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노출/삶자락이야기

구걸하는 목사

하마사 2017. 5. 6. 21:18

요즘은 구걸하는 사람들을 잘 볼 수 없다.

과거에는 지하철이나 지하도에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냥 지나치기도 죄송하고, 적은 액수지만 매번 드리기도 그렇고.

만날 때 마다 작은 고민이었다.

그분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드리고도 마음이 썩 개운치만은 못했다.

몸의 장애로 구걸하는 분들은 동정심을 유발한다.

복지가 잘 되어선지 그런 딱한 분들을 대하지 않아 감사하다.

한데, 구걸하는 목사가 있다.

성도들에게 물질을 구걸하면서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정당화한다.

워낙 급하면 그렇게 할까하고 이해도 되지만.

한 번은 그럴 수 있어도 습관이 되면 문제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사람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기도하면서 도와줄 사람을 생각하면 바른 기도가 될까?

물론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문제는 하나님이 사람을 감동시켜 일하시기 전에 먼저 사람을 찾아간다.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자랑한다.

기도만하고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것도 교만이라고 하면서.

무엇이 바른 기도이고 하나님의 종인지 헷갈린다.

기도하고 하나님이 도우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아니면 기도하고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엘리야는 그릿시냇가에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공급받았지만, 사르밧 과부에게는 떡을 달라고 요청하였다.

물론 하나님이 미리 여인을 감동시켜 준비하셨지만.

그렇다면 엘리야가 말하기 전에 사르밧 과부가 스스로 준비하여 음식을 주었다면 고민이 덜할 텐데.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다.

필요를 아는 좋은 아버지이시다.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은 아시지만 또한 성경은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한다.

어떤 때는 기도하고 사람의 도움을 요청하고, 또 어떤 때는 기도만 하고 까마귀를 기다려야 하는지 기준이 뭘까?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구걸하는 걸까? 아니면 하나님의 감동에 순종하는 걸까?

욕심으로 기도하고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면 구걸과 무엇이 다를까?

작게 주시면 작게 받으면 되고, 많이 주시면 많이 받으면 된다.

작게 주시는데 많이 받겠다고 억지를 쓰면 영적인 편법이 작동한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되는데.

다급하면 구걸도 부끄러워하지 않겠지.

그렇게 될까 두렵다.

구걸하는 목사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이 앞서서 인도해주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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