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온전한 행복을 누리려면

하마사 2007. 8. 15. 05:50
 

본문: 시 16:1-11                 찬송: 453장

제목: 온전한 행복을 누리려면

목표: 하나님을 통해 영혼과 육체가 온전한 행복을 누리며 살게 한다.


온전한 행복이란 어떤 것일까요? 이 말은 온전하지 못한 행복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신학자들은 인간을 말할 때 3분설 혹은 2분설을 주장합니다. 3분설은 인간이 영과 혼(정신) 그리고 육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 반면에 2분설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인간은 눈에 보이는 육체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육체만 행복하거나 영혼만 행복한 것은 온전한 행복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육체만 행복하다면 쾌락이거나 영혼만 행복하다면 자기도취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행복이란 영혼과 육체가 함께 기쁨을 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9-10절 말씀을 보면, “[9]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하여 마음(정신, 혼)과 육체 그리고 이 기쁘고 안전하며 구원의 확신을 가진 온전한 행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 성경이 교훈하는 온전한 행복을 누리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본문 2절을 표준새번역성경은 “나더러 하나님을 말하라면, 하나님은 나의 주님, 주님 밖에는 나의 행복이 없다 하겠습니다.”라고 번역합니다. 시편 기자인 다윗은 하나님이 행복의 근원이시고 하나님으로부터만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며 하나님과 분리되어서는 온전한 행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온전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꼭 함께 하셔야하는데


1.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어야 합니다(1).

1절,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위험하고 불안할 때보다 안전하고 평안할 때 행복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험하고 불안한 환경가운데 있다할지라도 마음이 평안하거나 혹은 안전하게 피할 곳이 있다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전도하다가 빌립보감옥에 갇혀있을 때 미래가 어둡고 불안하였지만 그 가운데서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이 평안했기 때문입니다. 사자굴에서 다니엘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사자의 발톱에서 하나님이 다니엘을 보호하셨기 때문이고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 다니엘의 세 친구가 살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보호하심 때문입니다. 아람군대가 포위하고 있는 도단성에서 엘리사가 흔들리지 않고 평안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군대가 불말과 불병거로 도단성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낼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보호하심 때문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도 좌절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던 것은 시편 23:4절에서 고백하듯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며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운데서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도 시편 127:1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죽을 지경에 달해도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심을 믿을 때 우리는 평안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5-6, 10-11).

표준새번역 성경입니다, 5-6절,『[5] 아, 주님, 주님이야말로 내가 받을 유산의 몫입니다. 주께서는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 나의 운명은 주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6] 줄로 재어서 나에게 주신 그 땅은 나에게 기쁨을 주는 땅입니다. 참으로 나는 빛나는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10-11절, 『[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하나님이 기업과 소득을 주실 때 기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영혼이 만족한 것이 가장 우선이지만 또한 인간은 육체를 가진 존재이기에 육체도 안전하고 건강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양식도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서도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재물 얻을 능을 주시는 분’(신 8:18)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33절에서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말씀하시면서 먼저 영적인 것을 구하면 육체가 필요로 하는 것도 더 해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육체를 지닌 것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도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서 33년을 사셨기 때문에 육체의 필요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육체의 필요를 아시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셔서 육체의 배고픔과 갈증을 채워주셨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광야생활을 이겨나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의 필요를 채워주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길을 보여주시고 영생의 기쁨을 누리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11절을 표준새번역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주께서 몸소 생명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니,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 주께서 내 곁에 계시니, 이 큰 즐거움이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이 온전한 행복을 얻을 수 있기에 시편 146편 기자는 5절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또한 모세는 광야생활 40년을 끝내고 가나안땅을 바라보며 백성들에게 마지막 설교를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복이 있고 행복한 사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훈계하심이 있어야 합니다(7-8).

7-8절,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바른 훈계자가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교회의 어려움이 시작될 때 저를 아끼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여러 이야기들을 하셨습니다. 분쟁에 휘말리지 말고 다른 교회로 갈 것을 권유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지금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라고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하시는 충고들이었지만 해답은 서로 달랐습니다. 아버님께 조언을 구했더니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결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니까 쉽고 안전한 길로 가라고 하실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서 결정하라는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서 신앙양심을 따라 오늘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훈계를 밤마다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말씀으로 교훈하시고 어긋난 길을 갈 때는 사랑으로 책망하시는 하나님을 항상 앞에 모시고 살게 됨으로 흔들리지 않는다고 고백하면서 훈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훈계를 들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언제나 바르고 선하게 인도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행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됩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훈계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과 훈계하심을 따라 온전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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