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의 시즌 개막 공연을 보러 갔다. 주역으로 플라시도 도밍고(75)가 출연했다. 한때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우리 시대 최고의 테너로 군림했으나 나이가 들자 목소리를 조금 낮춰 바리톤으로 전향한 성악가. 그날도 세 시간에 걸쳐 베르디 오페라를 불렀다. 무대에서 그는 제노바의 최고 권력자였고, 동시에 딸을 향한 애타는 사랑으로 괴로워하는 아버지였다. 노(老) 대가의 무시무시한 열연에 관객들은 천둥 같은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커튼콜은 그날 밤 내내 이어질 것만 같았다.
공연 열기에 감전돼 숙소로 들어가지 못하고 빈 시청 인근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기적 같은 공연을 직접 봤다는 흥분된 마음으로 맥주를 들이켜는데, 등 너머 시청사 쪽에서 도밍고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게 아닌가. 그는 마이크를 잡고 인사말을 하더니 곧 유명한 찬가 '빈, 너 꿈의 도시여(Wien, du stadt meiner traume)' 한 소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야외 오페라 감상회 등을 여는 곳이어서 극장에서 녹화한 걸 방송사 중계로 틀어줬겠거니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뉴스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 공연을 마친 도밍고가 빈의 명물인 1번 트램을 타고 직접 시청까지 찾아와서 스크린 앞에 모여 있던 팬들에게 일일이 인사하고, 노래 한 곡을 불러주고, 포옹에 사인까지 해준 것이었다. 당시 도밍고의 나이는 일흔 하나였다.
공연 열기에 감전돼 숙소로 들어가지 못하고 빈 시청 인근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기적 같은 공연을 직접 봤다는 흥분된 마음으로 맥주를 들이켜는데, 등 너머 시청사 쪽에서 도밍고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게 아닌가. 그는 마이크를 잡고 인사말을 하더니 곧 유명한 찬가 '빈, 너 꿈의 도시여(Wien, du stadt meiner traume)' 한 소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야외 오페라 감상회 등을 여는 곳이어서 극장에서 녹화한 걸 방송사 중계로 틀어줬겠거니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뉴스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 공연을 마친 도밍고가 빈의 명물인 1번 트램을 타고 직접 시청까지 찾아와서 스크린 앞에 모여 있던 팬들에게 일일이 인사하고, 노래 한 곡을 불러주고, 포옹에 사인까지 해준 것이었다. 당시 도밍고의 나이는 일흔 하나였다.
그는 지금도 세계 최고 오페라 가수이자 지휘자이며 LA 오페라 총감독에 후학을 양성하는 국제 성악 콩쿠르를 주관한다. 수많은 극장과 페스티벌의 예술감독도 맡고 있다. 그가 출연하는 공연은 언제나 매진, 암표 값도 두 배 이상 뛴다. 도밍고의 좌우명은 '쉬면 녹슬어 버린다(If I rest, I rust)'. 스케줄을 보건대 그는 앞으로도 녹슬지 않을 것 같다. 진정 우리 시대의 철인이다.
-조선일보, 201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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