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악인의 길

하마사 2007. 7. 2. 06:17
 

본문: 욥 20:1-29                       찬송: 492장

제목: 악인의 길

목표: 악인의 길을 부러워말고 의인의 길을 따라 소망가운데 살게 한다.


본문은 소발의 2차 변론이면서 동시에 욥기에 나오는 그의 마지막 변론부분입니다. 1차 변론이 나오는 11장에서 전통적인 교리주의자로서 욥을 정죄했던 소발은 2차 변론에서도 역시 악인은 모두 벌을 받기 때문에 현재 고난당하고 있는 욥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악인이라고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악인의 길을 걷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잠간이라는 것인데 꿈같이 지나가며 봄에 보이던 환상처럼 쫓겨간다고 8절에서 표현합니다.

본문이 말씀하는 악인의 길은 어떻습니까?


1. 자랑도 잠간입니다(5상)

5절 상반절, “악인의 이기는 자랑도 잠시요.”

여기서 ‘이기는 자랑’이란 ‘승리의 기쁨으로 떠드는 소리’로서 악인들이 스스로 선줄 알고 승리의 함성을 지르지만 멀지 않은 때에 돌연히 멈추게 되리라는 뜻입니다.

하박국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의인이 고난받고 악인이 번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관하시고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합 1:13).

우리들도 하박국처럼 하나님께 호소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악인들이 세상에서 잘 되어 자랑하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그러나 시 1:1-6은 복 있는 사람과 악인의 길을 대조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아서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악인이 승리하여 승전가를 부르며 자랑할지라도 그 자랑함은 잠시이고 악인의 길은 결국 망하는 길임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 다윗을 몰아내고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를 때 다윗은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맨발로 감람산길로 도망하자 그와 함께 한 백성들도 울면서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반란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노새를 타고 가다가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공중에 매달려 있다가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은 자기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던 두 가지로 말미암아 결국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즉 노새는 왕의 신분을 나타내던 것이며 그의 무거운 머리털은 백성들의 큰 호감을 사던 것이었지만 이 두 가지로 말미암아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악인의 자랑거리를 도리어 수치의 도구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공정한 섭리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악인의 자랑을 부러워하기보다 바울사도처럼 하나님을 자랑하고 오히려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즐거움도 잠간입니다(5하)

5절 하반절, “사곡한 자의 즐거움도 잠간이니라.”

표준새번역성경은 ‘경건하지 못한 자의 기쁨도 순간일 뿐이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악인은 "사곡한 자" 곧 경건하지 못한 악인의 즐거움도 잠간입니다. 계 3:17에서 말하기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악인들이 세상에서 즐거움을 누리고 번영할 수는 있지만 결코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번영과 행복은 영원한 삶과 비교할 때 잠시 잠깐 눈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는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는 거지로 부자의 대문 앞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거지로서 심지어는 개들이 와서 헌데를 핥을 정도로 비참한 생활을 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삶을 살다가 부자와 나사로가 죽었을 때 나타나는 장면은 이 땅에서의 생활과 정반대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자는 음부에서 불꽃 가운데 고통을 받으며 물 한 모금을 구걸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부자에게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눅 16:25). 이 땅에서 부자의 생활은 즐거움으로 가득 찬 듯했지만 그 생활은 영원하지 못했습니다.

땅에서의 시간이 아무리 길다하더라도 천국과 지옥의 영원한 시간에 비하면 순간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세상적인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천국에서의 영원한 기쁨이 준비되어 있음을 믿고 소망 중에 인내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형통함도 잠간입니다(21)

21절, “남긴 것이 없이 몰수히 먹으니 그런즉 그 형통함이 오래지 못할 것이라.”

악인의 길이 형통할 것 같으나 오래지 못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이 탐욕으로 인하여 가난한 자들에 대한 약탈행위를 하지만 계속되지 못하고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악인의 자녀들이 빈곤해지며 악인의 사망이 갑자기 찾아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0-11절을 보면 “그의 자녀들이 가난한 자에게 은혜를 구하겠고 그도 얻은 재물을 자기 손으로 도로 줄 것이며 그 기골이 청년 같이 강장하나 그 기세가 그와 함께 흙에 누우리라.”고 하여 악인이 받을 두 가지 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불의로 모은 그의 재물을 마침내 다 잃어버리고 그의 자녀들이 극히 빈곤해 진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11에 말하기를,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청년의 원기를 아직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연히 사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현재 누리는 승리의 자랑과 즐거움과 형통함은 영원할 것 같지만 결국에는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임을 분명히 알고 불평하거나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 84:10절에서 고라자손이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라는 고백을 했듯이 악인의 장막보다 하나님의 문지기로 살아가는 삶을 택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잠 14:11)는 말씀과 같이 악인의 길은 결국 망하는 길이지만 의인의 길은 흥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간있는 악인의 자랑, 즐거움,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의인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셔서 최후에 영원한 승리자가 되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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