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노출/삶자락이야기

3대가 함께 한 벌초

하마사 2016. 9. 3. 18:00

쉬는 날에 아버님을 모시고 두 아들과 함께 선산에 다녀왔다.

5대조 조상부터 조부 묘소가 있는 곳이다.

두 분씩을 합장했으니 세 개의 묘소와 더불어 친척의 묘소까지 벌초했다.

작년에는 아버님을 모시고 동생과 다녀왔었다.

올해는 군대에서 휴가 나온 큰 아들과 학교방학 중인 둘째 아들도 함께 데려갔다.

손주들을 대동하고 가시는 아버님이 기뻐하셨다.

평소에는 동생이 주로 예초기를 사용하고 나는 낫으로 하는 작업만 했었다.

금년에는 내가 예초기로 벌초를 했는데 처음에는 위험하기도 하고 서툴렀다.

차차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제법 농부수준에 근접했다.

구슬땀을 흘리며 조상들의 묘소를 벌초하는 보람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일찍 천국에 가셔서 사진으로만 뵈었지만 할머니는 98세에 돌아가시면서 많은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셨다.

기도와 성경읽기 생활, 주의 종 섬기는 자세, 이웃사랑을 실천하시던 모습 등은 가슴속에 깊이 간직되어 있다.

공부하다 잠이 들면 머리맡에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도해주시던 할머니의 기도소리는 영원히 잊지 못한다.

맏손자가 목사 되기를 바라시던 대로 목사가 된 장손이 할머니 산소를 벌초했다.

예초기로 풀을 깎고 두 아들은 낫과 갈퀴(갈고리)로 작업을 도왔다.

벌초를 하면서 조상들께 면목이 섰다.

요즘은 아들보다 딸이 더 인기가 좋지만 아들이 있어야 함을 실감했다.

아빠보다 커진 아들들이 듬직하고 뿌듯한 마음을 갖게 했다.

두 아들이 나를 이어 벌초를 하겠지만,

앞으로 산소 숫자는 늘고 후손들은 줄어드는데 벌초를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두 아들을 위해서도 나와 아내는 산소를 만들지 말아야 하겠다.

천국에 갈 텐데 구태여 이 땅에 무덤을 만들 이유가 있을까?

안 그래도 좁은 땅에 무덤으로 자리를 차지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자녀들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되는 자리를 만들고 가면 되지 않을까?

내 몫의 벌초는 감당할 것이다.

언젠가 내가 벌초의 대상이 될 때는 세상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그 때 후손들은 벌초를 어떤 마음으로 대할지도 궁금해진다.

3대가 고향을 방문하여 조상들의 흔적을 더듬어보고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온 뜻 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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