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방문하는 것은 언제나 정답고 설레는 일이다. 홍안의 티를 갓 벗은 10대에 떠난 고향 교회를 50대 중반의 목회자가 되어 다시 찾아갔다. 고향 교회에는 수십년 전 학생회 시절 헌신예배를 드리고 문학의 밤 행사를 할 때 드나들었던 강단 출입문이 아직도 있었다. 그 문을 지나 설교단으로 들어갈 때 아련한 옛 추억과 함께 변하지 않은 것에 대한 고마움이 생겼다.
고향이 좋은 것은 함께 나눌 수 있는 추억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추억은 단순히 시각적으로만 회상되는 게 아닌 것 같다. 그 옛날 예배당 마룻바닥이 내던 삐거덕 소리, 한여름에 선풍기 돌아가던 소리, 권사님들이 점심식사를 준비할 때 나던 음식 냄새 등 실로 오감 전체를 통해 추억이 밀려왔다. 바쁜 일정 탓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는 없었지만 돌아갈 고향이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었다.
문득 나의 남은 생애를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 나도 영원한 본향인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그곳에서 육신의 고향 사람들 못지않게 반가운 나의 교우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일찍 세상을 떠난 성도들도 있다. 그들과 밤이 새도록 못 다한 추억 보따리를 풀어놓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니 죽음이 두렵지 않고, 천국이라는 본향이 있음이 너무나 감사하다.
고일호 목사(서울 영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