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마사 2006. 10. 17. 06:32
 

본문: 행 14:1-28                  찬송: 367장

제목: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목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주어지는 은혜를 바로 알게 한다.


오늘 본문은 바울과 바나바가 여러 지방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다가 겪는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이고니온 지방을 갔을 때 두 사도가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증거하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자 두 부류로 나뉘어지는데 두 사도를 좇는 사람들도 있고 오히려 반대하여 돌로 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고니온을 떠나 루스드라 지방에 와서 복음을 전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이 있어 고쳐주었더니 바나바는 쓰스신이라하고 바울은 허메신으로 부르며 그들 앞에 제사를 드리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더베와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을 거쳐 안디옥으로 전도여행을 다니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도상에서 회심한 후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이방인의 사도로 복음을 증거하면서 겪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즉 복음증거를 하지 않았으면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었지만 그는 목숨을 다하여 복음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겪게 되는 은혜를 깨닫고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사명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어떤 은혜가 있습니까?


1. 높여주심의 은혜가 있습니다(3, 11-12절).

3절,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11-12절,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씀을 선포하자 유대와 헬라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악감을 품게하여 복음을 방해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두 사도에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도록 능력을 주시고 담대함을 주셔서 계속적으로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루스드라 지방에서 복음을 전할 때는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을 보고는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명하니 뛰어 걷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바나바를 향하여 ‘쓰스’ 즉 제우스신이라 하고 바울은 허메신(로마신화로는 머큐리)이라 부르고는 쓰스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드리려고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사람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시키실 때는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높여주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바울과 바나바가 기적을 일으켰던 것처럼 하나님의 일을 위해 우리를 사용하실 때는 높여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구별의 은혜가 있습니다(4절).

4절, “그 성내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좇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좇는 자도 있는지라.”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이상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유대와 헬라의 많은 무리들이 믿었는데 반하여 유대인들은 악감을 품었습니다. 같은 복음을 들으면서 두 부류로 나뉘어 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수용하는 사람들과 악감을 품고 사도들을 해하고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모두다 한마음으로 협조만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협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은 빗방울이 백두산에 떨어져도 어떤 빗방울은 압록강으로 가고 어떤 빗방울은 두만강으로 흘러가듯이 같은 말씀인데도 듣는 사람들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뉘어 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예배 장소에 와서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방해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별하시는 분이십니다. 곡식과 가라지를 구별하시고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양과 염소를 구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심판주가 되시기 때문에 정확하게 구별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맡기시는 일을 하면 구별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믿는 사람들이 구별되고 심지어는 믿는 사람들 속에서도 구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마음아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별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알곡과 가라지, 양과 염소가 구별되듯이 분명하게 구별되기 마련입니다. 다만 우리가 심판하지 말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심판하심을 믿고 기도하며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3. 고난의 은혜가 있습니다(5, 19, 22절).

5절,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19절,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

22절,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두 사도가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능욕을 당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들자 도망하여 루스드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도망간 루스드라에서는 안디옥과 이고니온 지방에서 복음을 전할 때 방해하던 사람들이 루스드라까지 따라와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버리고 가는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복음전파 사역에 이런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막아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복음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뻔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높여주심의 은혜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고난의 은혜가 수반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빌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주님을 믿을 뿐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고난도 받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우리는 혹시 높여주심의 은혜만 기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적극적으로 돕고 협력하는 구별된 사람들만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고난의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도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의 일을 하며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은혜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고난 이후에 영광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구별의 은혜가 있습니다. 고난의 은혜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런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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