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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人 도밍고

하마사 2016. 10. 12. 09:45
황지원 오페라 평론가
황지원 오페라 평론가

몇 년 전,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의 시즌 개막 공연을 보러 갔다. 주역으로 플라시도 도밍고(75)가 출연했다. 한때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우리 시대 최고의 테너로 군림했으나 나이가 들자 목소리를 조금 낮춰 바리톤으로 전향한 성악가. 그날도 세 시간에 걸쳐 베르디 오페라를 불렀다. 무대에서 그는 제노바의 최고 권력자였고, 동시에 딸을 향한 애타는 사랑으로 괴로워하는 아버지였다. 노(老) 대가의 무시무시한 열연에 관객들은 천둥 같은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커튼콜은 그날 밤 내내 이어질 것만 같았다.

공연 열기에 감전돼 숙소로 들어가지 못하고 빈 시청 인근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기적 같은 공연을 직접 봤다는 흥분된 마음으로 맥주를 들이켜는데, 등 너머 시청사 쪽에서 도밍고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게 아닌가. 그는 마이크를 잡고 인사말을 하더니 곧 유명한 찬가 '빈, 너 꿈의 도시여(Wien, du stadt meiner traume)' 한 소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야외 오페라 감상회 등을 여는 곳이어서 극장에서 녹화한 걸 방송사 중계로 틀어줬겠거니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뉴스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 공연을 마친 도밍고가 빈의 명물인 1번 트램을 타고 직접 시청까지 찾아와서 스크린 앞에 모여 있던 팬들에게 일일이 인사하고, 노래 한 곡을 불러주고, 포옹에 사인까지 해준 것이었다. 당시 도밍고의 나이는 일흔 하나였다.

[일사일언] 鐵人 도밍고

그는 지금도 세계 최고 오페라 가수이자 지휘자이며 LA 오페라 총감독에 후학을 양성하는 국제 성악 콩쿠르를 주관한다. 수많은 극장과 페스티벌의 예술감독도 맡고 있다. 그가 출연하는 공연은 언제나 매진, 암표 값도 두 배 이상 뛴다. 도밍고의 좌우명은 '쉬면 녹슬어 버린다(If I rest, I rust)'. 스케줄을 보건대 그는 앞으로도 녹슬지 않을 것 같다. 진정 우리 시대의 철인이다.

-조선일보, 201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