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글감으로 받아들 때마다 유대인 피아니스트 알리스 헤르츠-좀머를 떠올린다. 그는 1943년 마흔에 남편·아들과 함께 나치 수용소로 끌려갔다. 남편은 이내 숨졌다. 그는 잠자리에서 여섯 살 아들을 껴안고 체온을 나눠줄 수 있다는 데 감사했다. 늘 웃는 얼굴로 아들에게 동화를 지어 들려줬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처럼. 그는 수용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가스실을 면했다. 굶주렸어도 음악을 먹고 살았다.
▶그가 백 살을 앞두고 말했다. "따뜻한 방, 읽을 책, 하루 두어 시간 걸을 수 있는 운동화, 첼리스트 아들과 함께하는 음악. 더 바랄 게 없다. 침대에 누워 창밖 나무만 봐도, 아침 새소리만 들어도 행복하다." 그가 지난 2월 백열 살에 떠났다. "전쟁을 겪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어도 삶은 배울 것, 즐길 것 가득한 아름다운 선물"이라는 말을 남기고.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아홉 살 소년의 마지막 며칠을 지켜봤다. 소년은 여섯 해를 암과 싸우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퇴원했다. 차고에 묵혀둔 자전거를 타고 온 힘을 쏟아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파리한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소년은 자전거를 동생 생일 선물로 물려주고 갔다.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행복이란 비애(悲哀)의 강물 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빛나는 사금파리"라고 했다.
▶괴테는 행복의 조건으로 건강·인내·희망·자비심과 경제적 여유를 꼽았다. 하버드대는 1937년 재학생들의 생애를 70여년 추적해 행복 비결을 뽑았다. 고통에 적응하는 자세, 안정된 결혼, 교육·금연·금주·운동이다. 영국 BBC는 소도시 슬라우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르치는 실험 끝에 '십계명'을 만들었다. 운동·대화·미소·친절과 좋은 일 떠올리기, 식물 가꾸기, TV 보는 시간 절반 줄이기, 친구에게 전화하기, 하루 한 번 크게 웃고 자기에게 작은 선물 주기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행복해지는 열 가지 방법을 말했다. 관대해져라, 느리게 살아라, 밥 먹을 때 TV 끄고 대화하라,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쉬어라…. 그중 맨 앞 'Live and let live'가 마음을 당긴다. 로마 이래 유럽과 미국에 전해 오는 속담이다. '내 방식대로 살되 남이 사는 방식도 상관 말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홉째로 꼽은 '신념·종교를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와 통한다. 한 종교의 지도자로서 하기 쉬운 말이 아니다. 교황 말씀대로 남의 말과 생각을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받아들이면 개인도 세상도 많이 행복해질 것이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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