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주시는 대로 감사하는 교회

하마사 2017. 12. 5. 11:54

본문: 살전 5:18

제목: 주시는 대로 감사하는 교회

찬송: 310

목표: 주시는 대로 감사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게 한다.

 

 

2000424일에 제가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날 영락교회 한경직 원로목사님의 장례식날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영락교회를 들러 조문하고 목사 안수를 받으러 갔습니다. 제가 존경했던 목사님이 가장 좋아했던 성경구절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일간신문에 실린 그분에 관한 기사에오직 자신이 좋아했던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서구절처럼 살려고 노력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은 말씀을 붙잡고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도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명령어 앞에 붙어있는 단어들이 우리를 주눅 들게 합니다.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라는 단어이지요. 이 단어들은 비슷한 뜻을 지니고 있는데, ‘언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는 핍박과 환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라고 말씀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감사의 마음을 간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범사에 감사하며 살 수 있었던 배경은 그가 예수님을 핍박하던 폭행자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그 은혜가 너무나 커서 일생동안 그 은혜를 감사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 사도처럼 범사에 감사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범사에 감사한다는 뜻은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주시는 대로 감사하는 교회와 성도는

1. 좋은 것 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어린아이들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좋은 것을 받아도 좋은 것인 줄 모릅니다. 다이아몬드와 좋아하는 장난감을 놓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장난감을 선택합니다.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각자의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이 최고로 좋은 것입니다. 병원에 입원한 분들이나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은 건강이 최고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돈이 좋은 것입니다. 몰론 현대인들은 모두 돈을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명예와 권력이 좋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쾌락일 수 있습니다. 수험생들에게는 대학합격이 좋은 것입니다.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취업이 좋은 것입니다. 좋은 것을 받으면 행복하고 기쁩니다.

그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좋은 것을 받고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지만 좋은 것인지 모르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 34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여호와를 찾는 사람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좋은 것을 주시되 부족함이 없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좋으신 분입니다.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는데 좋은 것을 받아서 오히려 좋지 않게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해야 하지만 오히려 죄를 짓는데 사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힘과 권력을 가지고 약자를 돕는데 사용해야 하지만 오히려 나쁜 방향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것이지만 잘못 사용하여 좋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지식은 좋은 것이지만 잘못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전기는 사람에게 편리함을 주지만 잘못사용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 총기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보호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을 살상하는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좋은 것을 구체적으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1:13절에서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하셨습니다. 마태가 기록한 좋은 것을 누가는 구체적으로 성령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여 변화된 모습을 목격하거나 생생하게 들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아름다운 변화의 모습을 알았기 때문에 성령이 좋은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성령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시인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믿음을 갖게 되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차적으로 성령을 주셔서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 것이 가장 큰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고전 12:3)“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예수님을 주라 고백할 수 있도록 하는 분이 성령입니다. 성령이 좋은 것이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믿음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주심가족 여러분!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성령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성령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이 시간 좋은 것이 무엇인지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좋은 것을 주셨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주심교회를 개척한 것이 은혜이고 감사의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입니다. 개척을 생각하며 고민도 했지만 하나님은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가족들에게 건강을 주신 것이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신앙으로 세워져가는 것이 감사합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신 것이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감사하라는 말은 하나님이 무엇을 주시든지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다면 도저히 실천할 수 없는 불가능한 말씀입니다. 주님 안에 있을 때 우리를 구속하신 대속의 은혜가 감사하여 어떤 슬픔이나 고통에도 감사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생길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 있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5:4-5절 말씀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15: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주님 안에 있다는 말씀은 생명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가지는 단지 나무줄기에 붙어 있으면 됩니다. 이것은 곧 말씀 안에 거하고자하는 실천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열매는 농부와 나무줄기의 몫으로 여기고 오로지 나무줄기에 붙어 있으려는 노력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만 병들거나 병충해로 인해 가지가 줄기의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지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병충해를 막을 수 없습니다. 포도원 농부가 하는 일입니다. 가지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로지 가지에 붙어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농부가 다 알아서 합니다. 거름을 주고 김을 매고 병충해를 방제하여 열매 맺도록 하는 전 과정을 농부가 책임을 집니다. 그러기에 가지는 염려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농부 되시는 하나님과 나무줄기 되시는 예수님께 맡기면 주시는 대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주시는 대로 감사하는 교회와 성도는

2. 사명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명이라는 말씀입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루소는 사람은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존재하기 위해 태어나고, 또 한 번은 일하기 위해 태어난다. 때문에 사람은 자기 사명을 발견하기까지는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각자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사명을 확실히 아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사람들이 다가와 유혹했습니다. “당신이 혹시 메시아가 아닙니까.” 요한은 그때 자신이 메시아라 말할 수도 있었고, 아니면 애매한 말로 자신을 포장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3:16)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고,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 속에 태어난 것을 잘 알았습니다. 사명을 알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선을 넘지 않습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어제 저녁 늦게까지 전기공사를 했습니다. 지난주에 조이홀 전기가 나가서 밥이 되지 않았습니다. 전기밥솥과 커피포트 등을 사용하니 용량이 초과되어 차단기가 내려갔습니다.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원인을 확인하니 한 선에 과부하가 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용량을 초과하면 차단이 되어 전기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선을 깔고 공사를 했으니 오늘은 이상이 없을 것입니다. 전기선도 나름대로 자기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화)브살렐과 오홀리압

성막을 만들 때 브살렐은 목공이나 금속과 관련한 대부분의 일을 주도하였고 가장 중요한 법궤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오홀리압은 베를 짜고 수를 놓고 의복을 제작하는 등 섬유관련일의 전문가였습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각각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서로 협력하며 성막과 성막기구를 만드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각자의 사명이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했습니다.

사명은 우리를 살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사명이 있기 때문에 살고 있습니다. 사명이 끝나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명을 확실히 몰라도 사명 때문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명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사는 이유를 알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지키고 율법을 수호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는 것이 사명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받고 고난조차 감사하며 생명조차 아끼지 않았습니다.

 

(예화)봉천동 슈바이처 윤주홍장로

의사가 되면 가난한 이들을 돌보겠다고 서원했던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의사가 되자 돈을 벌기 위해 주일까지 범했습니다. 1974년 어느 날 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천지가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의사 가운을 벗고 병원문도 닫았습니다. 이듬해 봄, 딸아이 무덤에 다녀오는 길에 열이 펄펄 나는 어린 소녀를 안고 울고 있는 가난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선배 병원에 아이를 업고 가서 치료비를 부담할 테니 고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후 할머니와 소녀가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아저씨도 의사야? 그런데 의사 옷을 안 입어? 청진기도 귀에 안대네.” 그는 소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오랜만에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댔습니다.

그 순간 천지를 깨우는 듯한 심장의 고동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하나님! 작은 자를 돌보지 않고 세상을 따르던 저를 이제야 깨우십니까.” 그는 당시 빈민들이 몰려있던 봉천동에 병원을 다시 세웠습니다.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아이와 어른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봉천동 슈바이처 윤주홍 장로님 이야기입니다.

사명을 발견하자 새로운 의사로 변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명으로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다릅니다. 목사라도 사명으로 하는 사람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직장생활 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주심교회의 사명이 있습니다. 수많은 교회들 중의 하나의 교회지만 분명한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주심교회 문을 열고 들어오면 앞에 보이는 액자가 있습니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교회라는 붓글씨가 쓰여 있습니다. 어제 어떤 집사님 부부가 붓글씨로 쓴 액자를 기증해주셨습니다. 어디에 부착할까 고민하다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었습니다. 주심교회의 사명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입니다.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는 교회는 본질을 상실한 교회입니다. 친교단체나 교육 문화기관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생명을 살려야 합니다. 치유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영혼을 치유하는 병원과 같습니다. 영혼을 구원하여 성숙한 제자로 살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교회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것이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마디의 말씀을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여섯 번째로 하신 말씀이 다 이루었다입니다. 사명을 완수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인류를 구원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사명이 이루어졌습니다.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죽는 게 두려운 것이 아니다.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게 두려운 것이다.”사명을 모른 체 산 것은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 사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알고 하면 복입니다. 큰 사업이든지, 아니면 작은 사업이든지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한다면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입니다. 목사이지만 사명이 없으면 불행합니다. 마지못해서 직업으로 목사를 한다면 본인도 불행하고 성도도 불행합니다. 사명으로 교사를 하면 학생들이 행복합니다. 피아노 반주를 하는 이우리 자매님은 반주를 사명으로 알고 기쁘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주심교회에서 반주하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주심 오케스트라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세 명의 아마추어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예배 때 봉사할 목적으로 함께 모여 연습하고 있습니다. 사명으로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다릅니다.

사랑하는 주심가족 여러분! 어떤 직업, 어떤 일을 하느냐 보다 사명으로 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주심가족들은 하나님이 각자에게 사명을 주신 분들입니다.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까? 다니던 교회들이 있었는데 주심교회로 오셨습니다. 특별한 사명이 있어 오신 분들입니다. 저도 사명이 있어 암사동으로 왔습니다. 위례신도시에 개척을 하려고 오래 동안 기도하고 준비했습니다. 이 건물로 온 것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우연히 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주심교회에서 함께 믿음생활 할 분들은 모두가 사명자들입니다.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이 있고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사명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가정에서의 사명, 일터에서의 사명, 교회에서의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사명의 역할과 자리가 다를 뿐입니다. 지금 일을 하면서 기쁘고 하나님께 감사하십니까? 그것이 사명입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소한 일이라도 사명으로 알고 감사하며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사명 주신 하나님께 주시는 대로 감사하는 주심교회와 주심가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시는 대로 감사하는 교회는

3. 다른 것 주심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의미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주셔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칭찬받는 신앙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일생의 소원이 성전 짓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감사하면서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해주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육체에 가시가 있어 선교사명을 감당하는데 지장을 초래하여 건강회복을 위해 세 번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와는 다르게 응답하셨습니다. 그 때 바울은 도리어 크게 기뻐하며 자기의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의 위대한 신앙이 시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는 구절입니다. 하박국은 생존권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세 종류의 나무인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는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가장 사랑받는 과일나무들입니다. 이런 나무에 소출이 없다는 것은 그 땅이 황폐되었음을 말하고 있으며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폐허로 변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농작물과 가축들이 없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구원의 소망을 간직하며 즐거워하며 기뻐하겠다는 감사의 고백입니다.

가진 것을 가지고 감사하는 것은 쉬워 보입니다. 그런데 가진 것을 가지고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하기보다는 더 좋은 것을 가진 사람을 보고 오히려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진 것을 가지고 감사하는 것도 그리 쉬운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최소한 지금 가진 것을 가지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 단계 더 나아가 가진 것이 없어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기도하고 구한 것을 받지 못해도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감사는 굉장한 능력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하다가 그들은 빌립보 관원들에게 잡혀서 실컷 얻어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하나님께 원망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기도하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16:25-26)

그들이 감사하고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자 천지가 진동했습니다. 다른 것을 주셔도 감사하고 찬송할 때에 하늘과 땅이 진동하는 것입니다. 모든 속박이 풀어지고 쇠고랑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슬픔과 고통의 쇠고랑, 불행과 실패의 쇠고랑, 질병의 쇠고랑이 끊어집니다. 감사하고 찬송할 때 쇠고랑이 끊어지고 감옥 문이 열립니다. 죄악의 감옥 문, 슬픔의 감옥문, 가난의 감옥 문, 좌절의 감옥문, 우울의 감옥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감사하고 찬양할 때 이런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50:23)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입니다. 행위를 옳게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보이시는 사람입니다.

 

(예화)감사노트

제 홈페이지에 감사노트가 있습니다. 오늘로 3,230번째로 감사노트를 적었습니다. 9년째 매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감사가 습관이 되게 하는 저의 훈련입니다.

감사는 행복과 비례합니다. 어제 저희교회 김형분집사님의 장남 이민규군 의 결혼식 주례를 했습니다. 저는 결혼 주례할 때 골로새서 3:17~21절 말씀으로 주례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첫째가 감사하는 부부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17) 했습니다. 말을 하든지 일을 하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능력을 받아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생활도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받아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를 하는 만큼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불평하는 만큼 불행합니다. 발레리 앤더스 감사는 결코 졸업이 없는 과정이다.”라고 했습니다. 생활 속에 감사를 졸업하면 행복을 졸업하고 불행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심가족 여러분! 생명이 다할 때까지 결코 감사를 졸업하지 말아야 합니다.

존 헨리(John Henry) 박사는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해독제요, 방부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에 우리 마음에 엔돌핀이 많이 나와서 항암효과가 있습니다. 이처럼 감사는 우리에게 기쁨과 건강을 가져다줍니다. ‘감사하나만으로도 이렇게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또한 감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과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다줍니다.

미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땡큐(Thank you).”‘감사합니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마음에서 기적의 씨앗이 자라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 어떠하든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마음에는 평안과 기쁨이 찾아오고, 결국은 고난을 이기고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감사는 절망을 밀어내고 희망을 끌어오는 기적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는 산수의 덧셈이나 곱셈과 같아서 감사하면 할수록 그곳에는 크고 작은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반대로 감사가 없는 삶은 뺄셈이나 나눗셈과 같아서 받은 축복까지도 잃어버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작은 감사를 통해 일상에서 작은 기적을 주시지만, 가끔 역경과 시련의 때에도 크게 감사하는 사람을 통해 큰 기적을 베푸십니다. 감사는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적게 주시면 적게 누리고, 많이 주시면 많이 누리면 됩니다. 적게 주시거나 많이 주시거나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 때 평안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받으면 되고,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감사하며 살면 됩니다.

(예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세계 대통령 중 감옥에 가장 오래 있었던 사람입니다. 무려 27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출옥할 때 사람들은 만델라가 아주 허약한 상태로 나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70세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취재를 하러 나온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5년만 감옥살이를 해도 건강을 잃어서 나오는데, 어떻게 27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서도 이렇게 건강할 수 있습니까? "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감옥에서 모든 것에 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물을 마시며 감사하고, 음식을 먹으며 감사하고, 강제 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만델라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대통령에도 당선되었습니다. 주시는 대로 감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예화)

예수님이 길을 가시던 중에 한 주정꾼을 만났습니다. “당신은 지체장애인이었던 나를 고쳐주었지요? 그 후에 내가 여러 직업을 구해 보았으나 동냥만큼 좋은 직업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제는 다리가 성하니 동냥도 할 수 없어 돈이 생기면 술만 마시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길을 가다가 예수님께서 눈을 뜨게 해 주셨던 시각장애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포악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사정없이 때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내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 눈을 떠서 무엇을 보라는 것입니까? 보이는 것은 모두 신경을 자극하고 화만 나게 하는 것뿐입니다. 결국 나는 화풀이를 하려고 깡패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지옥의 단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고쳐주신 병자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풍자적인 상상력으로 쓴 이야기입니다.

은혜와 감사를 모르고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은 지옥의 단편(斷片)’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의 단편을 써가야 합니다. 주시는 대로 감사하면서 주님의 심장으로 사랑하고 섬길 때 천국이 이 땅 위에 이뤄집니다.

 

사랑하는 주심가족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감사합시다. 주시는 대로 감사하는 교회는 좋은 것 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사명 주심에 감사해야합니다. 다른 것 주심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로 행복해지는 주심교회와 주심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