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
-하나님나라는 예수께서 지상에서 전하신 선포의 중심주제이다.
-초기기독교 공동체에 의해 전파된 케리그마와 사신의 전제이며 그 기초와 토대이다.
Ⅰ.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 이해에 있어서 상이한 입장들
1. 오직 미래적인 하나님 나라 이해- “철저한 종말론”: 슈바이쩌와 불트만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를 철저하게 종말론적으로 이해하였던 슈바이쩌와 함께 불트만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에서 단지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그에 관한 말씀 앞에서의 결단을 다룸으로서 미래적인 하나님 나라만을 인정하려고 하였다.
2. 전적으로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 이해- “실현된 종말론”: 도드
예수가 자신의 신분 안에서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만을 전하고 가르쳤다고 주장한다.
Ⅱ. 하나님 나라의 용어
1. 구약성경에서의 하나님 나라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는 구약의 후기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역사안에 그리고 현 세상 영역안에 나타나는데 구약의 묵시서인 다니엘서에서 이 사상이 등장한다.
2. 초기 유대교에서의 하나님 나라
초기유대교의 묵시문헌에서도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한편으로는 지상적이고 민족적인 옛 다윗 왕국의 재건에 대한 희망이란 의미로, 다른 한편으로는 다가오는 시대와 결합된 내세적인 기대라는 초월적인 의미로 나타난다.
3. 랍비문서에 나타난 하늘나라
초기 유대교의 랍비문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것을 꺼려하여 ‘하나님 나라’대신 ‘하늘나라’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랍비문서에서는 율법에 대한 인간의 순종을 고려하는 현재적인 하나님의 통치와 모든 세상에 최종적으로 권세있게 나타나게 될 하나님 나라가 함께 나타난다.
4. 신약성경에서의 하나님 나라 용어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말씀과 그와 관련된 교회형성문에 있어서 전형적인 관용구이다. 그래서 후기의 신약성경 본문에서 바실레이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대신하여 사용될 수 있었다. 게다가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나라’가 언급된다. 바실레이아는 ‘나라’ 혹은 ‘통치’로 번역할 수 있는데 한 단어로 적절하게 표현하기는 어렵다.
Ⅲ. 예수의 미래적인 하나님 나라 선포
막1:15가운데 있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라는 표현과 막13:29 하반절인 “그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표현을 들 수 있다.
주기도의 가르침과 간청하는 과부비유에서 하나님 나라 도래를 위해 기도할 것을 요구하셨다.
복선언의 부문장에 서술된 약속이 미래와 관련되어 있다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Ⅳ. 예수의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 선포
눅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의 축귀행위가 하나님 나라와 실제가 하나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종말론과 이적의 결합은 종교사적으로 예수에게서만 유일하게 발견된다.
눅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보여준다.
Ⅴ. 예수의 미래적이고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 선포의 의미
현재성과 미래성의 공존은 예수께서 전하신 하나님 나라 선포의 특징이다. 예수는 세상과 대립적으로 실현되는 종말론적인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현재함을 말하였으며,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의해 다가오는 종말론적이고 우주적인 나라를 말하였다.
Ⅵ.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의 특징
1. 일어난 사건이다.
예수에 의해 알려진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한 종말론적인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예수의 사역 안에서 마지막 때의 것이 앞당겨 일어나는 선취적 사건이며, 예수 안에서 현실화되는 현재적인 사건이고, 종말의 완성을 향한 시발적 사건이다. 이것은 예수의 이적행위와 비유에 잘 나타난다.
2. 하나님 스스로에 의해 일어나는 사건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스스로에 의해서 제공되는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는 그 스스로 다가온다. ‘스스로 자라는 씨앗’ 비유가 보여준다.
3. 종말론적인 구원사건이다.
예수께서 선포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심판재가 아니라 구원재이다. 전체인간을 위한 구원을 가지고 온다. 이것이 세례요한의 설교와 예수의 선포에 있어서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예수의 선포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있고, 그 선포의 중심에는 구원을 베푸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 나라의 구원성격은 특히 예수의 죄용서 선언에서, 예수의 치유이적에서, 귀신의 권세를 제압하는 예수의 권세에서, 세리나 죄인과의 식탁교제에서, 예언자적인 약속의 성취에서 잘 드러난다.
4. 선물적인 은혜의 사건 내지는 복음적인 사건이다.
율법에 앞서는 은혜의 우선성을 보여주는 “은혜의 나라”이다. 유대교가 “회개하라, 그러면 하나님 나라가 올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오고 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경우 하나님 나라의 가까움이 회개와 믿음 앞에 놓인다. 회개가 구원의 전제가 아니라 구원이 회개의 전제이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에 의해 아무런 조건이나 전제없이 제공되었다. 예수에 의해 선포된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노력이나 수고에 의해 얻어지는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5. 그 메시지를 들은 개인에게 회개를 요청하는 사건이다.
하나님 나라는 미래에 실현되지만 그 미래는 현재의 인간을 결정한다. 예수께서 전하신 하나님 나라 선포를 들은 사람은 그 메시지 앞에서 결단해야 하는 회개로 부르심을 받는다.
6.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사건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호칭할 수 있게 하심.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바’라고 부르신 것은 결코 하나님을 비하하는 호칭이 아니라 인간과 하나님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알림이다.
7. 사랑의 윤리를 요구하는 사건이다.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구원선물을 받은 자에게 그에 부합된 삶을 살 것인지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에 포함된 윤리는 하나님의 구원에 상응하는 윤리이며, 구원시대의 윤리요, 새 언약의 윤리이다.
Ⅶ. 결론
예수께서 전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그 용어에 있어서는 전승사적으로 구약. 초기 유대교 전승에서 전해받은 것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예수안에, 그리고 예수와 함께 도래하는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원으로 채워져 있다. 그것은 종말의 때 일어날 미래적인 구원의 현재적인 선취사건이며, 지금 여기서 역사하게 되는 역동적인 사건이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선물이며 동시에 시작되었으나 아직 목표에 이르지 않은 구원의 도상에 있는 자들에게 요구된 과제를 내포하고 있는 종말론적인 구원재이다. 이러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는 초기의 기독교 이래로 지금까지 모든 기독교 선포의 기초이며 토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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