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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여객선 침몰 / 먼저 빠져나온 선장

하마사 2014. 4. 17. 22:07

[진도 여객선 침몰 / 먼저 빠져나온 선장]

아이들이 친구 구할 때, 선장은 첫 보트로 '1號 탈출'

 

[선원 6명도 함께… 승무원 30여명 대부분 구조]

-선장·선원들, 승객은 뒷전
구조된 선원 "빠져나오기 바빠 승객 구조는 생각도 못했다"
伊선 승객 버린 선장 2697년刑

-친구 살린 학생들
메신저 주고받으며 다독이고 서로 손잡아주며 탈출 도와

-목숨 건 선생님들
선실마다 문 두드리면서 "빨리 바다로 뛰어들어라"

 

배가 침몰하는 2시간 동안 여객선 선원들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던 것일까.

침몰된 세월호에서는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지만, '1호 탈출'을 감행한 선장을 비롯해 선박을 끝까지 책임져야 할 선원 상당수가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일찌감치 대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당시 세월호에는 선장과 1등 항해사 2명, 2등 항해사 1명, 3등 항해사 1명, 갑판장, 조타수 3명, 기관장 1명 등 직원 30여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들은 침몰 때까지 선내 안내방송을 맡았다 숨진 채 발견된 박지영(여·22)씨를 제외하곤 대부분 구조된 것으로 전해졌다.

'친구야 살아있었구나' - 16일 오전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에서 구조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서로 생사를 확인하고 눈물을 흘리며 끌어안고 있다. /뉴시스
목포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선장 이모(69)씨는 가장 먼저 탈출 행렬에 합류했다. 이씨는 최초 선박 좌초 신고가 접수된 지 40여분 뒤인 오전 9시 30분쯤 배 밖으로 나와, 오전 9시 50분쯤 해경 경비정에 의해 승객 50여명과 함께 구조됐다. 기관사 및 조타수 등 선원 6명도 이 '첫 구조 그룹'에 속해 있었다. 경찰은 이씨를 불러 사고 경위를 조사했고, 선박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그를 구조 작업에 동원하기 위해 사고 지역으로 다시 보낸 상태다. 선장 이씨가 당초 운항을 맡기로 했던 신모(47)씨를 대신해 사고 선박을 몰았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일부 네티즌은 "이씨가 '대리 선장'이어서 무책임하게 가장 먼저 배를 버리고 나온 것이냐"고 비난하고 있다.

해상 사고가 날 경우 배에서 끝까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선장이 반드시 지켜야 할 명예이자 자존심으로 평가받는다. 희생자를 1513명 낸 타이태닉호 참사 당시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은 마지막까지 승객 탈출을 지휘했다. 그의 고향인 영국 리치필드에서는 배와 운명을 함께한 스미스 선장의 동상을 세우고, 동판에 "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ish)"는 그의 마지막 말을 새겼다. 선박 승무원들이 승객을 제쳐두고 탈출에 앞장서는 것도 상식 밖의 일로 여겨진다. 2012년 1월 이탈리아에서는 호화 유람선 코스타콩코르디아호가 승객 4229명을 태우고 가다 암초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해 승객 32명이 사망했다. 사고 직후 배에서 탈출한 선장 셰티노는 경찰에 체포됐고,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검찰은 배에 남은 승객 300여명을 버리고 도망친 직무유기죄를 적용해 승객 1인당 약 8년형씩 도합 2697년형을 구형했다. 이 사건의 재판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번에 먼저 도망쳐나온 세월호 선원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조타수 오모(58)씨는 "배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다 천만다행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며 "승객들에게 구조대가 올 때까지 대피하라고 알렸다"고 말했다. 선원 김모(61)씨는 "새벽 근무 후 방에서 혼자 잠을 자고 있다가 배가 기울어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면서 사고 사실을 알았다"며 "배에서 빠져나오기 바빠 다른 사람들을 구조한다거나 그런 일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했다.


	휴대폰 불빛 비춰 생존자 확인 16일 밤 전남 진도군 실내체육관 앞에서 안산 단원고 학부모들이 휴대전화 불빛을 밝혀 구조자 명단을 확인하고 있다.
휴대폰 불빛 비춰 생존자 확인 16일 밤 전남 진도군 실내체육관 앞에서 안산 단원고 학부모들이 휴대전화 불빛을 밝혀 구조자 명단을 확인하고 있다. /뉴스1
생존자들은 "선원들이 승객들을 제대로 대피시키지 않았다"는 증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정복진(17·단원고 2)군은 "아무도 상황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려주지 않고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반복했다"며 "본능적으로 헤엄쳐서 나오지 않았다면 배 안에 갇혀버렸을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다닌 사람들은 교사와 동료 학생들이었다. 임모(17)군은 "구명조끼를 입고 방 안에 있는데 선생님들이 오시더니 문을 열면서 즉시 바다로 뛰어들라고 하셨다"며 "바다로 뛰어들자마자 배 끝까지 물이 차올랐다"고 말했다. 이모(여·17)양은 "휴대전화가 터지는 아이들은 경찰에 전화를 하거나 친구들끼리 메신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다독였고, 여객선 밖으로 탈출할 때에도 서로 뒤에서 밀어주거나 손을 잡아줘 구조를 도왔다"고 했다. 김모(38)씨도 "헬리콥터가 오자 승객들끼리 서로 합심해 한 명씩 밧줄로 끌어당기면서 이송시켰다"고 말했다.

지난 1993년 사망자 292명을 낸 서해훼리호 사고 때도 선원들은 끝까지 책임을 다했다. 백운두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 7명이 마지막까지 승객 구조 작업에 힘쓰다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수학여행에 나선 고등학생 등 총 459명이 탄 여객선 '세월호'가 16일 오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 4명이 사망하고 291 명이 실종됐지만 사고원인은 오리무중이다.

-조선일보, 201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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船長, 침몰 순간 이미 뭍에 있었다

[승객들 놔둔채 맨 먼저 빠져 나온 선장에 국민 분노 폭발]

5분 만에 선장은 탈출로로… 학생들엔 1시간째 "객실서 대기하라" 안내 방송
李선장, 구출 직후 직업란에 '일반인'이라고 적어 속여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하자 불안에 떨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구조의 손길을 기다렸다. 하지만 선장과 선원들은 그 시각 승객들에게 "밖으로 나오면 위험하니 방에서 움직이지 마라"는 안내 방송만 수차례 반복했을 뿐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특히 선장 이준석(69)씨는 사고 직후 일부 선원만 데리고 배에서 탈출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거센 비난이 일고 있다. 검찰은 이씨에 대한 구속 수사를 검토하고 있다.

17일 해경 등에 따르면 선장 이준석씨는 8시 52분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하자 8시 55분쯤 제주 관제센터에 구조를 요청했다. 5분 뒤인 오전 9시쯤에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선원들에게 대피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정작 승객들에게는 정반대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그는 직원들을 시켜 승객들에게 "객실에서 움직이지 마라"고 방송하도록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구명정에 올라타 침몰하는 세월호를 뒤로하고 사고 현장을 빠져나갔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사고 발생 한 시간 뒤인 오전 9시 50분쯤 그는 1등 기관사 손모씨 등 선원 6명과 함께 해경에 구조됐다. 이들이 구조되는 동안 세월호 안에서는 "이동하지 말고 안전한 선실에서 기다려라" "방으로 들어가라"는 방송만 계속 흘러나왔다.

이준석‘세월호’선장이 17일 오후 전남 목포해양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뒤 울먹거리는 표정을 지으며 경찰서를 빠져나가고 있다.
이준석‘세월호’선장이 17일 오후 전남 목포해양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뒤 울먹거리는 표정을 지으며 경찰서를 빠져나가고 있다. /신현종 기자
본지가 입수한 구조선 탑승자 명단에서도 선장 이준석씨가 확인됐다. 이씨와 함께 구조선을 탄 세월호 승무원은 '직원'이라고 밝혔지만, 이씨는 직업을 숨긴 듯 직업란에 '일반인'이라고 돼 있다. 이씨가 탄 구조선은 오전 11시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이 선장은 배가 침몰하기도 전에 이미 뭍에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씨와 선원들의 잘못된 상황 대처가 사고를 키우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김철승 목포해양대 국제해사수송과학부 교수는 "선장은 목숨을 걸고라도 마지막까지 승객 안전을 위해 지휘를 해야 하는데 (이씨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선장이 제대로 지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피해자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날 오전 전남 목포해경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승객과 피해자, 가족 등에게 죄송하다"고 말했고, '실종자 가족과 승객에게 할 말이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정말 죄송하다. 면목이 없다"고 대답했다. "승객들을 놔두고 왜 탈출했나"는 물음에는 아무 답변을 하지 않았다.

경찰 조사에서 이씨는 대부분 '모르쇠'로 일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배가 기우뚱한 뒤 갑자기 가라앉기 시작했으며 암초에 부딪힌 듯한 소리는 듣지 못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또 가장 먼저 배에서 빠져나온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도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고 구조대가 와서 급한 마음에 올라탔다. 내가 가장 먼저 탔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전날 구조돼 전남 진도군 진도읍 한국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는 도중에도 바닷물에 젖은 5만원짜리 돈을 치료실 온돌 침상에 말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국민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검찰은 선장 이씨와 선원들이 운항 중 과실을 저지른 점이 확인될 경우 선원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사법 처리할 방침이다. 선원법 11조에 따르면 선장은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는 인명, 선박, 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하고 이를 어겼을 경우 5년 이하 징역을 받게 돼 있다.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경우 법정형은 5년 이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조선일보, 201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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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승객 팽개치고 먼저 배 빠져나간 세월號 선장·선원들

세월호(號) 침몰로 300명 가까운 사망·실종자가 나온 것은 자기들 안위(安危)만 챙긴 선장과 승무원들의 이기적 행동과 미숙한 대처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차츰 분명해지고 있다. 구조된 학생과 승객들은 16일 오전 침수 사고 직후 여러 차례 '밖으로 나오면 위험하니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을 들었다고 했다. 승객들은 이 말에 따라 객실 등에서 앉아 기다리다가 대피할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세월호는 침수 1시간이 넘게 지난 오전 10시쯤에야 '침몰이 임박했으니 배에서 탈출하라'고 방송했다. 그러나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안내는 없었다. 이때는 이미 선장과 일부 승무원이 배를 탈출한 다음이었다. 9시 30분쯤 맨 먼저 해경에 구조돼 10시 30분쯤 인근 팽목항에 도착한 47명 가운데 선장과 선원 10명이 타고 있었다는 것이다. 선장은 그 후 병원으로 이송돼 물리치료실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바닷물에 젖은 지폐를 온돌 침상에 말리는 장면이 목격됐다. 세월호엔 구명보트·구명뗏목 46개가 있었다. 승무원들이 핀을 뽑은 후 바다에 걷어차 넣기만 하면 자동으로 팽창해 승객들을 태울 수 있는 장비다. 하지만 사고 후 제대로 작동한 것은 1개뿐이었다.

침수 시작 30분쯤 지난 후엔 배가 50도 이상 기운 상태였다. 선실에 있던 학생과 승객들이 뒤늦게 빠져나오려 했어도 전기가 나가 깜깜한 데다 가파른 통로를 간신히 기어오른다 해도 바깥쪽으로 밀어야 하는 철문을 열기 힘들었을 것이다. 배의 구조를 잘 아는 승무원들 안내가 아니면 탈출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승무원들은 자기들부터 살겠다고 배를 빠져나갔다.

1912년 4월 빙산에 부딪혀 침몰한 타이태닉호(號) 사고 때는 승객·승무원 2224명 가운데 32%인 710명이 구조됐다. 타이태닉의 선장은 배 침몰 직전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치는 생존자들을 구명보트로 인도한 후 자기는 배로 돌아갔다. 일등항해사는 풀리지 않는 구명보트를 풀어 승객들을 구하고 마지막에 자기 구명조끼마저 남에게 벗어주고 타이태닉과 함께 가라앉았다. 기관장·기관사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전기를 작동시켜 탈출을 돕다가 전원 배와 최후를 함께했다.

비상시 수백 명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여객선 선장과 승무원들이 자기들 책임을 내팽개친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이런 한심한 수준의 직업의식과 사명감·책임감이 세월호에만 국한된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보게 된다. 선박 침몰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일반인들은 공황(恐慌)에 빠져 판단 능력을 잃게 된다. 선박이든 비행기·철도든, 또는 다수가 이용하는 다른 어떤 공공시설이든 운영 책임을 진 사람들은 만약의 경우에 종사자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이용객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상세한 매뉴얼을 정해놓고 틈틈이 교육·훈련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시설 종사자는 물론 대한민국 보통 사람 중에 소화기 한번 다뤄본 사람이 얼마나 되고 자동 제세동기로 심폐소생술을 훈련해본 사람이 몇 %나 되겠는가. 우리가 여태껏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데만 몰두하고 생명·안전을 중시하는 규범들은 그런 성과를 쌓는 데 걸리적거리는 장애물로나 여기고 무시해왔기에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을 겪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을 필두로 전 사회적인 반성과 각성이 필요하다.

 

-조선일보 사설, 201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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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 지시로 선원들부터 탈출

1층 기관실서 3·4층 아이들 가로질러 빠져나가

"세월호 기관실 직원들이 가장 먼저 구조선을 탔더라고. 선장이 '다들 도망치라'고 해서 빨리 내뺐다고 합디다."

17일 전남 진도군 실내체육관에서 만난 정모(58·경기 안산시)씨는 "어떻게 이런 배가 아이들을 태운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고 당시 정씨는 배가 기울어지며 바깥으로 튕겨 나와 바다에 빠졌다. 구명조끼도 못 입은 상태였지만, 고무보트를 타고 다가온 사람들에게 구조됐다.

구조선인 진도군 급수선으로 옮겨 탔을 때 정씨는 군청색 제복 차림의 세월호 승무원 10여명을 발견했다. 그들은 구조선 책임자가 소속을 묻자 머뭇거리며 "기관실"이라고 답했다. "사고 원인이 뭐냐"는 질문에는 "우리도 몰라요"라고 대꾸했다.

정씨의 증언. "더 기가 막힌 건 선장이 '탈출하라'고 해서 아래(1층 후미)에 있는 기관실에서 위쪽으로 올라왔다는 거야. 3~4층의 어린 학생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물에 가라앉고 있는데, 밑에서 올라온 승무원이 그걸 모른 척하고 맨 먼저 튀어나왔다는 거잖아."

본지가 입수한 구조선 탑승자 명단에는 정씨와 함께 세월호 승무원들이 있었다.

 

-조선일보, 2014/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