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일본 도쿄 한복판 히비야공원 야외음악당에 5000명 안팎 시민들이 모였다. 아베 내각이 밀어붙이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헌법) 해석으로 헌법 9조를 파괴하지 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곳곳에 '전쟁을 용납하지 말라' '개헌 저지' 같은 깃발이 나부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연단에 올라 말했다. "아베 내각이 평화주의, 민주주의의 정신을 부수려 하고 있다. 일본의 정신이 100년 만에 매우 위험한 시기에 들어가고 있다." 100년 전은 일본이 메이지(明治) 시대에 이룬 과학기술 발전, 청·일전쟁 러·일전쟁으로 얻은 자신감과 전쟁 배상금을 밑천 삼아 군국주의의 길로 막 들어서던 때다. 일본 근대문학 거장 나쓰메 소세키는 당시 "일본이 매우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경고했었다.
▶집단적 자위권은 유엔이 모든 국가에 부여한 기본 권리다. 동맹을 맺은 나라가 공격당했을 때 자기 나라가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반격할 수 있는 권리다. 일본 역대 내각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헌법 9조에 위배된다고 해석해 왔다. 2012년 12월 출범한 아베 내각은 처음엔 헌법 자체를 바꾸려 했다. 이게 쉽지 않자 헌법 해석을 달리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려 했다. 이른바 '해석 개헌'이다. 히비야 집회 참석자들은 아베 내각이 해석 개헌을 통해 동맹국의 전쟁에 참전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일본 국민 의견도 해석 개헌에 부정적이다. 얼마 전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반대'가 63%, '헌법 9조 유지'가 64%였다. 며칠 전 노벨상위원회가 일본 헌법 9조를 평화상 후보에 올렸다. 일본의 한 주부가 "헌법 9조에 평화상을 달라"고 위원회에 편지를 보낸 뒤 추진위까지 생겨 청원한 결과다. 전쟁하지 않는 나라를 후손에 물려주는 게 청원 운동의 목적이라고 한다. 100년 전과 달리 현대 일본엔 아베 정권의 폭주(暴走)를 막으려는 사람이 적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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