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1:5-7
제목: 의인에게도
찬송: 545장
목표: 의인에게도 시련이 있음을 알고 믿음으로 극복하며 살게 한다.
하나님은 의인 편이십니다. 의인과 함께 하십니다. 구약시대에 의인은 율법대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약시대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모두가 의인으로 인정받습니다. 전적으로 예수님의 공로 때문입니다.
구약시대 율법대로 살았던 의인에게도 고난과 시련이 있었듯이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의인의 삶에도 고통이 있습니다. 완전한 행복을 누리지는 못합니다. 완전한 행복은 천국에서만 가능합니다.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행복을 누리지만 실제로 완전한 행복은 없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세례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었습니다. 그런 의인과 의인의 가정에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의인에게도
1. 결핍(7절)
7절 상반절,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결핍’이란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이란 의미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에 대해 6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의인’이란 말은 선민 이스라엘에서 가장 탁월한 칭찬의 말로 간주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한 경건한 인물에게만 붙여졌습니다. 의인은 유대인의 이상형이었습니다. 구약에서는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을 꼽을 수 있고 신약 성경에 와서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 3:6)고 자랑했던 바울을 들 수 있습니다.
사가랴 부부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던 의인이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흠이 없이 행동했습니다. 아무도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종교, 도덕적인 삶을 책망하거나 비난할 수 없을 만큼 두 사람은 경건하게 생활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참된 신앙인이었습니다.
이런 의인들에게 잉태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가정에 결핍이 있었습니다. 의인이 아닌 사람들은 잉태하여 자녀들을 잘 출산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식을 하나님의 축복과 기업으로 믿고 있어 자식이 없는 것을 대단한 수치와 하나님께 대한 죄의 형벌로 알았습니다. 또한 유대 랍비들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파문당할 수 있는 7가지 유형을 기록한 목록 서두에서 “유대인이면서 아내가 없고, 또 아내가 있으면서도 자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없는 것은 당시에 합법적인 이혼 사유가 되었습니다.
율법에 흠이 없는 의인이었지만 부부에게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최대의 아픔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었고 부부갈등의 요인이 될 수 있었지만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가정에 중요한 결핍이 있었지만 믿음을 약화시키거나 의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점이 사가랴 부부를 더욱 의롭게 만드는 요인이었습니다.
꼭 있어야 할 것이 없을 때 고통스럽습니다. 건강을 잃고 질병이 찾아오면 고통스럽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일감이 없으면 고통입니다. 직장이 없거나 잃으면 고통입니다. 물질이 있어야 할 때 없으면 힘듭니다. 가족 간에 사랑이 없으면 갈등과 고통이 있습니다.
이처럼 결핍은 우리에게 불편과 고통을 안겨줍니다. 그것으로 인해 원망과 불평이 생기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광야에서 떠나 르비딤에서 장막을 쳤지만 마실 물이 없자 모세에게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며 소리쳤습니다. 성경은 모세와 다투었다고 기록하였는데 목소리를 높여 싸웠다는 뜻입니다.
왜 르비딤의 다툼이 생겼습니까? 결핍 때문입니다. 마실 물이 없어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름기둥으로 태양을 가리기는 했지만 신광야를 지나면서 땀이 나고 먼지가 일면서 갈증이 심했습니다. 마실 물이 없다는 것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불평과 원망의 이유가 될 수 있었습니다. 생수는 곧 생명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생명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꼭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부족할 때 원망과 다툼이 생깁니다.
하지만 고통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결핍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C.S. 루이스는 “고통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는 확성기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더 크게 들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고통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응답의 소리도 커집니다. 물론 고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가능합니다. 고통을 겪어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절망하다가 삶을 포기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그 고통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핍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결핍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겸손하게 만듭니다.
(예화)한나
엘가나는 한나와 브닌나라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은 대신에 임신을 하지 못해 아이가 없었습니다. 브닌나는 자식이 있었지만 남편의 사랑을 못 받았습니다. 두 여인은 모두 결핍이 있었습니다. 한 명은 자식을 원했고 또 한명은 남편의 사랑을 원했습니다. 모두가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핍에 임하는 자세는 다릅니다. 브닌나는 한나 때문에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기고 한나를 심히 격분시키고 괴롭혔습니다. 한나가 얼마나 힘들었던지 울고 먹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한나는 남편이 “내가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라고 위로하며 달래주었지만 남편의 사랑으로도 충족되지 않는 결핍이 있었습니다. 브닌나 역시 자식으로 충족되지 않는 결핍이 있었습니다.
브닌나는 한나를 괴롭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려한 반면에 한나는 하나님의 성전을 찾았습니다. 마음이 괴로워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통곡하였습니다. 통곡으로 기도했습니다. 그 아픔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슴속에 묻어둔 아픔을 토해냈습니다. 남편에게 하소연하지 않았습니다. 아픈 상처를 통곡하며 하나님께 쏟아내었습니다. 그 모습이 엘리제사장에게는 술 취한 여인처럼 보였습니다.
브닌나는 자식은 있었지만 남편의 사랑이 부족했고, 한나는 남편의 사랑은 있었지만 자식이 없는 결핍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모두 결핍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 행복하십니까? 복된 분들입니다. 하지만 의인에게도 결핍이 주는 어려움과 고통이 있습니다. 지금의 삶의 환경에 결핍이 있다고 실망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핍이 있다고 자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부족하고 기도가 부족하여 생긴 결핍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인이었던 사가랴 부부에게 자식이 없는 가장 큰 고통이 있었지만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결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결핍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다른 은혜가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2. 낙심(7절 하, 18절)
7절 하반절,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18절,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사가랴 부부는 잉태하지 못해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적게 해서 잉태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의인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부부였기에 기도하면 응답받을 것을 믿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도가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나이가 많아 잉태할 수 없을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사가랴 부부는 잉태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13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지자 낙심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으면 포기하게 됩니다. 제사장이었지만 낙심할 수 있습니다. 아내가 임신할 수 없는 나이가 되자 포기했습니다. 자식을 주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제사를 집례하는 사가랴에게 나타나 말했습니다.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아들의 이름까지 지어서 천사가 말했지만 사가랴는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동안 기도했지만 낙심하여 더 이상 기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응답을 포기했다는 뜻입니다. 그 때 까지도 계속 기도하고 있었다면 가브리엘 천사가 아들을 주겠다고 했을 때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잉태하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대답했습니다. 낙심하고 포기했다는 뜻입니다.
낙심하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살펴보면 상실과 기도응답의 지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대상을 잃었을 때 낙심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를 잃거나 자식을 잃었을 때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소중하게 여기던 명예를 잃거나 물질을 잃었을 때 낙심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응답이 없을 때 낙심할 수 있습니다. 가족 중에 혼자 믿음생활하면서 가족의 구원을 놓고 기도하지만 점점 어긋날 때 낙심이 생깁니다. 기도하지만 고난이 생기거나 지속되는 것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조롱 할 때는 절망할 수 있습니다.
사가랴 부부는 의인이었고 제사장의 가정이었습니다. 아이가 없는 것을 가지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더욱 힘들었습니다.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가리지 않도록 해달라고 꾸준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지고 마침내 늙어서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을 때 낙심하고 포기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기도했지만 하나님이 아기를 주시지 않아 포기하고 하갈이란 여인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믿음의 조상이었지만 기도하다가 낙심했습니다. 기도응답이 늦어질 때 낙망합니다. 인간적인 조건이나 환경으로 도저히 불가능하게 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끝까지 기다리며 기도한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부산에서 가장 큰 교회인 수영로교회 정필도목사님이 쓰신 ‘교회는 무릎으로 세워진다’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받은 연단을 통해 배운게 하나있다. 그것은 ‘기다림’이다. 돌이켜보면 '기다림'을 가르치기 위해 하나님이 내게 고난과 연단을 허락하셨다는 생각마저 든다.” 낙심하지 않고 믿고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화)
“프랑스 혁명사”라는 불후의 명작을 쓴 ‘토마스 카알라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2년이라는 세월동안 심혈을 기울여 책을 썼습니다. 친구에게 감수해 달라고 요청을 하고 원고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그 원고를 감수하다가 책상위에 펴놓고 산책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 사이에 그 집 하녀가 청소하러 그 방에 들어왔다가 책상위에 노랗게 퇴색된 원고 뭉치를 버려도 되는 것인 줄 알고 장작 난로를 피우는 불 소시개로 써버렸습니다.
산책에서 돌아온 친구가 그 사실을 알고 기절초풍 했습니다. 결국 그런 사실을 카알라일에게 알리자 너무나 기가 막혀 일주일동안 음식을 먹지도 않고 낙심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좀 더 좋은 작품을 쓰라는 하나님의 뜻일지도 모른다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는 다시 온 정성을 다해 7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불타버린 1권에다 2권, 3권을 추가하여 새로운 작품을 썼습니다. 그것이 세계적인 불후의 명작 “프랑스 혁명사”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인정받았던 사가랴 부부도 낙심했습니다. 기도응답이 늦어지고 잉태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졌을 때 낙심하고 포기했습니다. 우리도 낙심할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기도를 포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쌓아놓은 기도는 언젠가 응답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고 기도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아기는 평균 2천 번을 넘어져야 비로소 걷는 법을 배운다고 합니다. 넘어지면 낙심이 큽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기도 하고 다시는 못 일어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평균 2천 번 넘어졌던 걸음마의 시절을 이미 넘기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다 낙심이 생깁니까?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없다고 자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마음까지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기도를 포기했을 때 조차도 때가 되면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힘을 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의심(20절)
20절,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예화)
어떤 신사가 여행을 하다가 허름한 호텔에 묵게 되었습니다. 빈 방이 없어서 다른 사람과 한 방을 같이 써야 했습니다. 밤이 되었는데 영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저쪽 침대의 손님도 잠이 오질 않는지 잠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밖으로 나갔습니다.
잠이 오지 않은 건 옆 자리의 손님 때문이었습니다. 그 손님이 잠시 밖으로 나간 사이 그는 얼른 일어나 여행비가 든 지갑과 귀중품이 든 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물품보관소로 갔습니다. 자기가 잠든 사이에 옆자리의 손님이 자기의 귀중품을 훔쳐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 호텔직원이 말했습니다. "같은 방에 계신 또 한 분의 손님도 방금 귀중품을 맡기고 가셨습니다."
의인 사가랴도 의심했습니다. 천사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늙어서 육체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데도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니 믿을 수 없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흠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믿었던 의인이며 제사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상식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였고 과학적으로도 수용할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결국 그 의심 때문에 세례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불편을 감수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한 자신의 부족함을 회개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누구나 의심할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도저히 아기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 일만에 부활하신 후 열 한 제자에게 나타났을 때 제자들은 무서워하며 의심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만져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 24:38-39)
삼년 동안 함께 지내며 말씀으로 은혜 받고 수많은 기적을 체험했던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습니다. 이전까지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지만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심하는 제자들을 믿음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이야기는 의심합니다. 다른 사람의 간증을 들으면서도 과연 그럴까 의심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의심합니다. 의심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의심이 생깁니다. 우리의 머리가 이성과 합리로 무장되었기 때문입니다.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면 의심하도록 뇌가 작동합니다. 하지만 신앙은 의심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극복하는 것입니다.
믿음생활 하면서 의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기도하면서도 응답되지 않을 것 같은 제목이 많이 있습니다. 실력을 보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없지만 기도합니다. 불치병으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렸지만 기도합니다. 법적으로 패소가 확실하지만 기도합니다. 경제적 회생이 불가능하지만 기도합니다. 기도하면서 의심이 생길만합니다.
하지만 잉태하지 못하는 슬픔과 절망적인 상황에서 노부부의 훌륭한 믿음의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들은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위치에서 묵묵히 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비록 잉태하지 못하는 결핍이 있었고, 나이가 들어 낙심도 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심도 생겼지만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리에서 자신들의 사명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경건한 노부부는 사라와 한나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이라는 걸출한 아들을 출산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에 결핍이 있습니까? 있어야 할 것이 없어 기도하는데 힘이 빠집니까? 하나님 뜻대로 무던히 노력해도 결핍이 해소되지 않습니까? 시간이 가면서 기도응답이 없어 점점 실망하고 낙심되십니까? 이제는 기도하지 않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포기하셨습니까?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십니까?
자신을 책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의인으로 인정하셨던 사가랴 부부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흠이 없이 행했던 그들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희망이 끊어졌을 때 천사를 통해 말씀을 주셨고 그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로 칭찬받았던 세례요한을 주시고 그를 통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의인에게도 때로는 결핍이 있고, 그것으로 인해 낙심도 하고 의심도 하지만 불평하지 말고 묵묵히 사명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결핍을 채우시고 낙심과 의심이 변하여 기쁨과 영광이 되게 하는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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