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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와 암

하마사 2014. 4. 2. 15:12

朴 대통령 거침없는 은유 행진… 규제는 가시, 암, 원수로 진화
정치인 은유, 긍정 단어 위주의 비전 담긴 창조적 표현 걸맞아
가시는 사소하고 암은 부정적… 쉽고 친근하고 참신한 표현을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사진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흔히 비유를 뜻하는 '메타포(metaphor)'는 천재(天才)들의 영역이라고 한다. 그만큼 비유를 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일 게다. 어떤 사물이나 개념의 의미가 다른 단어에 적용되어 의미 변환과 함께 새로운 개념의 지도를 그려내는 비유는 상징(언어)을 사용하는 인간이 누리는 최고의 사치품이 아닐까 싶다.

언어가 사람의 생각을 움직일 수 있는 건 개념의 체계에 파고드는 은유의 힘에서 나온다. 인지언어학자 레이코프(Lakoff)는 우리의 일상이 은유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은유를 적절히 사용하면 일상을 지배할 수 있다.

이렇게 멋진 설득의 도구를 인간이 그냥 놔뒀을 리가 없다.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소포클레스나 유리피데스도 은유로 희곡을 썼고, 예수님도 '낙타와 바늘귀'같은 비유로 복음을 전파했다. 좀 더 근대로 넘어오면 윈스턴 처칠과 마거릿 대처, 마르틴 루터 킹 목사와 존 F 케네디 같은 정치인들이 비유법을 즐겨 썼다. '보이지 않는 손' 같은 표현을 쓴 경제학의 대부(代父) 애덤 스미스도 마찬가지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다양한 비유법이 화제다. '통일은 대박'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더니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규제를 '암(癌) 덩어리' '쳐부술 원수'라고 불렀다. 취임 초 '손톱 밑 가시'였던 규제가 어느새 '암 덩어리'가 되자 각 부처가 종합병원 응급실처럼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통령도 그걸 원했을 것이다.

앞서 박 대통령은 국민을 '북극성(北極星)'에 비유한 적이 있다. 그랬다가 "우리(공직자)가 호수에 그냥 돌을 던져도 개구리에게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고 했다. 한때 별이었던 우리(국민)가 연못 속으로 떨어졌다. 공무원은 '진돗개', 정책은 '펄떡펄떡 뛰는 살아있는 물고기', 그 정책이 때를 놓치면 '퉁퉁 불어터지고 텁텁해진 국수'가 된다. 규제는 '손톱 밑 가시'에서 '암'으로, 다시 '원수'로 진화했다. 대통령의 거침없는 은유 행진은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소심한 남자가 여자 친구에게 던지는 말처럼 '낯설다.'

가시는 따끔하고 불편하고 성가시며, 암은 무섭고 치명적이고 재발이 우려되며 돈이 많이 드는 질병이다. 아마도 정부가 생각하는 규제는 그 사이 어디쯤 위치할 것이다. 아마도 규제 중에는 '가시' 같은 규제도 있고, '암' 같은 규제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비유를 듣는 국민의 머릿속 규제도 그 사이 어디쯤을 헤맨다는 점이다.

그 사이에 야당은 '신호등' '울타리' '양(羊)'의 비유를 들고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김한길 대표는 "규제 개혁도 좋지만 교차로 신호등까지 없앤다면 연일 대형 참사가 벌어질 것"이라며 "울타리(규제)를 없앤다면 선하고 힘없는 양(국민)들은 살아남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규제가 없어진 세상은 '정글', 대기업과 재벌은 졸지에 '늑대'가 되었다. 김한길 대표는 전직 소설가다.

글을 쓰거나 말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준칙으로 비유를 함부로 하지 말 것, 잘할 자신이 없으면 아예 하지 말 것이 있다. 그만큼 비유로 공감을 얻기 힘들고, 공감을 얻어도 자칫 본래 뜻을 뛰어넘어 각인되어 버리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규제 개혁은 경제 활성화의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그렇다면 수단에 걸맞은 비유를 써야 한다. 아니면 지금의 규제 개혁이 시대적 소명일지 모른다. 지금까지 그 많던 규제가 산업화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데 필요했다면, 창조 경제 시대에는 과감히 폐지해야 하는, 그러니까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새 시대의 규범을 창조하는 일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비전이 담긴 창조적 비유가 걸맞을 것이다.

정치인의 은유는 긍정적인 단어가 주(主)를 이뤄야 한다. 킹 목사의 '꿈',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레이건 대통령의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 케네디 대통령의 '뉴 프런티어', 오바마의 '리커버리(회복) 플랜'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부정적인 단어가 없다. 단어는 쉽고 친근하고 참신해야 한다. 품위는 그다음 문제다.

정치란 잘못된 은유와 싸우는 것이라고 한다. 규제 개혁이라는 정책 목표를 세웠으면 비유 대상을 찾기 전에 학교 옆 호텔이 적절한지 궁금해하는 개구리(양)들은 없는지, 투자의 물줄기가 흘러가게 하기 위해 단순히 자갈을 치우는 일인지 새로운 물길을 터주고 제방을 쌓는 토목 사업인지 선진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을 새로 짜는 대형 공사인지 검토하고, 그 후에 이름을 붙여도 늦지 않다. 그러기에 '가시'는 너무 사소하고 '암'은 너무 부정적이다.

 

-조선일보, 2014/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