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골 1:24~29
제목: 풍성한 교회
하나님은 풍성하신 분입니다. 에덴동산을 만드실 때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죄를 짓고 풍성함을 잃어버렸습니다. 땀을 흘려 수고해야만 먹을 수 있고 해산의 고통과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떠났을 때 풍성함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버지의 집은 넉넉하고 풍성했지만 집 떠난 탕자는 결핍으로 고생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날 때 인생에 결핍이 생깁니다. 부족함과 모자람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풍성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개인에게도 예수님이 계신다면 풍성한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금년 우리 교회의 기원은 ‘풍성한 교회’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결핍이 있었습니다. 싸움과 다툼으로 우리의 마음이 지쳐 영적인 풍성함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랑이 식고 미움이 자리했습니다. 자기의 옳음을 주장하며 서로를 비방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풍성함이 사라지고 황폐한 사막으로 변해갔습니다. 기쁨과 감격으로 와야 할 교회에 답답한 마음으로 올 때가 많았습니다.
2016년에는 미움과 다툼, 반목과 질시가 사라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화해와 용서를 통한 생명과 풍성함의 은혜가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적인 생명의 공급처인 교회가 풍성하면 개인과 가정, 일터까지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풍성한 교회는
1. 채우는 교회입니다.(24절)
24절,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바울사도는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골로새교회는 바울사도가 개척한 교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괴로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하여 유대인들로부터 받는 고난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받는 고난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괴로움과 고난을 기뻐할 사람은 없습니다. 고난을 받으라고 하면 모두 도망갑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받는 괴로움과 고난을 오히려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던 자기를 부활하신 주님이 다메섹도상에서 만나주시고 사도로 일꾼삼아주신 은혜가 너무 크기에 복음을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를 구원해주시고 복음전파의 사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엄청났기에 어떤 괴로움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은혜가 풍성하면 그리스도를 위해 당하는 고난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육체에 채운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인류를 구원하기에 부족하여 더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최고의 고난을 담당하셨습니다. 그 고난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의 부흥을 위해 필요한 고난이 바울에게는 물론이요 골로새교인들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남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땅 끝까지 복음 전파하는 것을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맡겨주셨습니다. 바울은 복음전파 과정에서 받았던 모든 고난의 흔적을 예수님의 흔적이라 했습니다. 갈 6:17,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말했습니다. 복음을 위한 고난의 흔적을 육체에 채웠습니다. 한번 채우고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채워갔습니다. 아무리 힘든 고통이라도 한번만 감당한다면 참을 수 있지만 지속될 때 견디기 어렵습니다.
군대에서 산속에서 얼음을 깨고 팬티바람으로 물에 들어가 군가를 부르는 혹한기훈련이 있었습니다. 먼저 얼음 속에 들어간 전우들을 바라보며 밖에서 대기할 때 훈련이 빨리 끝나기를 원합니다. 미리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 부럽습니다. 이런 훈련은 견딜 수 있습니다. 한번으로 끝나면 되니까요. 하지만 계속적으로 고통이 반복된다면 끔찍합니다.
바울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한 계속적으로 당하게 될 고난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기뻐하며 감당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골로새서를 쓰고 있는 장소는 로마감옥이었습니다. 현재 옥중에서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앞으로 닥칠 괴로움과 고난까지도 기뻐하면서 육체에 채워가겠다고 했습니다.
역설적 기쁨입니다.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멈출 수 있는 고난이었지만 고난을 마다않고 계속적으로 기뻐하면서 그 고난을 육체에 채우겠다고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하여 육체에 채운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교회의 몸이고 머리로 비유합니다. 복음으로 인해 받는 고난은 교회를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몸이고 머리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교회의 주인이심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광성교회뿐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지상의 모든 교회는 예수님이 주인이십니다. 상대측 교회의 주인도 예수님이십니다. 몸의 어느 한곳이 고통을 당할 때 몸 전체가 아파하듯이 주님의 교회가 미움과 다툼으로 상처를 받고 있으면 예수님의 마음 또한 찢어지는 아픔을 겪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까지 예수님은 몸이 찢어지는 아픔으로 기다려오셨습니다. 우리가 아파하는 것 이상으로 주님은 더 아파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더 이상 아파하지 않도록 화해하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교회를 통해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고 교회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시편 128:4-5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말씀합니다. ‘시온’은 하나님이 임재하는 성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성전 곧 오늘날의 교회로부터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복음을 전하다가 받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해 짊어져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의 흔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번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고난을 기뻐할 수 있었던 까닭은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느니라.”(롬 8:18) 현재의 고난을 이기려면 미래의 영광을 믿고 소망해야 합니다. 현재의 고통과 비교할 수 없는 장차 나타날 영광을 믿는 사람은 고난을 극복 할 수 있습니다.
지나온 우리교회의 고통, 가정의 고통, 일터의 고통, 질병의 고통, 물질의 고통 과 현재 겪는 고난을 2016년 새해에 주어질 영광, 미래에 천국에서 누리게 될 영광을 기대하며 소망으로 이겨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광복을 맞이하며 김구 선생은 기쁜 마음으로 귀국을 했습니다. 당시 국내 사정은 너무나 좋지 않아, 산업시설이나 교육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있지 않았고 또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치안시설마저 부족하여 불안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김구 선생의 참모들은 먼저 나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경찰서를 추가로 건립해야 된다고 건의했습니다. 하지만 김구 선생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경찰서 백 개를 세우는 것보다도 교회 하나를 세우는 것이 훨씬 낫네!”
김구 선생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누가 보지 않아도 법을 지킬 것이며 이웃을 사랑할 것을 믿었습니다. 이웃사랑이 점차 퍼져 범죄 없는 지역으로 변화 될 것을 믿었습니다.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경찰서 백 개 이상의 몫을 감당하는 은혜와 사랑이 풍성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생명 살리는 사랑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육체에 기쁨으로 채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풍성한 교회는
2. 이루는 교회입니다.(25~27절)
25~27절,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이루다’는 말은 ‘완성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교회,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완성하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난 받는 것은 복음 전파하는 사명 때문이며, 교회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목적은 지금까지 감추었던 하나님의 비밀을 성도들에게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으심, 부활사건을 통해 감추어져있던 구원계획이 이방인에게도 나타났습니다. 유대인들에게만 계시되었던 복음이 이방인에게까지 확장되어 구원의 반열에서 제외되었던 이방인들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인에게까지 전파함으로서 성경의 모든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도록 교회의 일꾼으로 세우셨습니다. 바울은 평생 하나님의 일을 위해 충성하며 많은 교회를 세우고, 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바울이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자 하는 사명감 때문이었습니다.
풍성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각자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시고 각자에게 직분을 주셨습니다. 바울에게는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도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우리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성도로 일꾼을 삼아주셨습니다. 각자에게 하나님이 맡기신 다양한 사명이 있습니다. 교회의 일꾼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이루고자 하는 태도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로마에 성바오로성당을 건축하는 현장에 감독하는 사람이 방문했을 때 일꾼들이 열심히 돌을 다듬고 있었습니다. 한사람에게 감독이 물었습니다. “당신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는 퉁명스럽게 “아, 보면 몰라요. 돌 다듬고 있잖아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감독은 또 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아, 뭘 하긴 뭘 해요? 돈벌죠, 돈 벌어야 살잖아요.” 다시 다른 한 사람에게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니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요?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똑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한 사람은 돌 다듬고 있고, 한 사람은 돈 벌고 있고, 또 한 사람은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있다는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영광됩니까? 일의 성격과 일하는 기쁨, 행복이 전혀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에서 일꾼의 모델로 두기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골로새서를 골로새교회에 전달한 사람입니다. 그는 사랑받고 신실하며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사람이었습니다.(골 4:7) 두기고처럼 교회의 일꾼은 믿음의 지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신실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물질 안에서 함께 된 종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사람입니다. 교회의 일꾼은 주님 때문에 종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두기고처럼 믿음의 지체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신실하게 종의 자세를 가지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종의 마음가짐으로 낮아져야 합니다.
바울은 힘들고 어려운 전도여행 중에서도 안디옥 교회 이방 출신 성도들의 할례문제를 위해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하였고, 고린도교인들의 결혼문제, 우상숭배문제 등을 위해 고린도를 방문하였으며,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헌금을 모금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성도들의 영육간의 문제를 돕기 위해 수고하고 기쁨으로 감당했습니다.
또한 소망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야 합니다. 27절에서 그리스도가 ‘영광의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영광의 소망이란 “소망이 영광스럽다”는 뜻입니다. 소망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받게 될 완전한 구원의 은총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이 받게 될 영광스러운 미래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주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소망삼고 살아야 합니다. 그 소망의 끝은 반드시 영광임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이 주실 영광을 이루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교회, 예수님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교회는 교회의 일꾼들을 통해 완성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직분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풍성한 교회와 가정과 개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풍성한 교회는
3. 세우는 교회입니다.(28~29절)
28~29절,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바울 사도는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비밀이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기뻐하며 감당했습니다. 또한 자기가 가진 모든 지혜로 그들을 권면하고 가르쳤습니다. 28절에서 ‘전파하여’, ‘권하고’, ‘가르침’이라는 표현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복음을 전파하고 권하고 가르친 이유는 성도 각 개인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완전한 자’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성도의 영화로운 모습을 가리킵니다.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전인격적인 완전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지, 정, 의 전체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구원받고 인격, 생활, 가치관, 세계관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된 사람입니다. 영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지성도 구원을 받고, 감성도 구원을 받고, 의지도 구원을 받고 육체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끊을 것은 끊고 절제할 것은 절제해야 합니다. 감정조절이 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감정을 다스려야 합니다. 의지가 약해서 결심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단해야 합니다. 새해에는 예배에 빠지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오래 가지 못하는 사람, 새해부터 성경 읽고 말씀대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나쁜 습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의지가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가르쳐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세워주는 사람의 반대는 넘어뜨리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절망과 죽음의 구덩이로 밀어 넣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책망과 비판을 멀리하고 사랑과 격려로 사람을 세워주어야 합니다.
금년에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 은혜로운 말과 행동으로 사람을 세워주고 교회를 세우는 한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성령을 따라서 세워야 합니다.
29절에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라는 말은 예수님의 능력을 따라서 세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하여 육체에 채울 수 있었던 힘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었습니다. 사도의 직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 영광의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고 한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따라서 사명을 감당할 때 힘 있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제자들이 산 아래에서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여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에게 명하여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명령하자 귀신이 나갔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쫒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교회를 세우고 가정을 세우고 일터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교회와 가정과 일터를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지만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노력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힘을 다하여 수고할 때 성령님이 돕고 격려하면서 함께 협력해 나가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전에 신문에서 가수 윤복희씨와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나이가 있는데도 여전히 힘찬 가창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녀의 대답입니다. “언젠가부터 난 ‘내일은 없다’라는 생각으로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연기를 해왔습니다. 70년대부터 뮤지컬 무대를 개척하면서 하도 힘든 일이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무대에 일단 오르면 조금의 후회도 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거의 발악을 하는 수준으로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그게 좋게 비쳐진다면 고마운 일이지요.”
윤복희씨는 조금의 후회도 남기고 싶지 않아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고 연기했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세우기 위해서도 이런 최선의 노력이 필요하듯이 우리가 풍성한 교회를 세우고 그리스도 안에서 각 사람을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서는 혼신의 힘을 다하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6년이 밝았습니다. 결코 희망적인 새해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국가적으로, 교회적으로,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장애물을 극복하고 풍성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복음을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각자가 채워가야 합니다. 교회의 일꾼으로 각자에게 맡겨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가면서 영광의 소망을 믿고 나가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며 각 사람을 권하고 가르치고, 성령의 능력으로 힘을 다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가야 합니다.
풍성한 교회는 채우는 교회, 이루는 교회, 세우는 교회입니다. 2016년 새해에 풍성한 교회와 가정과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