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굽혀 경배하자

하마사 2014. 8. 7. 10:51

본문: 시 95:1-8

제목: 굽혀 경배하자

목표: 하나님께 굽혀 경배하며 살아가는 참된 예배자가 되게 한다.

 

휴가를 맞아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큰 절을 올렸습니다.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명절 때 뿐 아니라 평소에도 큰 절을 올리며 인사를 드립니다. 절은 무릎을 굽혀 존경을 뜻하는 인사예절입니다. 무릎을 꿇고 등을 굽혀 예의를 갖추는 것이 부끄러운 행동이 아닙니다. 웃어른께 굽혀 절하는 것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인사드리는 예절입니다.

 

(예화) 삼전도의 치욕

치욕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삼전도비가 송파구 잠실동에 있습니다. 사적 제101호. 높이 395㎝, 너비 140㎝. 비문에 새겨져 있는 원래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입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고립되었던 인조가 삼전도에서 직접 청태종에게 항복한 사실을 담아 세우고 이것을 대청황제공덕비라고 했습니다. 당시 청태종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서울에 침입하여 삼전도에서 진을 치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를 포위 공격하여 마침내 항복을 받기에 이르렀는데, 이러한 사실을 영원히 기념하려는 청태종의 강요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협정을 맺던 1637년 1월 30일의 기록은 처참합니다.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치욕적인 날로 기억됩니다. 남한산성 행재소를 나온 인조는 곤룡포 대신 쪽빛 평민복을 입고 맨발로 삼전도의 청 태종 군막까지 걸어왔습니다. 이어 인조는 군막의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청 태종을 향해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세 번 절하면서 그때마다 세 번씩 이마를 땅에 대고 조아림)로 항복을 표시했습니다. 역사의 기록은 머리가 땅에 조아릴 때 머리 찧는 소리가 높은 자리의 태종에게 종치는 소리처럼 들리도록 요구하였다하며 이로 인해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왕이 다른 나라의 왕에게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것은 항복을 의미하는 치욕적인 행동입니다.

이렇듯이 굽혀 경배하는 것은 존경의 뜻을 담아 감사함의 표현도 되지만 굴욕과 치욕의 행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본문에서 굽혀 경배하는 것은 치욕과 수치의 뜻이 아닌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와 기쁨으로 굽혀 경배하는 것입니다.

 

굽혀 경배해야 할 하나님은

1. 크신 하나님(3)

3절,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크다는 의미의 ‘까돌’이란 단어가 구약성경에서 모두 499회 사용되었습니다. 강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무수히 행하신 놀라운 일을 체험했던 시인의 확신에 근거한 고백이었습니다. 애굽에 내리신 전무후무한 재앙들과 홍해를 가르신 일,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로 수십만의 장정들을 먹이신 사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사건,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한 일, 가나안 전쟁에서 승리하고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한 일 등 무수한 기적의 사건들을 통해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신 강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온 백성 앞에서 하나님을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1-12) 다윗이 경배하고 찬양한 하나님 역시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다윗은 크신 하나님을 믿고 크게 행동했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었기에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위대한 행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골리앗보다도 크신 하나님, 골리앗을 이기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너무 작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전능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에 전능의 하나님은 오늘도 전능의 하나님으로 역사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나에게만 국한되어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축소시켜 버립니다.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으면 능력이 없는 하나님으로 생각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작은 하나님으로 만들고 믿음생활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시기에 내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문제까지 함께 해결하시고, 우리교회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문제까지, 이 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를 챙기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화)별마로천문대

영월에 있는 별마로천문대가 있는 799미터 봉래산 정상에서 바라본 영월 시내는 한 손바닥 안에 들어올 정도였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보시면 마치 개미보다 미약한 존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그런 하나님을 너무 작게 보고 무시하기도 합니다.

 

한나의 기도에도 크신 하나님을 노래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서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6-7)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노래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굽혀 경배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은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크신 하나님께 굽혀 경배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굽혀 경배해야 할 하나님은

2. 지으신 하나님(5-6)

5-6절,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고대 세계에서 바다는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또한 혼돈의 신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을 압도하는 바다조차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육지뿐 아니라 인간이 다스릴 수 없는 바다조차도 만드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굽혀 경배할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만물은 그분의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높이고 경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유명한 예술품을 만든 예술가를 높이고 칭송합니다. 훌륭한 작품을 만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화)모짜르트 초코렛

어떤 권사님이 유럽여행을 다녀오면서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코렛을 샀다며 선물로 주셨습니다. 모차르트 초코렛이었습니다. 빈에서 태어난 모차르트를 기념하여 과자에도 그의 초상화를 넣었고 과자이름까지 모차르트 초코렛이라 짓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만큼 칭송받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런 인물을 이용하여 관광상품을 개발하여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여 후손들에게도 큰 유익을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위대한 음악작품을 만든 작곡가이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는 시편 121:1-2절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인은 산을 향하여 눈을 들고 도움을 생각하다가 산뿐만 아니라 우주만물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떠올리고 힘을 얻었습니다. 자기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늘과 땅, 바다와 우주만물을 하나님이 만드셨고, 인간을 창조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을 택하여 약속의 백성 삼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면 용기가 생깁니다. 담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을 알고 내려놓으며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단지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건강, 물질, 가정, 자녀, 능력, 달란트 등 모든 것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잠시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심지어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지어진 피조물인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굽혀 경배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굽혀 경배해야 할 하나님은

3. 돌보시는 하나님(7상)

7절 상반절,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로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 즉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 굽혀 경배하는 택하심을 받은 사람의 하나님이심을 뜻하고 있습니다. 택한 백성을 돌보시는 목자로 하나님을 비유하였습니다. 이 표현은 시편 23편과 일맥상통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이 의의 길로 인도하시고, 지팡이와 막대기로 지켜주시고, 원수와의 싸움에서도 승리케 하시는 선한 목자가 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보호해주시고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돌보시는 선한목자가 되십니다. 이런 하나님께 굽혀 경배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장수풍뎅이 한 쌍을 길렀습니다. 장난치느라 장수풍뎅이를 땅에 뒤집어 놓아보았습니다. 등을 땅에 대고 허공을 발로 차면서 일어서지를 못했습니다. 등이나 발에 물체가 없으면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일어서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돌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휴가 때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집에서 며칠 있었습니다. 집 마당에 잔디를 심어놓아 보기가 좋습니다. 아버님이 애정을 가지고 잘 가꾸고 계십니다. 잔디밭을 자세히 보니 잡풀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습니다. 아버님을 돕기 위해 잡풀을 제거하는 일을 했습니다. 잔디밭을 가꾸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잔디도 돌보지 않으면 잡풀이 생겨 잔디밭이 망가지듯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선한 목자가 되셔서 돌보시기에 이 모양을 유지하며 살 수 있음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어린자녀를 양육할 때 경험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어디에 있든지 부모님은 자녀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는 아이는 수시로 엄마를 쳐다보며 자기를 주목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엄마가 자기를 주목하여 보고 있음을 알 때 아이는 안심하고 놀게 됩니다. 아이가 노는 것에 집중하여 엄마를 잊어도 엄마는 언제나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돌보고 있습니다.

요즘 자녀가 군대에 있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무겁습니다. 가혹행위로 목숨을 잃은 윤일병으로 인해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내 자녀가 윤일병과 같은 일을 당할까 걱정합니다. 부모의 돌봄도 한계가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가능하지만 학교와 군대, 직장 등에서는 돌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며 우리를 돌보십니다. 내 자녀와 가정과 일터를 눈동자처럼 지키고 돌보시는 분이심을 믿고 그 분께 경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동자가 항상 우리를 향해 있습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십니다. 원수 마귀가 해치지 못하도록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안위해 주십니다.

 

(예화)한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하나님이 돌보시는 여인이었습니다. 아이가 없어 성전에서 통곡하며 기도하고 서원하며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엘리제사장의 입을 통해 하나님이 축복하셨고 사무엘이란 귀한 아들을 출산했습니다. 젖을 뗀 후에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실로에 있는 성소에 사무엘을 바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후에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삼상 2:21) 하나님은 생명처럼 귀한 아들 사무엘을 두고 떠나온 어머니 한나를 돌보셔서 그의 외로움을 살피시고 3남 2녀의 자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피시고 돌보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알고 계시고 지금도 돌보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선한목자처럼 내가 의식하지 못해도 시선을 떼지 않고 돌보시는 하나님께 굽혀 경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굽혀 경배해야 합니까?

1. 감사로 굽혀 경배(2상)

2절 상반절,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성도에게 있어야 할 것 세 가지는 기쁨, 기도, 감사라고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크신 하나님, 지으신 하나님, 돌보시는 하나님을 경배할 때는 감사가 우선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굽혀 경배해야 합니다. 수치와 굴욕감을 가지고 억지로 굽혀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감사로 굽혀 경배할 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큰 절을 하듯이 감사하며 굽혀 경배해야 합니다. 감사의 찬양이나 감사의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굽혀 경배하자고 시인은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 예배할 때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감사로 굽혀 경배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2. 기쁘게 굽혀 경배(2하)

2절 하반절,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감사로 굽혀 경배할 뿐 아니라 시를 사용하여 즐거이 노래하자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라는 단어는 ‘손가락들로 튕긴다’ 라는 뜻을 지닌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굽혀 경배할 때 연주할 수 있는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께 큰 소리로 찬양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굽혀 경배할 때 찬양할 수 있는 모든 악기와 도구를 사용하여 기쁨으로 경배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시와 노래와 악기로 찬양했습니다. 심지어 법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는 왕의 신분도 잊어버리고 옷이 내려가는 줄도 모른 체 백성들 앞에서 춤을 추며 기쁘게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시며 만족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드신 피조물을 보시며 스스로 기뻐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피조물을 통해서 영광받기를 원하십니다. 사도바울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했습니다. 계 4:11절에는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고 영광받기를 기뻐하십니다. 사 43: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는 일도 영원히 계속되어야합니다. 하나님께 기쁘게 굽혀 경배하는 삶의 예배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겸손히 굽혀 경배(6)

6절,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굽혀 경배하는 것이 당연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께 대하여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겸손히 굽혀 경배하는 것입니다. 낳아주신 부모님께 절을 하듯이 창조주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삼전도에서 인조가 무릎을 꿇고 굽혀 당태종을 경배한 것은 수치와 굴욕입니다. 경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만 생각하면 인조는 분노하고 모욕감에 치를 떨었을 것입니다. 겸손히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굽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억지로 굽혀 경배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진정한 겸손으로 굽혀 경배하자고 했습니다. 크신 하나님, 지으신 하나님, 돌보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고 굽혀 경배하자고 시인은 촉구하고 있습니다.

 

(예화)도고 제독

요즘 이순신장군에 관한 영화 ‘명량’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영화기록을 새롭게 경신하고 있습니다.

도고 제독은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의 해군 제독입니다. 그는 탁월한 업적을 세워 일본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군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런 도고 제독이 이순신 장군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영국의 넬슨보다 나을지는 모르나, 조선의 이순신 장군에게는 나을 것이 없다. 나는 일본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이순신은 지지는커녕 백의종군 하였다. 나는 러시아 함대와 비슷한 전력이었으나, 이순신은 상대의 10%의 전력으로 승리하였다. 나는 살아서 영광을 얻었으나, 이순신은 자신의 죽음을 숨기면서 승리를 얻어냈다.”

이순신장군 앞에 겸손히 자신을 내려놓는 도고제독의 자세로 하나님께 겸손히 굽혀 경배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굽혀 경배합시다. 굽혀 경배할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 지으신 하나님, 돌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굽혀 경배할 때 감사로 굽혀 경배하고, 기쁘게 굽혀 경배하고, 겸손히 굽혀 경배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참된 예배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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