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막 16:14-16
제목: 복음을 전파하라
찬송: 499장
목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게 한다.
몇 년 전에 심방을 가다가 화장품을 판매하는 어떤 분을 만났습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화장품 선전을 하시는데 다른 사람이 말할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 화장품을 2개월만 바르면 잔주름이 없어지고 쳐진 피부가 탱탱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판매하는 상품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선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있었습니다. 과연 나는 예수님과 복음을 그토록 확신 있게 열정적으로 전하고 있는지를 반성해보았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알렸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또한 엠마오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말했지만 다른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사람들이 전하는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구원과 정죄로 나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려면
1. 종말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심판의 날 시계(Doomsday Clock)라는 게 있습니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발행하는 한 과학잡지의 표지에 게재되는 것으로, 종말의 날까지 남은 시간을 상징적으로 표시해 줍니다. 각종 위기 요소를 시각 변경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핵무기나 테러 확산, 지구온난화나 지진, 천재지변 등의 영향을 반영해 조정합니다. 2014년 1월, 23시55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지금 이 시대의 모습을 보면 ‘종말 5분 전’이라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의 말 이전에 성경은 이미 지구의 종말을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날은 바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이고 최후의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날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되기 전 미군 당국은 여러 차례 삐라를 뿌렸습니다. 8월 6일 0시 이전까지 50리 밖으로 피하라는 경고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설마 하다 큰 피해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삽시간에 히로시마 전체가 폐허로 변했습니다. 24만명의 시민 중 무려 14만명이 희생되고, 남은 사람들도 방사능 후유증으로 고생하게 됐습니다.
개인의 종말과 역사의 종말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개인의 종말은 죽음입니다. 역사의 종말은 세상의 끝입니다. 성경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의 시간관은 직선개념입니다. 우리는 종말을 향하여 달려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역사를 심판하실 때가 있습니다.
개인의 종말이 언제인지는 몰라도 분명한 것은 세상을 떠나갈 날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종교인들은 윤회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성경은 창세기 1: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하여 성경 마지막장 요한계시록 22장에서 믿는 사람이 가게 될 천국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전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 소견대로 살면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에 스마트폰 어댑터가 고장이 나서 서비스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게을러서 방치하다가 무심코 교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까운 서비스센터를 찾았더니 1년간 무상 교환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작년 4월에 구입했는데 마침 그날이 4월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다음날 갔으면 돈을 내고 교환할 뻔했습니다. 단지 얼마 안 되는 돈이었지만 하루 차이로 무상과 유상이 결정되었습니다. 하루 차이로 살고 죽는 경우도 있고 세계역사가 뒤바뀔 수도 있습니다. 하루 차이로 천국과 지옥이 결정될 수도 있습니다. 전도가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습니다. 죽음 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고 전도할 시간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주면 후사하겠다는 전단지를 보았습니다. 정든 강아지를 찾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쓰는 사람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에 열심을 내는지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시간이 언제나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종말신앙이 있어야 전도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 전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면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 때 만나는 사람이 귀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2. 변화를 믿어야 합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복음을 듣고 변화되는 것을 믿어야 전도할 수 있습니다. 좋은 변화를 믿는 것입니다. 사망이 생명으로 변화됩니다. 불행이 행복으로 변화됩니다. 절망이 소망으로 변화됩니다. 슬픔이 기쁨으로 변화됩니다. 미움이 사랑으로 변화됩니다. 복음이 삶을 변화시킬 것을 기대하고 믿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8장에는 복음이 전파되었던 사마리아성에 나타난 변화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복음으로 인한 핍박과 박해를 무릅쓰고 흩어져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스데반이 죽었기 때문에 복음 전하기에는 최악의 환경이었습니다. 예수 믿다가 스데반처럼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최악의 환경에서도 복음은 전파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 전할 수 있는 환경을 탓할 이유가 없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했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갔습니다. 많은 병자가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임했습니다. 절망과 멸시의 땅, 슬픔과 상처의 땅에 큰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귀신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이 온전한 정신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질병으로 고통 받던 사람들의 탄식이 웃음소리로 바뀌었습니다. 돈과 명예로 얻을 수 없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이고 역사였습니다. 복음은 이처럼 기쁨과 행복을 줍니다. 복음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고 죄인을 의인되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새사람으로 만듭니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 변화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믿는 자가 삼천 명, 오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파할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능력이었습니다. 전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함께 변화되었습니다.
3. 복음에 빚진 자가 되어야 합니다.
롬 1:14-15,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어떤 선배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교회건물을 구입하면서 은행으로부터 빚을 얻었는데 매월 이자 갚는 날이 그렇게 빨리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빚을 청산하니 살 것만 같다고 했습니다. 물질적인 빚이 이렇게 사람을 부담스럽고 힘들게 한다는 증거입니다.
IMF때 사업에 실패하여 빚을 지고 도저히 갚을 수 없게 되자 비관하여 자살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물질적인 빚은 목숨을 끊게 할 정도로 사람을 부담스럽게 합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스스로 “빚진 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고전 9:16에는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라고 하면서 복음전하는 것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을 안고 살았습니다. 바울사도의 이런 부담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듣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오늘날도 사도바울처럼 복음에 대해 거룩한 부담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때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합니다. 하지만 배 째라는 식으로 갚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빚진 자라는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한 두 사람에게 빚진 것이 아니라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모두 빚을 졌다고 말하면서 로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고 고백합니다. 평생을 갚아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는 벨릭스총독에게도 아그립바왕과 베스도총독 앞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빚을 졌으니 장소와 사람을 가리지 않고 그 복음의 빚을 갚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려면 종말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변화를 믿어야 합니다. 복음에 빚진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질 때 전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전도자가 복음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명령하셨습니다. 전도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며 믿지 않는 자들의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가장 큰 사랑은 친구의 죽음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전도하는 일을 위해 오셨다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막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이 구원의 복음을 전할 사명을 성도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사람과 같이 죽었으나 하나님이 살리셨으며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가진다는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롬 10:13-15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 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전도의 5단계는 보내심→ 전파→ 들음→ 믿음→ 부름(예수님을 그리스도라 부름)입니다. 전도자가 복음을 전파할 때 복음을 듣고 믿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전한 복음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통해 들었든지, 전도자의 음성을 통하여 들었든지, 전도지를 통하여 보았든지, 방송을 통하여 들었든지, 이메일이나 SNS를 통해 보았든지, 아니면 신앙인의 선한 행동에 감동을 받았든지, 복음에 영향을 받은 누군가의 수고와 헌신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예화)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가면 루비 켄드릭의 묘가 있습니다. 1908년 급성맹장염으로 25세의 청춘으로 조선 땅에 묻힌 여선교사입니다.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자기를 파송한 청년단체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만일 내가 죽으면 텍사스 청년회원들에게 열 명씩, 스무 명씩, 오십 명씩 아침저녁으로 조선에 나오라고 전해주세요. 만약 내게 줄 수 있는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나는 천 개의 생명을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그녀가 부모님께 보낸 마지막 편지의 일부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곳은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모두들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같아요. 선한 마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보아 아마 몇 십 년이 지나면 조선은 주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선교본부에서는 다들 철수하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자기들이 전도한 조선인들과 아직도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유난히도 집에 가고 싶어요.….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바로 이것은 조선에 대한 제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조선을 향한 열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 엄마∼ 사랑합니다.”
오래 전에 몽골선교를 갔을 때 몽골에서 선교하는 한국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몽골에 뼈를 묻겠다고 하면서 자기가 묻힐 자리를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분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복음이 세계로 전파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왕하 7장을 보면 아람군대의 포위로 사마리아성 사람들이 굶주려 죽어갈 때 나병환자 네 사람이 아람군대가 물러간 것을 먼저 알고 전리품을 챙기다가 생각했습니다. 좋은 소식을 알리지 않고 침묵하면 벌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왕궁에 가서 알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마리아성 사람들은 굶주림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비록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 나병환자였지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여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원했습니다. 그들이 침묵하였다면 사마리아성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의 숫자는 계속 증가했을 것입니다. 아람군대가 물러갔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기 때문에 많은 백성들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이 전한 복된 소식이 닫혔던 성문을 열게 했고 죽어가던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복음 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도자의 신분을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병환자들도 생명 살리는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부자가 아니어도 됩니다. 학벌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은 환자라도 전할 수 있습니다. 복음전하는 사람의 신분과 환경보다 생명의 복음이 중요하고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생명을 살리는 복음전하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는 절박함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이사야 52:7절에는 복된 좋은 소식을 가지고 산을 넘는 사람의 발을 아름답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포로상태에서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파발꾼을 칭송하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죄와 사단에게 포로 되어 있는 인생들에게 참 자유와 생명의 소식을 전하는 영적 파발꾼입니다. 파발꾼이란 조선후기에 공문을 가지고 역참사이를 오가던 사람입니다. 각 역참에 다섯 명씩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전해주신 하늘의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소식을 들어야 할 사람이 듣지 못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지만 듣고도 믿지 않는 것은 그들의 책임입니다. 우리는 전하는 사명, 복음을 들려주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화)일본군 오노다 히로 소위
일본이 태평양전쟁에 패배한 뒤 투항하지 않고 29년간 필리핀 정글에서 살아남아 1970년대 세계적 화제가 됐던 전 일본군 소위 오노다 히로씨가 92세로 올해 1월 16일 오후 지병으로 숨졌습니다.
1942년 20세 나이로 일본 육군에 입대한 오노다씨는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정보 장교였습니다. 1944년 말 필리핀 루방섬으로 파견된 그는 이듬해 2월 연합군 공격으로 현지 일본군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힌 가운데 극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오노다씨는 이후 일본의 패전을 믿지 않고 투항을 거부한 채 29년간 필리핀 정글에서 버텼습니다.
그는 1974년 2월 일본의 한 청년 탐험가에게 발견될 때까지 52세 나이에도 군복을 입은 채 소총과 수류탄 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오노다씨는 전쟁 당시 직속상관이 직접 찾아와 ‘임무 종료, 무장 해제’를 명령하자 결국 투항했습니다.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 후 29년 만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났다고 알려주었지만 믿지 않고 거부하며 29년 동안 정글에서 살았던 비극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소식을 알려도 믿지 않은 것은 그의 책임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복음 전파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했다고 성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행 5:42) 물론 당시에는 복음전파의 수단이 직접 입으로 전하는 방법이 최선이었습니다. 글이나 다른 수단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얼마나 다양하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습니까? 문서, 이메일이나 문자, SNS, 방송 등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얼굴이 전도지다’라고 했습니다. 전도는 얼굴로 먼저하고, 말로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얼굴로도 전도할 수 있습니다. 미남미녀만이 전도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밝은 얼굴, 행복한 표정으로 예수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얼굴뿐만 아니라 삶의 모습으로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모습자체가 전도입니다. 바울사도는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향기와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했습니다. 좋은 향기를 전하고 좋은 소식을 전하는 편지가 될 때 전도의 문이 열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악취를 풍기거나 나쁜 소식을 전하는 편지가 될 때 전도의 문이 닫힐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삶 자체가 편지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편지이든 아니면 나쁜 소식을 전하는 편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향기를 발하든 악취를 풍기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시골에 계시는 아버님이 가족 카페에 ‘신분에 걸맞게 행동해라.’는 글을 올리셨습니다. 그 글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시골에 가서 농산물을 살 때는 이 농사꾼 아비, 어미를 생각해서라도 너무 값을 깎거나 인색하게 해서는 안 된다. 집 근처에 어떤 교회 수양관이 있는데 교인들이 산상부흥회에 와서 농산물을 구입할 때 물건 값을 너무 많이 깎아서 농민들의 인식이 좋지 않다. 믿는 사람들이 너무 짠돌이라고 말한다. 오죽하면 이웃집 아저씨는 물건 사러 온 분들끼리 집사님, 권사님하고 부르면 아예 팔지를 않고 다른 집에 가보라 한단다. 교인들의 그런 행동이 전도의 문을 막고 예수님과 교회를 욕 먹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줄 알아야 한다. 목사란 신분이 혹은 교인이란 신분이 노출되었을 때 특히 불신자들 앞에서는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양한 전도방법이 있습니다. 노방전도가 있습니다. 전도축제 기간 중에 교구별로 교회부근에서 전도할 것입니다. 과거의 전도방법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전도는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심한 거부감을 주는 행동은 삼가야하지만 지혜롭게 전도해야 합니다. 모두가 노방전도를 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에게 맞는 전도방법을 택하여 최선을 다해 전도해야 합니다. 말로 전도할 수 있습니다. 얼굴표정으로 전도할 수 있습니다. 카톡, 밴드,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전도할 수 있습니다. 이메일이나 문자를 통해 전도할 수 있습니다.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을 통해서 전도할 수 있습니다. 방송을 통해 전도할 수 있습니다. 물질을 통해 전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전도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어떤 특정 방법이 아닌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전도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인류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구원을 주는 좋은 소식입니다. 그 소식의 주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메시야 즉 그리스도라는 소식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에 이르게 되는 생명을 살리는 소식입니다. 이 복음은 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했듯이 오늘도 광야 같은 세상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예화)국민일보 겨자씨에 실린 글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자녀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네 자녀가 있었는데 세 자녀에게는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인사했습니다. 그런데 한 아들에게는 “안녕”이라고 인사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아버지, 저에게는 왜 다시 만나자고 하지 않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아들아! 너는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잖니? 너와 나 사이에는 다시 만날 소망이 없단다. 사랑하는 아들아. 이 아버지가 너에게 다시 만나자고 얘기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없겠니?” 그 아들은 비로소 “아버지, 저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어요”라고 고백했습니다. 아버지는 사력을 다해 사랑하는 아들을 끌어안으며 “그래, 아들아,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말한 뒤 숨을 거두었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죽을 때 마지막 인사를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인사할 수 있는 사람과 ‘안녕. 잘 있어라’고 인사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효도관광 도우미로 봉사하신 어떤 집사님의 노래를 소개합니다.
<무조건>이란 곡에 가사를 붙인 노래입니다.
전도하러 갈 때 나를 불러줘 언제든지 나는 가리다.
낮에도 좋아 밤에도 좋아 언제든지 달려 갈거야.
많은 사람이 나를 부르면 한참을 생각해보겠지만
주님이 나를 부르면 무조건 달려 갈거야.
복음을 전파하려면 종말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변화를 믿어야 합니다. 복음에 빚진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생명을 살리는 복음 전파자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