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현관문 비밀번호가 갑자기 기억나지 않아 한참을 문 앞에서 서성인 적이 있습니다. 결국 아내에게 전화하여 확인 후 집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익숙했던 숫자의 조합이 머릿속에서 하얗게 지워지자, 불과 몇 센티미터 두께의 유리문은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장벽이 되어 저를 가로막았습니다. 내 집을 들어가지 못하는 그 당혹감과 소외감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번 설 명절, 수많은 이들이 고향을 찾습니다. 저도 주일예배를 마치고 부모님이 계시는 원주를 향해 출발하여 명절 기간에 부모님을 만나고 충주에 계시는 장모님과 가족들을 만날 겁니다. 해마다 명절이면 늘 같은 루틴을 반복합니다. 때로는 교통체증으로 고생도 하지만, 꽉 막힌 도로 위에서도 짜증보다 설렘이 앞서는 이유는 그 길 끝에 내가 돌아갈 ‘집’이 있고, 나를 맞아줄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이 지상의 고향보다 더 본질적인 영원한 본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의 삶을 마치고 천국 문 앞에 섰을 때를 상상해 봅니다. 그때 우리를 안식의 처소로 인도할 ‘영적 비밀번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화려한 경력, 쌓아둔 재물, 지식과 인맥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그리고 그분을 향한 진실한 믿음뿐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세상일에 분주해 정작 가장 중요한 천국 문의 열쇠를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현관문 앞에서 번호를 잊어 헤매던 저의 모습처럼, 인생의 마지막 문턱에서 정답을 몰라 방황하는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영접모임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연어가 물결을 거슬러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듯이 명절날 우리가 귀성 전쟁을 치르며 고향으로 향하는 건 우리 안에 숨겨진 '회귀본능(回歸本能)'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도에게는 육신의 고향보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품, 영원한 본향을 향한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입니다.
이번 명절, 육신의 가족과 정을 나누는 기쁨 속에서도 우리가 잠시 머물다 갈 '나그네'임을 기억합시다. 동시에 아직 비밀번호를 몰라 영원한 집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가족과 이웃들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내가 먼저 만난 예수 그리스도라는 소중한 통로를 그들에게도 전해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명절의 축복이자 성도의 사명입니다.
"집에는 들어가야 합니다." 단순한 문장이지만, 여기에는 우리 영혼의 사활이 걸려 있습니다. 이번 설 명절이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본향을 확신하고, 그 소망을 나누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심교회 > 목회자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429. 그리스도인의 나라 사랑 (0) | 2026.02.28 |
|---|---|
| 428. 영적 줄서기 (0) | 2026.02.21 |
| 426. 요즘 손님이 늘었나요? (0) | 2026.02.07 |
| 425. 임직자 선출을 준비하며 (0) | 2026.01.31 |
| 424. 새가족을 맞이하는 마음 (0) | 2026.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