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참된 충성
목표: 충성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한다.
제가 군대에 입대하여 장교후보생교육을 받을 때 영천에 있는 3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대연병장이 있는 단상주변에 작은 나무들로 ‘충성’이란 글귀를 크게 만들어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경례구호도 ‘충성’이었습니다. 상관에게 인사할 때마다 크게 ‘충성’이라고 경례를 하곤 했습니다. 물론 충성이란 구호 속에는 국가에 대하여 충성하자는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그런데 충성은 군대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하면서도 꼭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주님의 군사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각자에게 직분을 주시고 책임을 맡겨주셨기에 그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도 충성을 언급하면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고 충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참된 충성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여기서 참된 충성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거짓된 충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충성은
1. 작은 것에 충성하는 것입니다(10).
10절,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예수님은 작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사역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에 대하여는 세리, 죄인, 창녀,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등 사회적인 약자인 작은 자들에게 늘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왕따시키는 세리와 죄인들과 더불어 식사를 하심으로 바리새인들로부터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는 비난을 듣기도 하셨습니다(눅 7:34).
또한 주님은 예루살렘을 입성하실 때 큰 나귀대신에 작은 나귀새끼를 타셨습니다. 겨자씨 비유를 통해서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는 나무가 된다고 하시며 작은 겨자씨를 강조하셨습니다.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도 다섯달란트와 두달란트 받았던 종들이 이윤을 남겼을 때 작은 일에 충성한 것을 칭찬하십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 하시며 소자에게 지극히 작은 냉수 한 그릇 대접한 것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상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반면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고 작은 자 한명을 실족케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작은 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본문에도 작은 것 중에도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사람은 큰 것에도 충성된다고 하시면서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충성할 때 큰 것도 감당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맡겨주신 직분이 아무리 작다할지라도 그것을 감사히 여기며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은 큰 것도 맡겨주십니다. 반대로 작은 일을 맡겨주었다고 투덜대며 충성치 않으면 큰 것을 맡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맡아도 감당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각자에게 어떤 일을 맡겨주셨습니까? 교회에서 어떤 직분과 일감을 맡겨주셨습니까? 감사함으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본인이 보기에 작은 것일지라도 기쁨으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큰 것이 주어질 때 감사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큰 것만 생각하는 사람은 큰 것이 주어져도 감사함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가정과 일터에서 하나님이 어떤 일감을 여러분들에게 맡겨주셨습니까? 그것이 어떤 일이든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로 믿고 충성스럽게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지금은 작은 일일지라도 큰일처럼 감당하시면 후에 하나님이 반드시 더 큰 일을 맡겨주시리라 믿습니다.
(예화) 작은 것을 소중히 하여 갑부가 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쓸모없는 폐지를 모아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나라의 최고 부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람은 장인이라는 사람입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중국 최대 포장지 업체인 주룽제지의 창업자 장인 회장이 자산규모 15억달러(약 1조5천억원)로 중국 부자순위 5위에 올랐다고 발표했습니다. 주룽제지가 가족 경영을 하고 있는 까닭에 형제들의 재산까지 합하면 중국 내 1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1985년 그녀는 28세의 나이에 단돈 3만위안(약 360만원)으로 폐지수집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비웃었습니다. 그녀는 폐지를 수집한 뒤, 그것을 재가공하여 포장재료로 되파는 일을 하면서 큰 수익을 올렸습니다. 이후 폐지량이 어마어마한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을 확장시키며 재벌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진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폐지 하나도 내겐 큰 재산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푼 한 푼 모아 생긴 정직한 돈으로 부자가 됐기 때문에 남들에게도 떳떳하다.”고 말입니다.
쓸모없고 보잘 것 없는 폐지였지만 그것을 모아 세계의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면서 일했기 때문입니다.
마 25:21절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2. 인정받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11-12).
11-12절,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이 말씀의 의미는 청지기에 불과한 사람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재물’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올바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참된 것 즉 진리인 하늘의 보화를 어떻게 맡아서 관리하겠느냐는 뜻입니다.
모든 것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맡아서 관리하라고 맡겨주신 물질이나 세상의 것들을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큼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신령한 복을 받겠느냐는 반문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겨주신 세상의 일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아 참된 것 즉 하늘의 보화를 얻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겨주신 세상의 일들을 잘 감당하여 인정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혹은 삶의 일터에서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손가락질 당하면서 하늘의 보화를 받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도 다른 이유로 인하여 욕을 먹을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을 개을리 하고 시간을 함부로 사용함으로 인하여 욕을 먹으면서 복음을 위한 고난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최선을 다해서 주어진 일을 감당하면 일터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삶의 자리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인정받도록 충성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성경의 인물중에 모세는 어떻게 충성했습니까? 하나님이 애굽에서 노예생활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모세를 부르시기 전까지 미디안광야에서 40년동안 양치는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했습니다. 충성스럽게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히 3:5에 “모세는 장래의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모세의 충성을 인정하셨습니다.
요셉은 어떻습니까? 애굽에 팔려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주인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을 관리하는 것이 직접적인 하나님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할지라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맡겨진 일을 감당할 때 그 집의 모든 소유를 위임받아 관리하는 가정 총무로 주인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으로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면서 그곳에서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 일들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어디를 보내주셔도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감당함으로 주인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어떻습니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지만 포로의 신분임에도 왕에게 가장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셉과 다니엘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먼저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지만 어디에 있든 인정받도록 주인에게 충성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고후 10:18에는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충성한다고 자기를 칭찬하고 자랑한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도 어렵지만 사람의 눈은 속여서 충성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충성은 하나님께 인정받도록 하는 충성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도록 충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온 마음으로 충성하는 것입니다(13).
13절,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잠간 위임한 재물을 주인으로 여기며 살지 말고 ‘참된 것’ 즉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축복’에 마음을 두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라는 뜻입니다. 재물과 물질이 충성의 대상이 둘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지근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하여 책망하시면서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5-16)고 엄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온유하시고 우리의 모든 아픔과 상처를 싸매어주시고 감싸주시며 위로하시는 분이지만 신앙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단호한 분이십니다.
여호수아도 이와 비슷하게 이스라엘백성들 앞에서 결단을 촉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4-15).
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 18:21)
세상도 좋고 하나님도 좋다고 하는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미지근한 신앙을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예화) 국민일보 겨자씨에 나왔던 짧은 이야기입니다. 31살 김 집사님은 딸 셋을 남기고 천국간 남편으로 인해 청상과부가 되었습니다. 살아야겠다는 믿음과 의지로 농사일이며 갯벌일이며 노점이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큰딸은 음악을 전공해 음악학원을 경영하고, 둘째딸은 초등학교 교사에 임용돼 아이들을 가르치고, 막내 또한 음악을 전공해 교회 반주로 봉사합니다. 김 집사님은 권사님이 되어 교회의 어머니가 되고 딸들 모두 고향교회를 돕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돗개의 충성이기도 합니다. 집에서 기르는 진돗개가 새벽기도 갈 때는 항상 앞장서 동행해주고 새벽기도 끝나면 기다렸다 집까지 호위해 주고 밤이면 잠들지 않고 대를 이어 가며 15년 세월을 한결같이 지켜주었기 때문입니다. 철철이 새끼를 낳아 아이들 학비도 보태고 교회 헌금도 하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진돗개를 보고 사람보다 더 많이 헌금하는 개라고 부릅니다. 진돗개가 15년의 세월을 한 주인을 위해 온 맘으로 충성한 일화입니다.
말 못하는 짐승도 자기를 사랑하는 주인을 위해 온 마음으로 충성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를 천국백성으로 삼아주신 하나님을 위해 온 마음으로 충성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잠 25:13의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는 말씀처럼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와 같이 우리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시는 충성된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 바랍니다.
참된 충성은 작은 것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충성하는 것입니다.
참된 충성을 하심으로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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