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무엇으로 근심하십니까?

하마사 2007. 8. 28. 21:13
 

제목: 무엇으로 근심하십니까?

목표: 사명 감당을 위하여 근심하는 삶을 살게한다.


근심이란 말을 사전에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속을 태우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비슷한 말은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근심이 있고 걱정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근심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어린이들도 부모님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한 걱정을 합니다.


어떤 글에 보니까 우리가 하는 여러 가지 걱정, 근심 중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에 대한 쓸데없는 근심이 40%

이미 쏟아진 물처럼 돌이켜 후회해도 어쩔 수 없는 근심이 30%

이런 것도 근심거리가 되나 싶을 정도의 사소하고 배부른 근심이 22%

큰일이긴 하지만 인간의 힘으론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근심을 하나 안하나 결과는 마찬가지인 근심이 4%

그리고 근심을 많이많이 해서 머리를 쥐어짜면 더 좋을 대처방안을 찾을 수 있는 쓸만한 근심이 4% 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근심의 종류를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육체의 채움을 위한 근심

눅 12: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우리들이 하는 대부분의 근심은 육체의 채움을 위한 근심에 해당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건강을 어떻게 유지할까, 어떤 집에 살까, 어떻게 돈을 벌까, 자식을 어떻게 키울까 등 주로 육체에 관련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일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요즘 저의 고민 중에 하나는 아이들이 자라가면서 어떻게 이들을 바르게 키울 수 있을까하는 문제입니다. 학생이니 공부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공부에 흥미를 가지고 자기들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의 내일에 대한 문제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는 어떤 관원이 예수님께 와서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질문하자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자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주라”고 말씀하셨지만 큰 부자인고로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눅 18:23).

우리들도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만 세상의 염려를 떨치고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육신에만 매여서 살아간다면 불신자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만 합니다. 육체의 채움을 위한 근심을 전혀 안할 수는 없지만 이 단계를 넘어서야만 합니다. 


2. 사명 감당을 위한 근심(1-3)

1-3절, 『[1] 아닥사스다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느헤미야는 수산궁에서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은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하나님은 거룩한 열망을 품게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은 훼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동족의 고통과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 사명을 어떻게 하면 감당할 수 있을까를 위해 근심을 하다가 왕에게까지 얼굴의 수색이 알려졌던 것입니다.

사명을 위해 근심을 하는 것은 육체의 채움을 위해 근심하는 것보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근심은 얼마든지 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근대선교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윌리엄캐리는 구두수선공으로 살다가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해외선교의 비전을 발견하고 인도선교를 향해 가다가 아내 도로시와 큰아이  2명은 이질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한 아들을 잃게 되었고, 아내는 정신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열대기후와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도 고난이 되었습니다. 캐리는 멋지게 선교를 하려던 이상적인 꿈이 산산이 깨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캐리는 그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하나님은 부요하신 분이시며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내가 이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나의 모든 근심을 내어맡길 수 있었습니다. 내가 설사 이곳에서 생명을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나에게 이 고귀한 사명이 맡겨진 사실만으로도 기뻐하고 또 기뻐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 각자에게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그 사명을 어떻게 하면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며 근심할 정도로 사명에 충실한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3. 인간관계를 위한 근심(10)

10절,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느헤미야의 일을 방해하기위해 근심을 하는 모습입니다.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예루살렘성을 중건하고 백성들의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부귀영화를 버리고 온 느헤미야를 음해하고 그의 일을 방해하기 위하여 근심하는 모습입니다. 타인의 일을 방해하기 위해 근심하는 사람은 얼마나 불행한 사람입니까?

반대로 아닥사스다왕은 자기 부하의 얼굴의 수심까지 알아보고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를 돕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입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타인을 세워주고 격려하고 잘 되도록 하기 위한 근심은 좋은 것이지만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처럼 자기들의 이익만을 위해 다른 사람을 방해하고 훼방하기 위해 서로 근심하며 모의하는 일은 잘못된 근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떤 근심을 하고 계십니까? 육체의 채움을 위해서만 근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간관계를 부정적으로 만드는 근심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명 감당을 위해 근심하는 중에 왕의 마음을 움직이고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느헤미야처럼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근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빌립보서 4:6절에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근심이든지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평하기 이전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속에 육체적인 채움을 위한 근심과 인간관계를 위한 잘못된 근심이 틈을 타지 못하도록 늘 생각을 지켜나가야 함을 믿고 늘 사명 감당을 위한 근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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