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 다윗

하마사 2007. 5. 8. 06:13
 

본문: 행 13:21-23                           찬송: 82장

제목: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 다윗

목표: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게한다.


얼마전 신학교 입학하기 전에 다녔던 직장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약 10년이 지났는데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옮기거나 사업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아는 상사분들에게 인사를 드렸더니 참 반갑게 맞아주시며 요즘 무엇하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섬기고 있다고 했더니 신앙생활 하지 않음에도 어떤 분들은 자기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진지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중에 제가 신입사원 때 약 2년 모시던 과장님이 계셨는데 지금은 이사로 승진해있었습니다. 한번도 승진에서 누락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기업에서 임원이 되는 것은 군대에서 장군이 되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그분이 그렇게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사장님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경리부에서 인정을 받아 기획실로 가서는 보고자료를 잘 준비하여 사장님의 마음에 들게 일처리를 했습니다. 사장님의 마음에 드니 승진 때마다 일순위로 올라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들어도 이렇게 승진가도를 달릴 수 있는데, 하물며 우주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마음에 들면 얼마나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겠습니까?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신앙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성경으로부터 꼽으면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갈렙, 사무엘, 다윗, 엘리야, 엘리사, 다니엘 같은 인물들을, 신약성경에서 세례요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스데반, 바울, 바나바, 디모데와 같은 인물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 중에 다윗은 특별히 오늘 본문 22절에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다윗은 목동의 신분에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오늘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면서 우리들도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 다윗이 누렸던 복을 함께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1. 믿음의 사람입니다(삼상 17:45-47).

(삼상 17:45-47)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다윗은 매사에 신앙적이었고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과 전쟁이 벌어졌을 때 모든 이스라엘 군사들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두려워하여 벌벌 떨고만 있었습니다. 어린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이 싸우고 있는 전쟁터에 갔다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골리앗을 보고는 울분을 참지못해 그와 싸우게 됩니다. 도저히 상대가 될 수 없었지만 믿음의 사람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마주 나아가면서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믿음으로 골리앗 장수를 때려눕히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믿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즉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또 하나님은 믿음을 보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 즉 믿음의 사람들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속량하시기 위해서 애굽을 주시고, 구스(북부 수단)와 동쪽 국경에 잇대어 있는 스바까지 주셔서라도 구원해주시겠다고 이사야 43:4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들은 모두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으로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났습니다.

또한 히 11:17에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말씀합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리라는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드렸기에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이처럼 하나같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많은 학식과 재물, 명예와 권력이 있어도 그에게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믿음없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진들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얼마나 믿고 의지하는지 그 믿음을 보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84:12절에서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단어에는 ‘의지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은 의자가 튼튼하여 앉아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의자에 앉을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다면 절대로 앉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이 있기에 내 몸을 의자에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시기하여 사울이 죽이려고 할 때도 그는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사울왕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했기에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그의 삶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믿음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죽은 믿음과 산 믿음이 있고, 큰 믿음과 작은 믿음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2:26에는 “영혼없는 믿음이 죽은 것 같이 행함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6:30)” 하시며 믿음이 적은 자들을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바다에 풍랑이 일어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도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8:26)”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귀신들린 딸을 고치러 예수님 앞에 온 가나안 여인에게는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 15:28)”며 여자의 큰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대로 행동하는 살아있는 믿음 즉 행함있는 믿음, 큰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2. 열정적인 사람입니다(시 69:9)

(시 69: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셨습니다. 성전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로 장사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지방에서 제사 드리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사람들이 소와 양과 비둘기 등을 가져올 수 없으므로 그들을 위하여 돈을 받고 바꾸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후에는 제사장들과 야합하여 성전에서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이 예배보다는 돈벌이에 관심을 가지고 장사꾼들이 판을 치는 시장터가 되었으니 주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께서 채찍을 들고 장사꾼들을 사정없이 내쫓아버리는데 정신없는 사람과 같았습니다. 양과 소를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뒤엎으셨습니다. 마치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행동하셨습니다. 즉 열심에 삼켜버린바 되었습니다(요 2:17).

사도요한이 그 장면을 묘사할 때 다윗의 시편을 인용했습니다(시 69:9). 시편 69편은 압살롬의 난중에서 쓴 고난의 시입니다. 다윗의 아들 중에 가장 용모가 출중하였던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려하자 다윗은 왕궁을 버리고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그때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백성들 앞에 얼굴을 들고 나타나기도 부끄러운 수치와 치욕가운데서 지은 시입니다. 왕궁을 잃고 아들에게 쫓겨 도망한 다윗이 의지할 대상이 누가 있겠습니까? 아들이 반역을 일으킨 마당에 누구를 믿겠습니까? 하나님만이 의지와 믿음의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하는 간절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손으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그의 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사모하는 성전건축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자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열성이란 단어는 ‘열정’, ‘열심’이란 뜻으로 다윗은 하나님을 위한 열성이 자기를 삼켰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는 열심,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자기의 전인격이 타고 없어질 정도로 뜨거웠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이 열성이 하나님 마음에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자기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열정적인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 피땀어린 노력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남들이 알아주던 몰라주던 자기가 좋아서 하든 혹은 누가 시켜서 하든 열정을 쏟아 부을 때 성공의 열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열정적인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사울이란 사람은 예수님을 알기전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열심이 대단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어디 있다 하면 아무리 먼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그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비록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된 사람이었지만 그 열심만큼은 알아 줄만했습니다. 그 열정의 방향만 바꾸어주면 좋은 일군감이었습니다. 다메섹이라는 곳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잡아오기 위해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아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교회를 핍박하던 열심이 생명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는 열심으로 변화되어 위대한 사도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돌에 맞아 죽을뻔 하였고, 여러 번의 복음전도 여행 중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과 배고픔과 자지 못함과 추위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난들이 있었음에도 그 열정은 변함없었습니다. 바울의 이 열정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사울왕 앞에 갔을 때 사울은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고 말하며 싸움을 말리자, 다윗이 사울에게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고 말하자 사울이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며 골리앗과의 싸움을 허락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기에게 맡겨진 일은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열정적으로 감당했습니다. 이 열정을 보시고 하나님은 한 나라를 맡겨도 감당할 수 있으리라 여기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그 일을 열정적으로 감당할 때 하나님은 더 큰 일을 맡겨주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리고 더 큰 일이 주어지면 잘 하겠다는 생각으로는 영원히 큰 일감이 주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주어진다 해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어서도 그 열정이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다윗성에 하나님의 법궤가 들어올 때 뛰놀며 춤을 추면서 찬양을 하는데 그때 자기의 옷이 벗어지는 줄도 모르고 열정적으로 춤을 추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으면 왕의 신분으로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춤을 추었겠습니까? 이러한 열정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3. 사랑하는 사람입니다(시 18:1)

(시 18: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베드로는 평생에 세 번의 신앙고백을 합니다. 첫 번째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수가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잡은 고기가 없어 힘없이 그물을 씻고 있던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때 베드로는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그물을 내렸더니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습니다. 배를 육지에 대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 고백이 있은 후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하시며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이처럼 죄인임을 고백할 때 예수님과의 관계가 성립됩니다.

두 번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랴 하느냐?” 묻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하시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적인 대답에 주님은 대단히 기뻐하시며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롬 10:10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말씀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세 번째는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된 후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자기들의 고향으로 과거의 일을 찾아 떠났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고 힘주어 다짐하던 수제자 베드로도 바다로 돌아갔습니다. 실의와 좌절가운데 밤새 고기를 잡던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새벽에 찾아오셔서 친히 준비하신 생선과 떡을 먹이신 후에 베드로에게 세 번의 질문을 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주님의 질문 앞에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며 반복하여 대답합니다. 그러자 주님이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새롭게 사명을 부여해주십니다. 주를 진심으로 사랑할 때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즉 일감이 주어지고 일꾼을 삼으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할 수 없습니다. 세 번의 사랑을 확인하신 후에 주님은 그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겨주십니다. 그 후에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끝까지 충성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다윗도 베드로의 마지막 고백을 본문에서 하고 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말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세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찬양하며 모든 환난과 고통 중에 힘이 되어주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힘이 되어주셨기 때문에 다윗은 힘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비록 힘이 없을지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그의 편이 되어주셨기에 다윗은 능력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도와주시고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신명기 5:10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데 천대까지 베풀어주십니다. 이 약속대로 다윗의 왕위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다윗의 후손 중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왕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다윗을 생각하사 왕위를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영원한 왕위를 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다윗 한사람으로 인하여 자손대대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영광의 도구로 아름답게 사용되었고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약속의 도구로 쓰임받게 되었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의 사람, 열정적인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 마음에 드셔서 다윗이 누렸던 복을 함께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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