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

하마사 2015. 12. 2. 18:45
워싱턴에서 근무할 때 맞은 첫 크리스마스에 유대인 친구가 "우리 집에서 '부주 파티'를 하니 꼭 와라"고 초대했다. 불교도의 '부디스트(Buddhist)'와 유대인의 '주이시(Jewish)' 앞글자를 하나씩 따서 만든 파티 이름이란다. 그는 유대인이라 크리스마스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즐거운 연말 분위기에 혼자 썰렁하게 지내기는 싫더란다. 그래서 해마다 비(非)기독교인들을 모아 파티를 열었다.

▶그때는 크리스마스에 종교적 의미까지 따지며 까다롭게 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미국서 만난 지인 중에는 카드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쓰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대신 '즐거운 휴일(Happy Holidays)'이나 '새해 복 많이(Season's Greetings)'라고 썼다. 다른 종교를 배려해 작은 '문명의 충돌'도 피하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와 '모임'을 합한 말이라고 한다. 종교가 다르거나 없는 사람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는 의미가 없거나 결례일 수 있다.

[만물상] 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
한때 '메리 크리스마스'는 전쟁도 멈추게 했던 마법의 단어였다. 1914년 12월 24일 독일군과 프랑스·영국 연합군이 대치하고 있던 서부 전선에서 총성이 멈췄다. 100m 거리를 두고 참혹하게 싸웠던 병사들은 양 진영에서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에 마음이 움직여 성탄절 하루 전투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들은 서로에게 다가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를 나눴다.

▶'마법'은 이제 힘이 약해졌다. 오바마 대통령 부인 미셸은 몇년 전부터 백악관 카드에 '메리 크리스마스'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백화점 쇼 윈도나 성탄 카드도 마찬가지다. 이런 움직임은 최근 이슬람 급진 무장 세력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이 확대되면서 더 뚜렷해졌다. 서방 세계에서 특정 종교 색채를 줄여야 한다는 움직임이 커졌기 때문이다. 테러 위협 때문에 더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이다.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크리스마스란 단어 사용 논란은 '크리스마스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치열해졌다.

▶130명의 목숨을 앗아간 '파리 테러'는 정부 기관이나 군사 시설 같 은 '하드 타깃'이 아닌 민간인과 민간 시설 등 '소프트 타깃'을 노렸다. 가장 마음 편하고 즐거울 때 오히려 더 테러 가능성을 경계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미국 공공장소에선 산타 할아버지와 루돌프 사슴을 보기가 힘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에 '즐거운(merry)'이란 표현을 붙이기가 점점 어렵게 돼가는 현실 탓에 12월 날씨가 더 차갑게 느껴진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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