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옛날 일과 새 일

하마사 2017. 12. 31. 19:10

본문: 43:18-21

제목: 옛날 일과 새 일

  

왕년을 자랑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옛날 일을 자랑합니다. 조상들이 고위관직에 있었고 부자였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반대로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셨고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케 하셨고 지금도 새로운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새 일은 파괴하는 일과 세우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의 세력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새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흐르고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가 넘실거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역사 속에 새롭게 펼쳐가고 계십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직접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16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로 시작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신 후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기 전에 먼저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전 일과 옛날 일은 출애굽 사건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행하신 가장 놀라운 일이 출애굽사건이었습니다. 출애굽사건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400년 동안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는 구원사건이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을 기억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다른 성경에서는 기억하고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12:42)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 46:9,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역사에 행하신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고 자손이 대대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서는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우리가 살면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가 하면 잊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기억해야 할 것과 잊어야 할 것을 잘 분별하여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과거의 아픔과 상처는 빨리 잊어야 합니다. 실패와 절망, 슬픔과 고통은 빨리 잊어야 합니다. 그것들을 안고 살면 우울증이 되고 그 속에 침잠되어 미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과거 속에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는 잊어야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과거의 영화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옛날에 잘 나갔다고 하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과거 속에 살아갑니다. 물론 과거의 교훈을 거울삼아 사는 것은 중요합니다. 바울사도는 과거를 교훈삼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평생 네 가지 은혜를 자랑했습니다. 자신의 과거, 자기의 약함, 고난목록, 십자가입니다. 그 중에 첫째가 부끄러운 과거였습니다. 유대교 광신자로 스데반 집사를 죽일 때 동참했고 교회 박해의 앞잡이였던 과거가 있었지만 사도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과거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새 일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옛날 일 즉 출애굽사건은 조상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였지만 이제 장차 나타날 새 일은 직접 경험하게 될 사건이었습니다. 이 예언은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이 바벨론을 정복하고 포로를 해방하는 역사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당시에 세계를 제패하고 호령했던 바벨론이 멸망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고레스왕을 도구로 사용하여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포로에서 해방시켜 고향땅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2017년은 이제 역사의 뒤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2017년에 있었던 실패와 아픔의 기억들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저에게도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 있습니다. 교회분쟁의 현장에서 목사로서 수모와 멸시를 당했습니다. 어린 청년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듣기도 했습니다상처로 남아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고생했는데, 함께 했던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오해와 배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 있을 겁니다.

이런 아픔과 절망과 상처를 새해에 미래로 가져가지 말고 버리고 가야 합니다. 옛날 일은 잊고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새 일은

1. 살리는 일(19)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전에도 일을 하셨고 지금도 일을 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새 일을 행하실 분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있는 베데스다 못 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며 예수님을 박해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5:17) 태초부터 이제까지 일하시는 하나님처럼 예수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은 살리는 일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광야와 사막은 살기가 어려운 곳입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힘든 곳입니다. 광야에는 길이 없습니다. 길은 사람들이 다닐 때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길을 만듭니다. 산에도 길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 등산로가 됩니다. 길을 따라가면 언젠가 사람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 길은 없어지고 맙니다. 길이 있다는 것은 생명이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길은 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광야에 길을 만들겠다는 뜻은 생명을 살게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광야를 생명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변화시키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막에 강을 내겠다는 것도 같습니다. 물이 없어 사막이 됩니다. 생명이 살 수 없는 사막에 강을 내는 것은 생명이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생명을 살리는 새 일을 행하십니다. 생명이 없는 곳에 생명을 살게 하는 일을 행하십니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와 사막에서 사는 것과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놀라운 생명역사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죽을 위험에 처했던 사람들을 살리셨습니다. 전쟁과 질병, 대적의 칼과 올무와 수렁에서 끌어내어 살려주셨습니다. 사자의 입과 풀무불 속에서 생명을 살려주셨습니다.

출애굽사건과 같은 이전 일과 옛날 일은 기억하거나 생각하지 말고 장차 행하실 새 일을 기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 사건과 다른 방법으로 구원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구원역사를 체험할 것이기에 더 이상 과거의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포로생활로 인해 낙심하고 절망하지 말고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새 일을 기대하고 소망하라는 말씀입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살리는 사람과 죽이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과 공동체를 살리는 일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사람과 공동체를 죽이는 일을 합니다. 요셉은 살리는 사람이었습니다. 형들은 죽이려 했지만 애굽 총리가 되어 기근으로 죽어가는 애굽과 주변지역을 살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후에는 자기를 죽이려했던 형들과 가문을 살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영생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자신이 죽어서라도 사람을 살리기 원하셨습니다. 또한 그 생명을 풍성히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생명체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입니다. 모든 좋은 것을 가져도 생명을 잃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사랑하십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자기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입니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구원하여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생명에는 빈부귀천이 따로 없습니다. 생명은 모두 같은 생명으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생명입니다. 살리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났을 때 장례행렬은 기쁨의 행렬이 되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났을 때도, 백부장의 어린 딸이 살아났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행하고 계시고 그 일에 협력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전도가 무엇입니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일입니다. 생명 살리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하여 죄인이 의인되고 사망에서 영생으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새 일을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생명 살리는 새 일을 행하듯이 우리도 생명 살리는 새 일을 행해야 합니다. 죄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육체적 질병, 정신적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억압과 속박 속에 눌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가난과 고통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실패와 소외감으로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일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새 일은 쉽지 않습니다. 먼저 생명을 사랑하는 사랑의 마음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광야와 사막으로 들어가는 도전정신과 희생정신이 필요합니다. 없는 길을 만드는 일은 고통이 따릅니다.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를 만드는 작업과 같습니다.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도 그랬습니다. 애굽의 노예로 억압 속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새 일을 맡기려 할 때 능력이 없다고 핑계했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새 길을 내는 일이었습니다.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는 기적을 창출하는 일이었습니다.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했고 많은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듣고 돌을 맞을 뻔도 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새 일을 위해서는 고생할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40년 걸려 광야에 새 길을 만들었습니다. 백성을 살리고 후손들이 거할 약속의 땅으로 가는 새 일을 행했습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 길을 내시고 광야에 길을 내어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셨듯이 바벨론 포로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는 길을 내시고 사막에 생명의 강이 흐르도록 새 일을 행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주심가족은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 살리는 하나님의 새 일에 우리 모두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주심가족 여러분! 교회를 살리고 이웃을 살리고 가족을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광야와 사막 가운데 길을 잃고 생수가 없어 절망가운데 있는 사람을 살리는 새 일을 행해야 합니다. 살리는 심장, 살리는 눈빛을 가지고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살리는 발걸음으로 다가가고 살리는 손을 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새 일을 행하는 주심가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존경받는 일(20)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에서 나오는 백성들이 마시도록 강물을 내실 것이며 그것으로 인하여 들짐승도 혜택을 보고 하나님을 존경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뿐만 아니라 들짐승까지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풍부한 강물로 인해 들짐승까지도 하나님을 존경하게 될 것이란 말씀입니다. 또한 들짐승이 하나님을 존경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반드시 하나님을 존경해야 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존경한다는 뜻은 문자적으로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존귀하게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동물들까지 하나님을 존경하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하나님을 높이고 존경해야 마땅합니다.

하나님이 존경을 받듯이 하나님의 백성도 존경받는 일을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로부터 존경받듯이 그리스도인도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존경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히려 손가락질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복음이 들어왔을 때 선각자들과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 결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한국사회를 선도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았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부정적인 언론의 영향도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을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부흥하고 성도의 숫자는 늘었지만 영향력은 감소했습니다.

(연합뉴스 통계자료)

1228일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가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5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1.23%)에 따르면 종교인구는 전체의 46.6%5년 전(55.1%)8.5%포인트 낮아졌습니다. 특히 20대 중 종교인구 비율은 30.7%로 평균보다 15.9% 포인트나 낮았습니다.

종교별로 보면 개신교인의 비율은 20.3%5년 전보다 2.2%포인트 낮아졌고, 불교인의 비율은 19.6%, 천주교인의 비율은 6.4%로 각각 2.5%포인트, 3.7%포인트 하락했습니다.

비개신교인 1천명을 대상으로 종교별 호감도를 조사한 결과, 개신교에 대한 호감도가 9.5%로 불교(40.6%)나 천주교(37.6%)에 비해 매우 낮았습니다. 개신교 이미지 평가에서도 '이기적이다'(68.8%), '물질 중심적이다'(68.5%), '권위주의적이다'(58.9%) 등의 응답 비율이 높았습니다.

 

많은 물질, 많은 지식, 높은 명예와 권력 자체로 존경의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고 섬길 때 감동을 받게 되고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재능이나 은혜를 함께 나누고 섬길 때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랑할 때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원수 같은 사람을 사랑할 때 감동을 주고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남아공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

남아공 만델라대통령은 세계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인종차별문제로 27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친 후 대통령에 선출되었을 때 직전 백인 정권의 대통령을 부통령으로 임명했습니다. 흑인 탄압의 핵심이었던 정보책임자, 자신에게 종신형을 구형했던 검사를 자택으로 초대해 정중히 대접했습니다. 백인 교도관 세 명은 대통령 취임식장에 초대해 귀빈석에 앉혔습니다. 흑인 단체가 백인 문화를 대표하는 럭비 대표팀 해체를 요구하자 오히려 만델라는 흑인이 단 한 명뿐인 럭비대표팀을 찾아가 격려했습니다. 감동한 백인 선수들은 1995년 남아공에서 열린 럭비 월드컵에서 결사적으로 뛰어 예상을 깨고 우승하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결승전이 끝나자 경기장에 모인 흑인과 백인이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 ~"을 연호했습니다.

사랑과 용서를 실천했기에 존경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기 싫어하고 꺼리는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이 존경받습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맡겨진 사명을 성실히 감당하는 사람이 존경받습니다. 인내하며 절제하여 목표를 성취했을 때 칭찬과 존경받습니다. 올림픽에서 피나는 노력과 훈련을 하며 환경과 자기를 이긴 선수들에게 메달이 수여될 때 감동이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원수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께 맡기고 스스로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목초지 문제로 갈등 할 때 롯에게 우선권을 주며 양보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13:9) 이런 믿음의 인물들이 존경을 받습니다.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줄 때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물이 없는 광야에 물을 내고 생명이 없는 사막에 강들을 내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때 존경받습니다. 하나님은 들짐승까지도 존경하도록 새 일을 행하셨습니다.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하나님의 백성에게 마시게 하셨습니다. 필요를 채워주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고통 받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존경받는 일을 해야 합니다. 생명의 물을 찾아 방황하는 영혼의 갈급함을 해결해주어야 합니다. 약하고 소외된 광야인생들에게 사랑의 물을 공급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영적인 필요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필요와 육체적인 필요까지 채워주는 전인적인 사랑과 섬김을 통해 존경받는 새 일을 행해야 합니다. 내가 속한 가정과 일터 그리고 이웃에게 존경받는 새 일을 행하며 사는 것이 결국 주심교회와 한국교회 나아가 세계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으로 믿고 존경받는 새 일을 행하는 주심가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찬송하는 일(21)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왜 그의 백성을 바벨론의 손에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해방하여 본국으로 귀환하게 하시는지 그 근본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들로부터 찬송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제1번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존경받는 자리에 서게 될 때 자기 영광을 취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노력과 헌신으로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게 되었으니 영광을 취하는 것이 당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존경받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하나님께 찬송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사명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직장이나 사업을 하여 경제적 이윤을 얻는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교회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과 섬김의 일, 구제하고 나누는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자기자랑과 영광에 그치면 새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내가 받으면 영적인 도둑질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받아야 할 찬송을 도중에 가로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찬양받기를 즐거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시며 만족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드신 피조물들을 통해서 스스로 기쁨을 누리셨을 뿐만 아니라 그 피조물을 통해서 영광받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다윗은 찬양을 좋아하는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왕으로 세우시고 높이셨음을 알았기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는 시로 하나님을 찬양했고 악기를 가지고, 춤을 추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성에 들어올 때는 자기의 옷이 벗어지는 줄도 모르고 온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는 자신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더 온전히 찬양하도록 하기 위해 레위인들을 중심으로 찬양대를 조직하고 악기, 찬양곡 등을 정비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5:23절에 하나님이 바벨론의 벨사살왕을 책망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벨사살왕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오히려 우상을 찬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거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에서 사용하던 거룩한 그릇으로 술파티를 벌이는 불경죄를 지었고 우상 숭배하는 죄까지 지었습니다. 성경은 그 부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 구리, 쇠와 나무, 돌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5:23) 그는 결국 메데군대의 야음을 틈탄 기습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헤롯의 죽음도 비슷합니다. 12:23절에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말씀합니다. 영광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않았을 때 벨사살왕과 헤롯왕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영광 받는 자리에 있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가로채 자기가 영광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존경받는 자리에 섰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광야와 사막에서 살아났고 은혜의 강물을 마시며 살고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찬송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초대왕이었던 사울이 악한 왕으로 변질된 사건이 무엇입니까?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올 때 여인들이 환호하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외친 소리 때문이었습니다. 자기의 영광을 다윗에게 빼앗겼다는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을 통해 하나님이 승리케 하셨다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면 다윗을 미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왕의 자리를 잃을까 걱정되어 다윗이 받는 칭찬을 두려워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케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면 사울은 훌륭한 왕으로 남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부자가 되고 사회의 지도층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목적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한 부자가 되고 사회의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영광만을 위한 재물과 힘을 가지면 오히려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패망의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성공적인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것이 성공적인 삶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화)하이든

하이든이 천지창조를 작곡하고 처음 연주회에서 발표할 때 일입니다. 연주회에 엄청난 관객이 모여서 연주회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연주가 끝났을 때 청중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지휘자에게 환호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지휘자는 그들의 박수를 중단시키고 이 영광을 받아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바로 저 발코니에 앉아 있는 분이 이 놀랍고 아름다운 곡을 작곡하셨습니다.”라고 말하며 하이든을 가리켰습니다.

하이든은 정색을 하고 이곡을 작곡할 수 있게 해 주신 분은 하나님이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영광 돌리는 새 일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주심가족 여러분! 2017년은 저물어갑니다.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에 동참하는 동역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살리는 일, 존경받는 일, 찬송하는 일을 행하며 사는 새 일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