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에 고향에서 가족들을 만나 정겨운 시간을 보냈다.
가정예배를 드릴 때 아버님이 가정별로 기도를 해주셨다.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면 늘 목이 메신다.
해외에 있는 동생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다.
세 명의 동생들이 외국에 있어 명절에도 만날 수 없으니 아쉽다.
세배를 했다.
몸을 굽혀 절을 할 수 있는 부모님이 계셔서 감사했다.
딸에게 세배를 받았다.
큰 아들은 군생활로, 작은 아들은 아르바이트 하느라 함께 할 수 없었다.
세배를 받으며 어른이 되고 있다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윷놀이를 했다.
서로의 말을 잡고 잡히면서 웃음꽃이 만발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말을 잡고 좋아한다.
한 번에 세 동의 말을 잡더니 마지막 말까지 잡고는 어쩔 줄 몰라 한다.
윷놀이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가족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기쁨을 더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맑은 공기를 쐬러 드라이브를 했다.
감악산, 은골 옛길, 치악산 입구를 다녀왔다.
어머님이 좋아하셨다.
가족들이 함께 하는 시간이 좋으셨던 모양이다.
다음 명절에는 가족들과 등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둑해지자 함박눈이 내렸다.
순식간에 10cm가 넘는 눈이 펑펑 쏟아졌다.
하얀 눈이 수북수북 쌓이는 것을 근래에 본 적이 없었다.
시골에서 내리는 눈은 도시의 눈과 달라보였다.
눈 내리는 풍경은 좋았지만 눈길을 운전할 생각에 걱정이 되었다.
부모님의 염려를 뒤로 한 채 함박눈을 맞으며 운전했다.
충청도로 접어들자 눈은 흔적도 없었다.
대한민국이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가에 도착하여 함께 식사를 하고 윷놀이를 했다.
양가에서 올린 명절 성적은 저조했다.
다음날 아침 송강저수지를 갔더니 빙어낚시를 하는 강태공들이 있었다.
가족보다 물고기를 더 좋아하는 분들이었다.
얼음위에 텐트를 친 낚시꾼들을 보면서 웃음이 났다.
점심을 먹은 후 서울로 올라왔다.
명절에 장례가 났기 때문이다.
설 다음날부터 장례를 집례했다.
내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동안 유족들은 슬픔을 견디고 있었다니.
벽제에서 화장하고 남양주에 있는 납골당에 모시는 것으로 장례를 마쳤다.
명암이 교차한 명절이었다.
기쁨을 누리다가 연휴 후반에는 슬픔을 함께 했다.
인생이 이런 것이 아닐까?
잔칫집과 초상집이 있듯이 기쁨과 슬픔은 공존하기 마련이다.
명절에도 슬픔을 당하는 가정이 있다.
영원한 기쁨도, 영원한 슬픔도 없다.
기쁨과 슬픔이 맞물려 돌다가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성도의 마지막은 슬픔 속에서도 소망이 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에 있는 성경말씀으로 유족들을 위로했다.
주림과 목마름, 상함이 없고, 사망과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는 곳, 저주가 없고, 밤이 없고, 하나님이 빛이 되셔서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는 천국을 소망하며 슬픔을 이기게 했다.
이런 소망이 없다면 인생은 허무하다.
성도에게 천국은 슬픔을 상쇄하는 소망의 원천이고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