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고통으로 신음할 때

하마사 2007. 9. 10. 05:42
 

본문: 시 38:1-22                         찬송: 445장

제목: 고통으로 신음할 때

목표: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고 믿음으로 이기게 한다.


본시의 저자인 다윗은 매우 고통스러운 지경에 처해있습니다.

살이 성한 곳이 없고 뼈에 평안함이 없으며 죄악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과 같고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며 허리에 열기가 가득합니다. 또한 피곤하고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멀어졌으며 대적이 올무를 놓고 악한 말로 넘어뜨리려 하여 근심이 항상 앞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다윗이 하나님께 그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고통으로 신음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주님께 탄식해야 합니다(9, 21-22).

9절,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의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의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21-22절, [21]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22]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탄식한다는 말은 ‘한탄하며 한숨 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주님께 탄식하라는 말은 한숨 쉴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한탄하라는 뜻입니다. 절망 중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였을 때 뒤에는 애굽 군대가 따르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이는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사면초가 상태였습니다. 그 때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모세에게 불평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 까지는 좋았지만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한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탄식하라는 말씀이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가나안 여인(수로보니게 여인)의 탄식을 들어보십시오(마 15:21-28).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지방으로 가실 때 가나안 여인 하나가 소리치며 자기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칩니다. 자기의 딸이 귀신이 들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반응을 보이시지 않자 예수님 앞에 나아와 도와달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자녀들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여인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자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며 간절하게 매어달립니다. 딸의 고통을 생각하며 예수님께 탄식하며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말씀하시고 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가 기도하러 성전에 갔는데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세리와 같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자랑합니다. 반대로 세리는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다만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며 탄식하며 기도를 드립니다. 이 두 사람이 기도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바리새인보다 세리를 의롭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통으로 신음할 일이 있습니까? 걱정과 염려로 인해 뜬 눈으로 밤을 새우시는 분이 계십니까? 어떤 문제이든지 주님께 탄식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탄식을 받아주실 뿐만 아니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사람에게 침묵해야 합니다(13-14).

13-14절, 『[13] 나는 귀먹은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벙어리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14]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입에는 변박함이 없나이다』


다윗은 대적이 자기에게 악을 행할 때 귀먹은 자같이 듣지 아니하고 벙어리같이 입을 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들과 대항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앞에서 심문받으실 때 침묵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마 26:63). 이 장면을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말을 잘하지 못해서이거나 대답할 말씀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침묵으로 그들에게 대답하신 것입니다.

고통으로 신음할 때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때로는 마음이 후련할 때가 있지만 오히려 말하고 후회할 때도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약점과 상처를 싸매어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분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있을지라도 언제나 이해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다윗이“나의 사랑하는 자와 나의 친구들이 나의 상처를 멀리하고 나의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라고 하소연합니다. 자기를 끝까지 이해해 줄 것만 같은 사람들이 상처를 위로하고 수용하지 못하고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위로와 이해는 한계가 있습니다. 욥이 고통으로 신음할 때 욥의 세친구와 아내까지도 욥을 위로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큰 아픔만 주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사람들의 오해나 험담 그리고 악담으로 신음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며 다윗처럼 사람들에게는 귀먹은 자와 벙어리같이 침묵하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하나님이 오해를 풀어주시고 위로하시는 은혜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3. 소망가운데 기다려야 합니다(15).

15절,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락하시리이다』


표준새번역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주님, 내가 기다린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에게 친히 대답하여 주실 분도 오직 주님이십니다.』

다윗은 고통으로 신음하면서 주님께 탄식하며 기도합니다. 또한 자기를 대적하는 사람들에게는 침묵합니다. 그리고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한동안 베스트셀러였던 ‘마시멜로 이야기’의 내용입니다. 마시멜로란 부활절이면 주던 과자로 토스트에 넣으면 맛있습니다. 3-4살된 아이들에게 이것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15분을 기다렸다 먹으면 2개를 주고, 못 기다리고 당장 먹어치우는 아이에겐 하나를 주었는데 14년 후 이들을 조사해본 결과 마시멜로의 유혹을 이겨낸 사람은 성공해서 특별한 내일을 보장 받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명품을 탄생시키는 데는 그에 따른 인고의 시간이 요구됩니다. 좋은 것은 그만큼 많은 기다림의 시간을 요구합니다.

 

‘기다리게 하소서’라는 시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기다리게 하소서.

    사랑하며 기도하며 기다리게 하소서.

    의심하지 않고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으며

    오직 믿고 울먹이며 기다리게 하소서.

    그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나타나 “기다려 주어 고맙다”고

    말할 때까지 기다리게 하소서.


기다림은 소망과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지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는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이 모함에 의해 갇혔던 감옥에서,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무불에서, 그리고 다윗이 아둘람굴에서 나왔던 것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인내하면 하나님이 구원해주시고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주신다는 소망 가운데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고통으로 신음할 때, 주님께 탄식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침묵해야 합니다. 소망가운데 기다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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