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7:7-11
제목: 하나님과 거리 좁히기
목표: 하나님과의 거리를 좁히게 한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과 늘 가까이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역시도 우리와 가까이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거리가 좁혀 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거리를 좁히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과의 거리가 가까운 사람들도 더 가깝게 되는 방법입니다.
언젠가 아기가 있는 가정에 심방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잠자고 있던 아기가 울자 엄마가 급히 방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기는 우는 것으로 자기의 의사를 표시합니다. 배고플 때, 똥과 오줌을 쌌을 때나 혼자 있기 싫을 때, 혹은 안아 달라고 할 때 울음으로 표시를 합니다. 약하게 울 때는 엄마가 할 일을 계속하다가도 세게 울면 엄마가 곧장 달려갑니다. 아기의 울음이 엄마와의 거리를 좁혔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하듯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은 반드시 필요한 분입니다. 가까이 계셔야만 합니다.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지면 사탄의 먹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맹수들이 어린 새끼를 공격할 때 어미와 떨어지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미와 떨어지면 쉽게 잡아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사탄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다가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져 있는 사람을 공격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있어야 안전합니다. 하나님과 거리를 좁혀야 합니다. 사탄의 공격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거리 좁히기
1. 기도생활입니다.(7절 상반절)
7절 상반절,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하나님과 가까워지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시 145: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신 4: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기도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알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기가 울면 엄마가 가까이 달려가듯이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구한다'는 것은 자기의 결핍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그것을 채워주시도록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한다'는 말에는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전제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인 동시에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가 끊어지는 순간 우리의 영적인 생명도 끊어지게 됩니다. 기도소리가 멈출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됩니다. 기도는 이처럼 신앙생활에 있어서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약 4:2).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탕자처럼 자기 아버지의 집에 있는 풍족한 양식을 두고 엉뚱한 곳에서 굶주리는 아들과 비슷합니다.(눅 15:16, 17). 성도가 기도할 때마다 후히 주시고 결코 꾸짖지 않으시는 분이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약 1:5).
기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기도하면 응답받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고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기도하면 무조건 응답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단지 응답의 종류가 다를 뿐입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응답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①긍정적 응답
(예화)한나의 기도: 한나가 아들을 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예화)히스기야의 기도: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생명을 연장받았습니다.
우리는 히스기야 왕을 잘 압니다.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에게 죽을 것이니 죽을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이때 히스기야 왕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통회 자복하며 기도했습니다. 생명을 연장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왕궁의 뜰을 다 빠져 나오기도 전에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돌아가서 히스기야 왕에게 15년의 생명을 연장해 주겠다는 메시지를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즉각 응답해 주셨습니다.
(예화)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에서 기도하여 불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②더해주시는 응답
예화)솔로몬의 기도: 지혜를 구했으나 하나님은 부귀영화까지 더해주셨습니다.(왕상 3:5-14).
③다른 것으로 응답
(예화)다윗이 성전건축을 원했으나 하나님은 그 아들 솔로몬을 통해 건축케 하셨습니다.
(예화)모세가 가나안땅에 들어가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맡기셨습니다.(신 3:28)
(예화)사도바울
사도 바울이 2차 선교 여행을 떠나서 지금의 터키 지방으로 갔습니다. 그는 그곳에 복음을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애를 썼습니다. 아시야로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지만 성령께서 그곳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 마게도냐 지역으로 가서 복음 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기도하는 것 보다 더 유익이 된다고 하시면 우리가 원하는 것과 다른 것으로 응답해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④기다리라는 응답
(예화)하박국의 기도: 악인을 방관하시며 잠잠하시느냐며 심판해주실 것을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합 1: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합 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⑤부정적 응답
예화)모세가 가나안땅을 보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신 3:25-27,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예화)바울이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했으나 거절하셨습니다.
바울이 육체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 세 번 간절히 구했으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고 하시면서 바울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거절하셨습니다.
기도하면 여러 가지 응답 중에서 한 가지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11절에서 좋은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틀림없이 좋은 것을 주십니다. 문제는 받는 사람이 좋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간증)아들의 대학입시 실패
당장은 좋은 것이 아니어도 좋은 것임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좋은 것을 받기 원하시면 기도해야 합니다.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개인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건강, 물질, 자녀의 복, 명예 등 많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본문 11절과 과 병행구절인 눅 11:13절에는 좋은 것이 ‘성령’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는 ‘좋은 것’으로 기록한 반면 누가는 구체적으로 ‘성령’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을 체험했고 성령 받은 후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변화를 목도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이 가장 좋은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좋은 성령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네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성령을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쓸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다 같이 한 곳에 한 마음으로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이 임했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도 다 같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실 줄 믿습니다.
세상의 좋은 것을 아무리 많이 가진다해도 성령이 그의 삶속에 거하지 않으면 참된 만족이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좋은 것을 가지지 않았을지라도 성령이 계시면 참된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했던 성령의 역사로 초대교회에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습니다.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세상적인 좋은 것으로 기뻐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모여 가진 것을 나누면서 기뻐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칭찬하고 부러워했습니다.
<찬송가 191장>
기도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성령 충만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기도하면 아버지를 알 수 있습니다.
9~11절,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잘 알 수 없습니다. 좋은 아버지인지 나쁜 아버지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구해보면 압니다. 나쁜 아버지는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할 때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할 때 뱀을 주는 아버지입니다. 자식이 좋아하는 것이나 자식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하는 아버지는 나쁜 아버지입니다.
좋은 아버지는 자식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기뻐합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목숨까지도 희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아버지인줄 알게 됩니다. 기도하면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 심지어 자기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아들까지 주셨기에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좋은 아버지이십니다.(롬 8:32) 아버지와 대화하지 않고, 아버지께 구하지 않는 사람은 아버지에 대해 잘 알 수 없습니다. 아버지를 잘 알려면 아버지와 자주 대화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응답을 받습니다. 기도하면 좋은 것을 받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됩니다. 아버지와 가까워집니다.
(간증)
제가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할머니와 아버님이 저에게 기도하는 목사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신학생 시절 여러 동아리 중에 매주 금요일 저녁에 기도원에 가서 철야기도 하는 시내산선교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 동아리에서 3년 동안 매주 금요일이면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습관을 이어갔습니다. 돌이켜보면 신학교에 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는 기도의 훈련이 가장 소중했습니다. 오늘 제가 목사가 되어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저의 할머니와 부모님의 기도덕분이고 기도의 줄을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로 하나님과 거리를 가깝게 했기 때문에 부족하지만 이 정도의 목사가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과 거리 좁히기 첫 번째는 기도생활입니다.
하나님과 거리 좁히기
2. 말씀생활입니다.(7절 중반절)
7절 중반절,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 낼 것이요.”
찾으라는 기도를 구체적으로 하라는 뜻도 있습니다만 말씀생활과 연관시킬 수 있습니다. 찾는다는 것은 마땅히 찾아야 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 하면서도 성경을 멀리하는 사람은 거짓말 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면 성경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경을 멀리하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해에 구역장 권찰님들께 성경을 일독하자고 권면하며 성경읽기표를 나누어 드렸습니다. 연말에 일독하신 분들을 시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숫자가 적었습니다. 구역장 권찰님들이 그 정도면 성도님들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간증)할머니와 아버님의 성경읽기
제가 어릴 때 할머니는 돋보기안경을 끼시고 성경을 자주 읽으셨습니다. 글씨를 모르던 분이셨는데 성경을 접하며 글씨를 깨치시고 성경을 사랑하셨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교훈이 될 만한 구절이 있으면 저에게 말씀해주시곤 했습니다. 성경을 다 읽으시고는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릅니다.
아버님도 성경을 많이 읽으셨습니다. 새벽기도 다녀오신 후 읽기 시작하여 하루에 신양성경을 다 읽곤 하셨습니다. 여러 번 그렇게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 읽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이는 것은 좋은 신앙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예화)성전인가 성경인가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곧 함락시킬 태세인 로마 총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를 우여곡절 끝에 만났습니다. 성스러운 도시의 초토화는 피할 수 없는 기정사실이었습니다. 사령관은 선심이라도 베푸는 양 랍비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자카이는 미래의 생존과 회복을 담보할 하나를 부탁해야 했습니다.
랍비는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 성전? 이미 솔로몬 성전도 무너졌고, 그 이후 세워졌던 성전도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부서졌습니다. 그 성전 건물로는 민족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민족을 구원하는 길은 오로지 성경과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생각하고 학교와 학자가 사는 보잘것없는 마을 야프네 거리를 남겨 두기를 간청했습니다. 너무 사소한 청이라 사령관이 되레 의아해 하며 허락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스라엘민족을 살렸고, 신앙을 지키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성경에 녹아있습니다. 성경을 사랑하는 백성은 흥하고 성경을 버린 백성은 망합니다. 성전 건물은 없어져도 성경만 있으면 정신과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신명기 4장 말씀은 모세가 광야생활을 마치면서 가나안땅을 눈앞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교한 내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씀생활은
1)들어야 합니다.(1절)
신 4:1절,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들어야 합니다. 들을 때 마음이 열리고 믿음이 생깁니다. 들어야 순종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들려지는 곳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많이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 살 수 있고,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2)가감하지 말아야 합니다.(2절 상반절)
신 4:2절 상반절,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완전합니다. 성경은 신구약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어떠한 내용을 덧붙이거나 삭제하는 것을 엄히 금하고 있습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
하나님의 말씀은 불완전한 사람이 더하거나 뺄 수 없는 완전한 말씀입니다.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성취되는 말씀으로 믿고 살아야 합니다.
3)지켜야 합니다.(2절 하반절)
신 4:2절 하반절,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지키다’라는 원어는 ‘가시로서 울타리를 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여호와의 명령 곧 하나님의 법도와 말씀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말고 삼가 그 말씀 안에 온전히 거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듣고 배워서 아는 지식이 아니라 온전히 실천해야 하는 삶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에게 주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생명과 복입니다. “오늘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신 4:40)
하나님은 성경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가깝게 만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가감하지 말고, 지키면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써야 합니다. 묵상해야 합니다. 암송해야 합니다. 지켜야 합니다. 성경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가까이 만날 수 있습니다.
(예화)차종순 총장님의 간증
2007년에 차종순 호남신학대학교 총장님의 특강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총장님이 하신 간증 중에 본인이 장신대 재학시절에 성경을 많이 읽기로 작정하고 매월 1독씩 했는데 졸업 때 35회를 읽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로마서 전체를 암송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차를 탈 때나 길을 갈 때도 성경을 암송한다고 했습니다.
신 4:29,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만나주시고 가까이 하실 줄 믿습니다. 이런 은혜를 누리는 성도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거리 좁히기
3. 실천생활입니다.(7절 하반절)
7절 하반절,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기도생활과 말씀생활은 가만히 앉아서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을 두드리는 생활은 구체적으로 몸과 손을 움직여야 하는 행동을 필요로 합니다. 신앙생활은 이론과 사변이 아닙니다. 실천을 동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십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삶에 실천해야 합니다. 문을 두드리는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행동할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실천할 때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아무리 기도하고 성경을 많이 읽어도 삶에 실천하지 않으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지는 못합니다. 믿음으로 구원은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부르신 목적이 단지 구원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하여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부르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웃을 섬기며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생명 살리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삶속에서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화)딱따구리
산에 갔다가 딱따구리를 본적이 있습니다. 산길을 걷는데 나무를 반복적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주위를 살폈더니 딱따구리가 부리로 나무를 쪼는 소리였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지켜보았습니다. 기관총소리처럼 줄기차게 나무를 쪼아댔습니다. 마침내 나뭇가지가 땅에 떨어지고 딱따구리는 날아갔습니다. 아래에는 나무 조각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떨어진 가지를 보았더니 무수히 부리로 찍은 흔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가지 속에 있던 벌레를 잡아먹은 듯했습니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이유가 먹이를 찾거나 둥지를 트기 위해서라고 하니 말입니다. 나무속에 있는 벌레를 찾아 딱따구리는 일초에 무려 15-16번이나 나무를 쪼아댑니다. 머리 움직이는 속도가 총알보다 빠르다는 것입니다. 문을 두드릴 때 딱따구리처럼 두드리면 안 열리는 문이 없을 것입니다. 수백 아니 수 천 번을 부리로 쪼아대면 나무 가지가 부러져 땅에 떨어질 정도이니 말입니다.
‘나뭇가지 속에 있는 벌레를 먹게 해주세요.’ 하면서 딱따구리가 앉아서 기도한다면 벌레가 입속으로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나무들 중에 벌레가 있는 나무를 찾은들 부리로 쪼아대지 않으면 숨어있는 벌레를 잡을 수 없습니다. 딱따구리가 나무껍질을 두드리고 부리로 쪼면서 속을 파서 먹이를 잡듯이 기도로 하나님께 구하고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였으면 부리로 쪼듯이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신 5:3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
(신 6: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신 8: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구체적인 실천항목으로는
1)교회의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의 근본이고 중심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문을 부지런히 두드려야 합니다. 딱따구리처럼 쉴 세 없이 문을 두드릴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2)전도의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으로 전도의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이웃의 닫힌 마음의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가족과 친지, 친구, 직장동료, 이웃 등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의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3)정의의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불의와 불법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바르고 의롭게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넓은 길에 있는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길에 있는 좁은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는 하나님의 일에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거짓과 부정의 문을 두드리지 말고 진실과 정직의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거리 좁히기는 쉽지만 어렵습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기도생활, 말씀생활, 실천생활입니다. 이렇게 할 때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는 말씀이 성취되고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풍성히 베풀어 주시는 좋으신 아버지를 가까이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