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 10:5-19
찬송: 415장
제목: 앗수르 멸망의 교훈
목표: 앗수르가 멸망한 원인을 교훈삼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한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을 책망하시고 징계하실 때 그 도구로 이방민족을 사용하시지만 궁극적으로는 선민을 구원하신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보다는 인간적인 힘을 더 의지하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죄에 대하여 징계하시고자 앗수르라는 나라를 사용하셨지만 그 징계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남은 자를 구별하셔서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앗수르는 B.C. 8세기 초부터 B.C. 7세기 말까지 약 200년간 근동 전역을 지배했던 대제국이었습니다. 앗수르군의 말발굽에 북이스라엘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이 짓밟혔으며 수많은 왕과 방백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부왕인 나보폴라살에 의해 수도 니느웨가 함락됨으로서 사실상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대제국 앗수르가 갑자기 힘을 잃고 무너져 버렸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앗수르가 멸망한 원인을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들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앗수르 멸망의 원인은
1. 교만입니다.(5-8)
5-8절,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6] 내가 그를 보내어 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하여 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가로상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늘 [7] 그의 뜻은 이 같지 아니하며 그 마음의 생각도 이 같지 아니하고 오직 그 마음에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여 [8] 이르기를 나의 방백들은 다 왕이 아니냐.”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들어 패역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징계하시는 막대기로 사용하여 그들의 잘못을 깨우치려 하셨지만 앗수르는 오히려 근동 지역의 패권국이 되고자 하는 자신들의 탐욕과 동물적인 잔인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아예 멸절시키려는 계획을 진행시켰습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자기 분수를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사울왕이 버림받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무엘이 제사를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백성들이 흩어지는 것이 두려워 자기가 제사를 드린 것이 큰 실수였습니다. 하나님이 앗수르가 좋아서 앗수르를 통해 이스라엘을 징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후에 바벨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레스왕을 통해 하나님은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본국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믿지 않는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징계하는 일뿐만 아니라 선택한 백성들을 회복시키고 은혜 베푸시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사람을 통해 일을 하십니다. 믿는 사람들을 통해 일하시지만 때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교훈을 주고 은혜를 주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방법을 통해서 혹은 누구를 통해서 일하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자기 분수를 모르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를 벗어나 교만하다가 결국 버림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겸손해야 합니다. 잘 나갈 때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사업이 잘 되십니까? 직장생활에서 승승장구하십니까? 건강하십니까? 자녀들이 내 뜻대로 잘 되고 있습니까? 만사가 형통하십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끝까지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2. 신성모독입니다.(11)
11절, “내가 사마리아와 그 신상에게 행함같이 예루살렘과 그 신상에게 행치 못하겠느냐 하도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강대하여 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 앗수르가 이제는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열국의 우상과 동등하게 취급하며 멸시하였습니다. 그들은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것을 잘 알면서도 다른 우상들처럼 취급하고 모독하는 오만 불손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강대국의 우상을 파괴하였으니 그들보다 약한 남유다 왕국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도 물리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이 진노의 막대기와 손의 몽둥이로 잠시 사용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신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습니다.
앗수르만 그렇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은 이런 잘못을 범할 때가 없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건강을 주시고 잘 되게 하셨지만 감사하기는커녕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우쭐대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가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앗수르를 향하여 1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 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일반이로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로 만들어진 물건이 만드신 하나님을 움직이려하고 멸시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앗수르를 가만히 두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실 때 더욱 겸손히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마음과 입술로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내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다른 우상들과 동일선상에서 생각하고 믿는 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멸시한 앗수르의 죄를 범하지 말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경외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자랑입니다.(12-14)
12-14절,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13]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를 옮겼고 그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 같이 위에 거한 자를 낮추었으며 [14] 나의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도다.”
하나님은 앗수르의 교만과 하나님을 멸시하는 완악한 태도를 반드시 꺽으실 것이지만 그 시기를 종교적 도덕적으로 타락한 남유다를 징계하신 후로 미루고 계십니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 사용하는 부지깽이의 예를 들어보면 부지깽이가 불이 잘 타도록 하는 역할을 하지만 부지깽이가 짧아지면 나중에는 결국 아궁이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부지깽이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자기도 언젠가는 불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앗수르는 자기의 힘과 지혜와 총명으로 큰 일을 행했고 내어버린 알을 주움같이 온 세계를 얻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앗수르는 하나님으로부터 쓰이는 줄도 모르고 쓰임 받았지만 교만과 신성모독 그리고 자기자랑으로 인하여 멸망으로 향하는 길을 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들 각자에게 사명을 주시고 감당할 수 있게 하심을 믿고 겸손히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수님과 십자가만 자랑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www.ikwangsung.kr/bbs/skin/morning_service/sermon/sermon.php?id=morning_service&no=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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