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 10:1-10
제목: 주님이 오신 목적
목표: 주님이 오신 목적을 알고 그 목적에 부합되는 삶을 살게한다.
모든 사람은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사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명이 끝나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도 하나님의 작품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가나안땅 앞까지 인도하는 것이 사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이 바라보이는 느보산으로 모세를 불러 가나안땅을 바라보게 한 후에 그의 사명이 끝났음을 알렸을 때 모세는 두 말없이 순종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의 사명은 요 1:7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즉 빛 되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이 자기 사명임을 분명히 인식하였기에 유대인들이 “네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에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선지자도 아니며 자기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이름없는 들풀도 이 세상에 온 목적이 있듯이 주님도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있음을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바로 알고 그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 생명을 주러 오셨습니다(10).
10절,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도적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목적으로 오지만 주님은 생명을 얻게 할 목적으로 오셨음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사탄은 생명을 도적질하고 멸망시키려 우는 사자처럼 사람들을 미혹하고 생명에서 멀어지도록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지만 주님은 죄로 인해 죽어가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을 주러 오셨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 생명을 얻고 사는 것이 주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죽어가던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생명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본문 9절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이 곧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이 곧 구원입니다. 생명을 얻고 사는 것이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루는 삶입니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오늘도 병원심방을 다녀왔습니다. 장에 용정을 제거하고 고통하고 있는 분이 빨리 퇴원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4년이상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생명에는 빈부귀천이 따로 없습니다. 생명은 모두 같은 생명으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바로 주님은 이런 귀중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처럼 소중히 여기시는 생명을 우리도 소중히 여기며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2. 더 풍성히 누리게 하러 오셨습니다(10).
10절,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구원하여 영생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도 하늘로부터 임하는 신령한 은사들을 풍성히 누리게 하시고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버리시고 성육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풍성히 누리며 번성하여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6일 동안 만드신 창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그것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새 생명을 얻은 우리들은 주님이 주신 생명을 더욱 풍성히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죄악가운데 머물러 있던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자답게 주님이 인도하시는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에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푸른 초장에서 풀을 뜯는 양떼들의 모습을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평안합니까? 초장이나 물이 있는 곳을 억지로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이 인도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비록 그런 푸른 초장이 아니고 쉴만한 물가와 같은 환경이 아닐지라도 주님이 인도하시는 것을 믿고 따라 간다면 반드시 선한 목자되신 주님은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해가시리라 믿습니다. 광야를 지나 가나안땅이 있었고 십자가 후에 부활이 있었습니다. 단지 지금 받는 어려움과 고통은 그곳으로 가는 과정일 뿐임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베풀어주신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자연과 가정 그리고 주변의 이웃들을 포함하여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살아가도록 누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생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들어 있는 사람들은 그 생명을 풍성히 누리지 못합니다. 병실에서 활동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병이 들면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생명이 있음에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들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섬기러 오셨습니다(11).
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막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육체의 몸을 입으시고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기시듯 우리가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섬기는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쁘게 살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주님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상을 찌푸리고 살며 염려하며 살아가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며 살도록 오늘도 우리를 섬기고 계신 주님이십니다.
<예화>세계 2차 대전 때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에 나가서 죽었습니다. 각 지방의 젊은이들이 영장을 받으면 큰 도시로 집결해서 밤늦게 야간열차를 타고 전쟁터로 떠났다고 합니다. 그때 워싱턴의 한 기차 정거장에 수백명의 장정들이 몰려들었고 시민들이 나와서 이들에게 차를 대접하며 전송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민들 가운데 밤마다, 밤늦게까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뜨거운 커피를 타서 전쟁터로 나가는 장정들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절뚝거리는 다리로 한 사람이라도 더 따뜻한 커피를 대접해 주려고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장정 한 사람이 자신에게 커피를 타주는 노인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에게 커피를 타주는 노인이 현 대통령인 루스벨트 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소아마비의 불편함을 무릅쓰고 밤마다 기차 정거장에 나와서 전쟁터로 떠나는 젊은 청년들에게 뜨거운 커피를 타주며 봉사한 것입니다.
대통령이 타주는 커피를 마신 젊은 장정들의 사기는 충천했고 이들은 전쟁터에 나가 국가와 대통령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충성했다 합니다.
하물며 만왕의 왕 예수님이 자기의 목숨까지 버리며 우리를 섬겨주시는데 사기충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주님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생명을 주러 오셨고, 더 풍성히 누리며 살도록 오셨고 그리고 우리를 섬기러 오셨습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을 알고 주님 주신 귀한 생명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며 살고 하늘의 신령한 은사들과 하나님이 베푸신 땅의 기름진 소산물들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주님의 섬김을 본받아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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