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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전문학교 세운 언더우드, 死後 100년만에 유언장 처음 공개

하마사 2016. 4. 7. 11:54

[오늘의 세상]
어릴 때부터 돌봤던 비서 김규식,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재산 나눠줘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남긴 유언장 겉표지. 이 유언장은 뉴욕주(州) 킹스 카운티 유언 검인 법원(Surrogate’s Court)이 1916년 12월 6일 집행했다.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남긴 유언장 겉표지. 이 유언장은 뉴욕주(州) 킹스 카운티 유언 검인 법원(Surrogate’s Court)이 1916년 12월 6일 집행했다. /박형우 연세대 교수 제공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한 고(故)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한국명 원두우·1859~1916)의 유언장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꼭 100년 만이다.


6일 본지가 입수한 35장 분량의 유언장은 사후(死後) 재산 분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언더우드는 유언장에서 개인 비서인 김규식(1881~1950)에게 500달러와 함께 선교사들이 황해도 솔내(松川)에서 주식회사 방식으로 운영했던 별장(Beach Company) 주식 5주를 남긴다고 했다. 김규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총장과 부주석 등을 지낸 독립운동가로, 사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된 인물이다.

언더우드는 고아였던 김규식이 어린 시절 열병과 영양실조를 앓고 있을 때 직접 돌보며 치료했고, 이후 슬하(膝下)에 두고 근대식 교육을 시켰다. 김규식은 1904년부터 10년간 그의 개인 비서로 일하기도 했다. 언더우드는 유언장에서도 아들과 아내에 앞서 김규식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언더우드는 저술한 원고와 그 저작권은 외아들인 호레이스 호톤 언더우드(한국명 원한경)에게 줬다. 또한 5000달러와 장서(藏書), 책장도 아들 몫으로 남겼다. 5000달러는 당시 서울역 앞 대지 3만3000㎡(약 1만평)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나머지 유산은 모두 아내에게 넘긴다고 돼 있다.

언더우드는 1906년 4월 서울에서 이 유언장을 작성했고, 10년 뒤인 1916년 신병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사망했다. 이 유언장은 박형우 연세대 의대 교수가 '연세대학교는 어떻게 탄생했는가'라는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미국에서 발견했다. 영국계 미국인인 언더우드는 장로교 선교사로, 1885년부터 1916년까지 국내에 머물며 교육과 의료, 선교 활동을 펼쳤다.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설립을 주도했고, 초대 교장을 지냈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조선일보, 201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