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주님의 심장이 되는 교회

하마사 2017. 12. 5. 11:51

본문: 1:7-8

제목: 주님의 심장이 되는 교회

찬송: 218

목표: 주님의 심장이 되는 교회 한다.

 

 

역사상 가장 음반이 많이 팔린 여자 가수 중 하나로 꼽히는 나나 무스쿠리는 위대한 가수를 만드는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심장(heart)”이라고 했습니다. 훌륭한 가수는 목소리로만 노래하지 않고 심장으로 노래하는 것임을 말했습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한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한다는 것이 어떤 뜻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은 심장, 창자, , 폐 등 체내에 있는 중요한 내장을 종합적으로 지칭하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새번역성경),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바른성경), ‘예수 그리스도의 창자(내장)’, ‘예수 그리스도의 애정’, ‘예수 그리스도의 열정’, 등으로 번역했습니다.

또한 사모하다열심히 원하다’, ‘간절히 바라다’, ‘그리워하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빌립보교인들을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런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었고 지금 로마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심장이 아릴 정도로 사랑하고 아파한 적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심장이 아릴 정도로 보고 싶어 한 적이 있습니까? 부모님은 자식이 속을 썩이고 엇나갈 때 심장이 아릴 정도로 아파합니다. 오늘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예수님의 사랑과 심정으로, 내장을 끓이는 심정을 가지고 그리워한다고 했습니다.

금요일 군대에 있는 둘째 아들과 통화를 했습니다. 요즘 군대는 참 좋아졌습니다. 생활관에 전화가 있어서 전화를 걸면 통화할 수 있습니다.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며 현일이와 지은이 넷이서 주변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둘째가 빠져서 군대 생활관으로 전화했더니 마침 받았습니다. 삼겹살 파티를 한다고 했더니 너무 오고 싶어 했습니다. 내장이 요동칠 정도로 집이 그리웠을 것입니다.

 

주님의 심장은

1. 사랑의 심장입니다.

(1:7-8)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바울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어떤 학자는 바울의 맥박은 그리스도의 맥박과 함께 뛰고 그의 심장은 그리스도의 심장과 함께 고동친다.”고 했습니다.

증인이란 단어는 법적 용어로 증거를 가리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증거 혹은 증인을 나타내며, 때로는 순교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는 법적 효력을 갖는 신실한 증인이란 의미로 쓰였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랍비들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거나 확증하기를 두려워했는데, 바울이 이렇게 담대하게 하나님을 자신의 증인으로 내세우는 것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자신의 애정이 얼마나 지극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보증하실 정도로 진실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이처럼 사랑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7절입니다.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매임이나 변명함이나 확정함이라는 말은 모두 법률적인 용어들입니다. 바울은 실제로 복음전파의 일로 투옥되었으며 법정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진리를 변명하고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인들은 이런 바울을 물질로 후원하고 기도로 도움으로서 바울의 복음사역에 동참하였습니다. 바울이 로마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바울 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빌립보 교인들은 위험과 불이익을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바울을 도왔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 마다 감사했고 기도할 때 마다 기쁨으로 항상 기도했습니다.

바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명백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며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죄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상징입니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위해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주신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생명입니다. 생명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간증)

'목사님! 우리를 위해 죽을 수 있나요?' 언젠가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어떤 분으로 부터 받았던 질문입니다.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늘 마음 깊이 맴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죽을 수 있듯이 저도 자녀들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고 말하자 어떤 분이 '목사님, 우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나요?'라고 갑자기 질문했을 때 선뜻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입술로 쉽게 대답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정말 성도들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지 자신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희생입니다. 자기의 가족이나 은혜 입은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도 아름답고 숭고하지만 어려움에 처한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 자기의 생명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위대한 영웅입니다.

 

(예화)이재근 선교사님의 간 이식 대상자

지난 주 개척예배 때 축도를 해주신 이재근 선교사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다 추방되어 태국에서 선교를 하였습니다. 선교활동 중에 건강에 이상이 생겨 검진을 했더니 간경화로 판정을 받았습니다. 간이식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부모님과 동생의 간을 이식받으려 했지만 부적합했습니다. 가까운 친척들에게 요청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친인척이 아닌 경의 장기매매의 위험성이 있어 국가에서 금지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두 분의 선교사님이 간을 기증하겠다고 했지만 승인 받기가 어려웠습니다. 진정성이 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얼마 전에 승인을 받아 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 소중한 것을 떼어주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심장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불가능합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수치와 모멸을 당하며 십자가에 달려죽으셨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새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생각할 때 감격과 감사가 터져 나옵니다. 새 생명을 얻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희생의 대가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바쳐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희생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목사이지만 '우리를 위해 죽을 수 있나요?' 라는 질문에 여전히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는 부족한 목사입니다. 저는 지금도 새벽마다 기도하는 제목이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와 사랑과 구령과 찬양의 열정과 능력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사랑의 열정과 능력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사십부터가 아니다. 이십부터도, 육십부터도 아니다. 인생은 십자가로부터다!” 194510월 히틀러 치하에서 억압 받던 독일교회는 세속화된 신앙을 재정비하고자 십자가 앞에 모여 참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슈투트가르트 선언문입니다. 슈투트가르트 선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째, 더욱 용감하게 신앙고백하지 못한 죄를 자백합니다. 둘째, 더 진실하게 기도하지 못한 죄를 자백합니다. 셋째, 더 감사와 기쁨에 넘쳐 살지 못한 죄를 자백합니다. 넷째, 더 뜨겁게 사랑하지 못한 죄를 회개합니다. 십자가 없이는 용감한 신앙고백도, 진실한 기도도, 감사와 기쁨에 넘치는 삶도, 뜨거운 사랑도 있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만이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심장은 사랑의 심장입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기의 심장을 이식하고 돌아가신 사랑이 십자가 사랑입니다. 바울사도는 이런 예수님의 심장으로 빌립보교인들을 그리워하고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심장을 이식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심장으로 이방인들을 사랑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고난을 감수하며 감당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랑받는 빌립보교인들도 행복하지만 죽도록 사랑하는 바울 역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은 주님을 가리켜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했습니다.

 

외국의 한 출판사에서 "친구" 라는 단어를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말을 공모한 적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밤이 깊을 때 전화하고 싶은 사람, 나의 아픔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 주는 사람 등 여러 가지 정의를 내렸지만 그 중 1등을 한 것은 이렇습니다. "온 세상이 나를 등지고 떠날 때 나를 찾아줄 수 있는 사람"

사람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사람의 아픔과 슬픔을 사랑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친구 또한 아무나 될 수 있지만 아픔과 슬픔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진정한 친구는 아무나 될 수 없는 법이지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예수님은 우리의 진정한 친구이십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등지고 떠날 때 도리어 나를 찾아와 함께 해주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목숨까지 기꺼이 나를 위해 줄 수 있는 사랑의 심장을 가진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의 심장으로 사랑해야 할 대상을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을 가진 손양원 목사님처럼 살수는 없습니다. 그런 성자 같은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하지만 가까운 가족을 주님의 심장으로 사랑하십니까? 아내를, 남편을 주님의 심장으로 사랑하십니까? 자녀들을, 부모님을 주님의 심장으로 사랑하십니까? 주심가족을 주님의 심장으로 사랑하십니까?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용납할 수 없는 사람, 미운 사람을 주님의 심장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까? 주님의 사랑의 심장을 경험하고 느낄 때 가능합니다.

주심교회는 이런 주님의 심장을 이식하는 센터입니다. 주님의 심장을 이식받으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 힘과 의지와 능력으로 불가능하지만 주님의 심장이 내 심장으로 이식되면 가능합니다.

이 예수님의 사랑의 심장을 이식받은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했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심장으로 하나님과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심장은

2. 섬김의 심장입니다.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얼마 전 서서평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서평이란 천천히 평온하게라는 뜻을 지닌 이름입니다. 그녀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셰핑으로 선교사입니다. 주로 광주지역에서 활동하다가 54세의 나이로 천국에 가신 분입니다. 서서평 선교사가 살던 방의 침대 맡에 붙어있던 글귀가 감동을 주었습니다. "Not success, But survice"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예수님은 친히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세상의 통치자처럼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섬기며 더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마다 섬기기보다는 섬김 받기를 좋아합니다. 교회의 직분가운데 집사’, ‘하인’, ‘섬기는 자와 동일한 어군에서 나왔습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섬기는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목사도 장로님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최초의 일곱 집사를 세운 것도 봉사의 직무를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의 심장은 섬김의 심장입니다. 예수님은 섬기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시고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며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면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봉사를 하셨습니다. 그들 중에는 중풍병자, 맹인, 청각장애인, 혈루병 앓는 여인, 귀신들린 사람, 간질병자, 나병환자, 열병 걸린 사람, 말 못하는 사람, 손 마른 사람, 수종병자, 38년 된 병자, 나사로와 야이로의 딸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같은 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무력하게 하고 절망하게 만드는 많은 병과 약함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많은 현대인은 육체적인 질병뿐만 아니라 스트레스성 질환, 우울증, 불안증, 강박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많은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 병자들을 찾아가 삶의 고통을 공감해주면서 치료해주셨습니다.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섬겨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세족식 장면이 있습니다. 당시 유대에서는 하인이나 종이 손님의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3:15)고 하셨습니다.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화) 도마뱀 이야기

일본 도쿄에 올림픽이 열렸을 때 스타디움 확장을 위해 지은 지 3년 된 건물을 헐게 되었는데 지붕을 벗기던 인부들은 뒷다리 쪽에 못이 박힌 채 벽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도마뱀 한 마리를 발견하였습니다.

집주인은 인부들을 불러 그 못을 언제 박았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인부들은 집을 짓던 3년 전에 박은 것이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3년 동안이나 못에 박힌 채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는 사실에 모두들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공사를 잠시 중단하고 도마뱀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어 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도마뱀은 3년이란 긴 세월동안 못에 박힌 도마뱀을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먹이를 가져다주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섬김이 예수님의 심장을 가진 섬김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보는 이 없어도 한결같이 섬겨주는 사람이 예수님의 심장을 가진 사람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심장으로 빌립보교인들을 위해 복음으로 그리고 기도로 섬겼듯이 빌립보 교인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못에 박힌 도마뱀처럼 옥에 갇힌 바울을 섬겼습니다. 바울이 로마감옥에 있을 때 물질로 여러 번 섬겼습니다. 에바브로디도를 보내 바울 곁에서 돕도록 섬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심교회는 주님의 심장으로 섬기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모두가 섬김 받으려면 불행합니다. 내가 먼저 섬겨야 합니다. 주님의 심장으로 섬겨야 합니다. 높은 사람이 먼저 섬기십시오. 목사가 먼저 섬겨야 합니다. 담임목사실을 섬김실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목양실로 했다가 다시 만들었습니다. 담임목사인 제가 먼저 섬겨야 합니다. 처음에는 잘 안될 수 있습니다. 16년 동안 큰 교회에서 부목사 생활을 하며 섬김 받는 것에 익숙해있기 때문입니다. 저부터 노력하겠습니다. 안수집사님과 권사님들이 먼저 섬기시기 바랍니다. 남이 하기 싫어하는 궂은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연장자가 먼저 나이어린 사람을 섬기십시오. 교회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섬겨야하는 공동체입니다. 주방봉사가 그렇습니다. 섬기는 사람일수록 윗사람입니다. 조이홀 봉사는 앞으로 남자들이 저와 함께 설거지 봉사를 했으면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 주님의 심장은 섬김의 심장입니다. 섬김의 심장으로 가족과 이웃을 섬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심장은

3. 사명의 심장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예수님의 사명을 여러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친히 성경을 인용하여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안식일에 나사렛 회당에 가셨을 때 회당장이 이사야의 글을 주었을 때 예수님은 이사야 61:1절의 말씀을 읽고 오늘 이글이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명을 위해 열정적으로 사역하셨습니다. 식사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삐 일하셨습니다.(3:20) 많은 환자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두고 한가로이 식사할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사역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택하시기 전에 산에 가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6:12) 산에서 철야기도를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사명을 감당하기 전에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때까지 열정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셨습니다. 성전 안에는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로 장사판이 되었습니다. 지방에서 제사 드리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사람들이 소와 양과 비둘기 등을 가져올 수 없으므로 그들을 위하여 돈을 받고 바꾸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후에는 제사장들과 야합하여 성전에서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이 예배보다는 돈벌이에 관심을 가지고 장사꾼들이 판을 치는 시장터가 되었으니 주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예수님은 양과 소를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뒤엎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을 들고 장사꾼들을 사정없이 내쫓아버리는 모습이 정신없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행동하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성전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으로 찬양과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었습니다(11:17).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성전을 자신의 이익을 채우는 목적과 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강도의 소굴로 전락한 현실을 보고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과 열정으로 성전을 청결하게 하셨습니다. 열정이 없다면 그냥 간과하고 묵인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성전을 장사하는 소굴로 그냥 두고 보실 수 없었습니다. 사명과 열정이 있는 사람은 불의를 보고 지나칠 수 없습니다. 열정이 있으면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합니다.

사도요한이 그 장면을 묘사할 때 시편 69편을 인용했습니다. 시편 69편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쓴 고난의 시입니다. 다윗의 아들 중에 가장 용모가 출중했던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려하자 다윗은 왕궁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때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백성들 앞에 얼굴을 들고 나타나기도 부끄러운 수치와 치욕가운데서 지은 시입니다. 왕궁을 잃고 아들에게 쫓겨 도망한 다윗이 의지할 대상이 누가 있겠습니까? 아들이 반역을 일으킨 마당에 누구를 믿겠습니까? 하나님만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하는 간절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손으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그의 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사모하는 성전건축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때 다윗은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69:9)라고 고백했습니다.

열성이란 단어는 열정’, ‘열의’, ‘열심이란 뜻으로 다윗은 하나님을 위한 열정이 자기를 삼켰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는 열심,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자기의 전인격이 타고 없어질 정도로 뜨거웠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이 열정이 하나님 마음에 맞았습니다.

 

세상에서 자기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열정적인 사람들입니다. 열정은 집중’ ‘몰입’ ‘미쳤다는 말과 같습니다. 일에 미쳐서 열심히 하는 것을 영어로 인수지에즘’(enthusiasm)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엔테오스(entheos)라는 희랍어에서 왔습니다. ‘은 들어간다, ‘테오스는 신이란 뜻입니다. 미친다는 것은 어떤 일에 신들려서 영감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예수님의 복음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을 심문하던 총독 베스도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26:24) 바울의 열정을 본 사람은 미쳤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열정의 심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알기 전에 성도들을 핍박하는 열심이 대단했습니다. 그것을 사명으로 잘못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디 있다 하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달려가 그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비록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된 사람이었지만 그 열심만큼은 알아 줄만했습니다. 그 열정의 방향만 바꾸어주면 좋은 일꾼이었습니다. 다메섹이라는 곳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잡아오기 위해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아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위대한 사도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돌에 맞아 죽을 뻔하였고, 복음전도 여행 중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과 배고픔과 자지 못함과 추위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들이 있었지만 열정은 변함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이 열정을 보시고 바른 방향으로 변화시켜주셨습니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복음전파 사명에 헌신했습니다.

 

(예화) 루비 켄드릭 선교사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가면 루비 켄드릭의 묘가 있습니다. 1907년 급성맹장염으로 25세의 청춘을 조선 땅에 묻은 여선교사입니다.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자기를 파송한 텍사스 청년단체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만일 내가 죽으면 텍사스 청년회원들에게 열 명씩, 스무 명씩, 오십 명씩 아침저녁으로 조선에 나오라고 전해주세요. 만약 내게 줄 수 있는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나는 천 개의 생명을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그녀가 부모님께 보낸 마지막 편지의 일부입니다. “이곳은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모두들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같아요. 선한 마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보아 아마 몇 십 년이 지나면 조선은 주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선교본부에서는 다들 철수하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자기들이 전도한 조선인들과 아직도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유난히도 집에 가고 싶어요.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바로 이것은 조선에 대한 제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조선을 향한 열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 엄마사랑합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열정적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주심교회가 이 곳에 새워진 사명이 있습니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삼는 교회입니다.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는 교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영혼을 살리는 일은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구제와 봉사는 복지기관들이나 NGO(민간조직)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을 살리는 일은 교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심교회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위해 주님의 심장으로 열심을 품고 감당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바울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이 자기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쁨으로 항상 기도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증인이라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질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욱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보다 더욱 행복한 내일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은 어떤 심장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 주님의 심장은 사랑의 심장입니다. 섬김의 심장입니다. 사명의 심장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이식받아 살았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님의 심장으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빌립보교인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주심가족 여러분! 우리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이식받아 가족과 이웃, 교회와 속한 공동체를 사랑하고 섬기고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랑과 섬김과 사명의 심장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믿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이식받아 살았던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가족과 이웃과 속한 공동체를 사랑하고 섬기고 열정으로 사명 감당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