰락하는 과정을 보면 하루아침에 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서서히 망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가 하루아침에 망한 것은 아닙니다. 서서히 망하는 길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북이스라엘도 한때는 번성했으나 이방민족인 아람과 연합하여 형제국가인 남유다를 공격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되는데 병들어 뼈만 남은 사람같이 되어간다는 말씀입니다. 망하는 것도 모르면서 망하는 사람이나 국가는 불행합니다. 망하는 길로 가면서도 돌이키지 못하고 서서히 망해간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하는 것이 있다면 아직 돌이킬 시간과 힘이 있을 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파멸의 늪으로 계속 빠져들어가는 북이스라엘처럼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2. 철저하게 심판을 받습니다(5, 8-9)
5절, “마치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어 가지고 그 손으로 이삭을 벤 것 같고 르바임 골짜기에서 이삭을 주운 것 같으리라.”
8-9절, “자기 손으로 만든 단을 쳐다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바라보지 아니할 것이며 [9]그 날에 그 견고한 성읍들이 옛적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바 된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꼭대기의 처소 같아서 황폐하리니”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마치 추수를 하는 농부가 곡식을 수확하되 추수를 한 후 남은 이삭까지도 모조리 주워들이는 것처럼 철저하게 진행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단과 벧엘에 세워 섬겼던 금송아지 우상을 쳐다보지 아니하며 아세라나 태양상을 바라보지 않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이 말은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그들에게 그동안의 우상숭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상숭배가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히 여기시는 범죄라는 사실을 심판을 통해서 확인하게 될 때, 더 이상 우상을 신봉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도록 철저하게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비록 눈에 보이는 우상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데 방해되는 모든 우상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사시고 참되신 분이시며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8절에서 우상이 북이스라엘이 믿고 의지했던 무형적인 지주였다면 9절의 견고한 성읍은 그들의 유형적 지주인 군사력에 해당합니다. 북이스라엘은 자신들의 군사적 방어력을 믿고 외적의 침입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믿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적군의 점령지로 만드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이 믿고 있는 모든 유형과 무형의 우상들을 파괴해버리심으로서 오직 하나님만이 참신앙의 대상이심을 깨우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심판의 칼을 빼시면 무섭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어떻습니까? 노아의 홍수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마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때 홍수로 세상을 심판했듯이 말세에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높이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남은 자는 보호받습니다(6)
6절, “그러나 오히려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실과 이 삼 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사 오 개가 남음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이 멸망되는 가운데서도 ‘주울 것’을 남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즉 감람나무를 흔들 때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열매 2,3개가 남음 같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4,5개가 남음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이것은 과실을 손과 장대로 다 따낸 감람나무 가지 맨 끝에 아직도 매달려 있거나 혹은 잎새로 가리어져 따지 못하고 남아있는 열매를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엄중한 재앙 중에서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반역했을 때 버림 당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긍휼로 대하실 뿐 아니라 언약을 기억하시고 성실히 이행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6절이 5절과는 모순이 되는 듯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이 아무리 혹독한 살육을 당하더라도, 그 와중에서 소수의 살아남은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절이 모순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는 이 두 구절이 북이스라엘 전체의 죄에 대하여는 철저한 심판을 하시면서도 동시에 이 범죄에 동참하지 않는 소수의 경건한 백성들을 보호하심으로서 공의와 긍휼을 동시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점진적이고도 철저했습니다. 그런 심판의 와중에도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의인들을 보호하시되 감람나무의 높은 가지 꼭대기에 남아있는 과실처럼 남겨놓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열매를 통해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주는 교훈을 통해 저와 여러분들은 심판에서 제외되고 보호받는 남은 자들이 되시고 하나님의 새 역사를 열어가는 주인공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www.ikwangsung.kr/bbs/skin/morning_service/sermon/sermon.php?id=morning_service&no=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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