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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여객선 침몰 / 침몰 순간 아이들은

하마사 2014. 4. 17. 21:58

[진도 여객선 침몰 / 침몰 순간 아이들은]

"나 구명조끼 못 입었어" "어떡해, 엄마 안녕, 사랑해"

[아이들의 마지막 메시지]

"아빠, 배 안에 있는데 걸어갈 수가 없어"
"아무것도 안보여요, 바다밖에 안보여"
"구명조끼 입고 복도에 뭉쳐있어, 걱정마"
"배가 가라앉고 있어요, 아빠… 살아서 만나요"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에 탑승한 한 학생이 어머니와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 16일 오전 침몰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애타게 불렀지만 아들은 답이 없다.
 
침몰한 여객선 궨세월호궩에 탑승한 한 학생이 어머니와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 16일 오전 침몰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애타게 불렀지만 아들은 답이 없다. /최원우 기자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승객들은 최후까지 필사의 탈출을 시도했다. 어린 학생들은 두려움에 떨며 가족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선체(船體)가 급격히 기울어진 오전 9시 27분.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안산 단원고 2학년 신영진군은 어머니 박미자(46)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 말 못 할까 봐 미리 보내 놓는다. 사랑해.' 의아하게 생각했던 박씨는 곧 언니로부터 사고 소식을 접하고 그대로 혼절했다. 신군은 다행히 구출됐다.

비슷한 시각 이 학교 김범수군도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배가 가라앉으려 해. 구명조끼 입고 침대에 누워있어. 어쩌지"라고 했고, 아버지는 "짐 다 버리고 기둥이라도 꽉 잡고 있어"라고 했다. "살아서 만나요" 하고 울먹이는 음성을 마지막으로 아들의 전화 신호음은 끊겼다고 한다. 김군의 아버지는 "이후로 아무 소식이 없다"고 했다. 박모(17)군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배가 반쯤 기울어져 아무것도 안 보여요. 바다밖에 안 보여요. 나 아직 구명조끼 못 입었어요"라는 다급한 말을 남기고 연락이 두절됐다고 한다.

한 여학생은 휴대전화로 침몰이 시작된 직후의 객실 동영상과 사진 3장을 어머니에게 보냈다. 동영상에는 사고 당시 흔들리는 선실 모습과 불안해하는 학생들의 대화가 담겨 있었다. 동영상에서 한 학생은 "기울어졌어! 배에 물이 고여, 물이!"라고 외쳤고, 다른 학생들은 계속 웅성거리고 있었다. 한 여학생은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면서 "어떡해. 엄마 안녕. 사랑해"라는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배가 가라앉기 직전인 오전 10시쯤 오히려 걱정하는 가족을 달래는 학생도 있었다. 신모(18)양은 '아빠 걱정하지 마. 구명조끼 입고 애들 모두 뭉쳐 있으니까. 배 안이야. 아직 복도'라는 문자를 보냈다. 아버지는 '침몰 위험이 있으니 바깥 난간에 있어야지. 가능하면 밖으로 나와라'고 했고, 신양은 '아니, 아빠. 지금 걸어갈 수 없어. 복도에 애들 다 있고 너무 기울어져 있어'라고 답을 보내왔다.

어른들 도움으로 극적으로 구조된 여섯 살 권지영양은 "오빠가 구명조끼를 입혀줬는데 나만 남았어요"라고 울먹였다. 권양은 일곱 살 난 오빠가 채워준 구명조끼를 입고 목숨을 구해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함께 가족 여행을 떠난 오빠와 부모는 이날 밤늦게까지 생사 확인이 안 된 것으로 알려졌다.

탈출 직전의 아수라장을 전하는 증언도 이어졌다. 한 생존자는 "배 앞쪽에 보이는 입구 쪽으로 가려는데 물이 너무 빨리 차올라 이동이 어려웠다"면서 "'유리창을 깨자'는 얘기가 곳곳에서 들렸고 창문을 깨지 않고는 도저히 밖으로 나올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다른 생존자는 "내 뒤로 30명 정도가 선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면서 "물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일부는 바로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했다. 한 선원은 "근무 중이었는데 배가 갑자기 기울었다. 빠져나오기도 급해 다른 사람들이 구조됐는지, 조치를 취할 겨를이 없었다"고 했다. 전남 목포한국병원으로 이송된 유모(57)씨는 "'쿵' 소리가 나더니 배가 갑자기 기울었고 밖으로 나와 보니 수직으로 배가 서고 있었다"며 "선실 3층 아래는 식당, 매점, 오락실이 있었는데 그곳 사람들은 대부분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사고선박 출항부터 침몰까지. 아이들은 어디에. /그래픽=이철원·유재일·김충민 기자
단원고의 한승우(17) 학생은 "처음에는 파도 때문에 배가 기울었을 거라 생각했다"며 "그런데 갑자기 '절대 움직이지 말고 객실에 있는 구명조끼를 착용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배가 기울었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객실로 물이 들어차기 시작해 순식간에 몸이 잠겼다"며 "간신히 수영을 해 배 밖으로 나오자 고무보트에 타고 있던 경찰이 구해줬다"고 했다.

가까스로 헬기에 구조된 김영천(58)씨는 "순간적으로 배가 기우니 누가 누구를 도와줄 수도, 의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면서 "난간 철선에 매달려 5m가량을 위쪽으로 올라가 철봉에 매달려 버틴 끝에 구출됐다"고 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갔다 왔다"고 했다

생존자들이 임시 수용된 진도읍 실내 체육관에선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고 안도하거나 안타까운 소식에 오열하는 모습이 교차됐다. 승객 다수를 차지했던 단원고 학생들은 친구들이 한둘씩 체육관으로 구조돼 오자 끌어안고 기쁨을 나눴다. 그러나 오후 들어 친구들 상당수가 '실종'으로 밝혀지면서 체육관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조선일보, 2014/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