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 32:9-12
제목: 고향이 있습니까?
목표: 고향을 생각하며 본향을 그리며 살게 한다.
고향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무엇이 연상됩니까? 부모님, 가족, 친구, 추억 등입니다. 몇 년 전에 태어난 고향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수몰되는 지역이라 태어난 집은 헐렸고 폐가들이 즐비했습니다. 헐린 고향집터에서 옛 생각을 했습니다.
초가지붕 끝에 랜턴을 비추며 참새를 잡던 처마 끝, 외양간에서 여물 먹던 소, 구슬치기와 딱지치기를 하며 친구들과 뛰어놀던 마당, 오줌을 싸서 키를 뒤집어쓰고 소금을 꾸러 갔던 이웃집도 떠올랐습니다. 기억 속에만 자리한 고향집을 바라보며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김소월 시인의 ‘고향’이란 시의 일부분입니다.
“떠도는 몸이거든 고향이 탓이 되어
부모님 기억, 동생들 생각
꿈에라도 항상 그 곳서 뵈옵니다.
고향이 마음속에 있습니까.
마음속에 고향도 있습니다.”
이 시는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지냈던 20년의 타향살이를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장면입니다. 형 에서의 칼을 피해 몰래 도망친 이후 다시 형과의 만남을 앞두고 두려움 때문에 얍복나루에서 밤을 새워 기도했습니다.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20년 만에 찾는 고향길이 두렵고 험한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에서를 만났을 때 용서와 화해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들 중에 즐거운 귀성길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야곱과 같은 심정으로 고향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명절을 앞두고 고향을 생각하면서 ‘고향이 있습니까?’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향이 있습니까?
1. 만남의 고향이 있습니까?(9상)
9절 상반절,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창 28:12-13,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인생은 만남이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길이 바뀝니다. 자녀는 좋은 부모를 만나야 하고 학생은 좋은 선생님과 친구를 만나야 합니다. 성도는 좋은 영적인 스승을 만나야 하고 국민은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야 합니다.
야곱은 믿음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할아버지 아브라함, 할머니 사라,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를 만나 믿음으로 자랐습니다. 행복한 가족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런 가정에 장자권문제로 형제간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동생 야곱은 형이 받을 장자의 복이 탐나서 아버지를 속여 장자권을 가로챘습니다. 장자의 복을 빼앗긴 형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하자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다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외로움과 절망 속에 막막한 미래를 걱정하며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이 찾아와 만나주셨습니다. 부모님과 고향을 등지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미지의 세계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런 야곱이 하나님을 만남으로 용기를 얻었고 이후에 20년의 모진 타향살이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만나주신 기록은 다섯 번입니다. ①밧단아람으로 도망갈 때 벧엘에서(창 28:10-22), ②외삼촌 라반으로부터 떠나 가나안땅으로 가라하실 때 하란에서(창 31:11-13) ③형 에서와의 만남을 앞둔 때 얍복 나루터에서(창 32:28) ④야곱의 딸 디나 강간사건 이후 세겜에서(창 35:1) ⑤30년 후 야곱이 서원대로 제단을 쌓을 때 다시 벧엘에서(35:9) 만나주셨습니다. 인생의 고비 때마다 하나님이 만나주셨습니다. 외롭고 힘든 인생의 위기 때 야곱은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은 찾아와 만나주셨습니다.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오는 에서를 두려워하면서 야곱은 벧엘에서 만났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얍복나루에서 홀로남아 밤이 새도록 씨름을 하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허벅지 관절이 위골되었지만 축복해달라고 끝까지 매달렸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야곱에게 축복하고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만났던 만남의 고향이 있는 사람은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이 또 만나주실 것을 믿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벧엘은 야곱에게 만남의 고향이었습니다. 두 번이나 하나님이 친히 만나주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벧엘에서 만나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이길 수 있었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환경을 만나는 것도 축복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만남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삶이 변하고 복된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했던 만남의 고향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렸던 모리아산이었습니다. 모세는 목동으로 살고 있을 때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불러주셨던 미디안광야 떨기나무였습니다.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이 벌어졌던 전쟁터였습니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선지자 850명과 홀로 대결했던 갈멜산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제단 숯불로 입술을 대었던 성전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이,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이 하나님을 만났던 만남의 고향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부름 받았던 갈릴리 호수가, 레위는 주님을 만났던 세관이, 삭개오는 돌무화과나무, 바디매오는 여리고 근처에서 구걸하던 장소, 바울사도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이 하나님과의 만남의 고향이었습니다.
(예화)
수가성 여인은 야곱의 우물곁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뜨거운 정오에 사람들을 피해서 나왔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야곱의 우물 곁에서 여인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불행한 한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일부러 찾아가셨습니다.
여인은 다섯 명의 남편을 만났지만 만족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이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수가성 여인은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우울하고 불행하던 삶이 기쁨과 감격적인 삶으로 변했습니다. 수가성 여인에게는 야곱의 우물가가 만남의 고향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여인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야곱의 우물가를 찾아 은혜를 되새기며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났던 만남의 고향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체험했던 만남의 고향이 있습니까? 고향은 부모님과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기에 그립고 정겨운 곳입니다. 영적인 만남의 고향이 있으면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하나님이 고향처럼 느껴집니다.
(간증)
저의 간증을 잠깐 하겠습니다. 청년 때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목숨을 잃을 뻔 했습니다. 밤에 시골길을 달리다가 커브 길을 모른 체 속력을 냈습니다. 순간 핸들을 돌리지 못해 죽는구나 생각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나도 모르게 핸들이 돌려지면서 살아났습니다. 지금도 그 곳을 지날 때면 감회가 새롭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만남의 고향이 있습니까? 부모님, 친구, 추억을 만나려 고향을 찾듯이 하나님과 만났던 만남의 고향을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그 만남의 고향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의 고향을 되새기며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기적을 체험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병을 고침 받기도 했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기적의 현장에서 예수님이 나누어주신 떡과 고기도 먹었습니다. 귀신들이 떠나가는 현장도 목격했습니다. 삶의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났던 만남의 고향을 많은 사람들은 잊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모두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던 만남의 고향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슴 깊이 고향을 간직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은 만남의 고향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내 삶에 들어오셔서 만나주시고 함께 하신 만남의 고향을 간직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향이 있습니까?
2. 약속의 고향이 있습니까?(12절)
12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창 28:14-15,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약속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약속의 고향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의 말씀입니다. 후손이 셀 수 없는 모래와 티끌같이 번성하며 복의 근원이 되고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시고 반드시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과의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보고 자란 야곱이 그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약속을 이루기까지 야곱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외로움과 절망 속에 있던 야곱에게 이것보다 더 큰 용기를 주는 약속이 어디 있습니까? 하란까지 800km(2,000리)나 되는 멀고도 험한 길을 갈 때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시고 지켜주시는 가장 든든한 동행자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본문의 상황도 비슷했습니다. 형을 피해 하란으로 도망갈 때처럼 또 에서가 군사들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오고 있었습니다. 가족과 가축들이 몰살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고향에 도착하기 전에 죽을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토록 그리던 고향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죽게 생겼습니다.
그 때 야곱은 벧엘에서 하셨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야곱이 20년 동안 그 약속을 붙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벧엘은 만남의 고향이기도 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은 약속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었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시며 반드시 고향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굳게 붙잡았습니다.
고향을 떠나올 때 주셨던 약속의 말씀은 20년이 지난 상황에서도 야곱을 지탱하는 힘이었습니다. 타향살이의 설움과 위기의 순간을 이기게 하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차지하기 위해 아버지와 형을 속였습니다. 외삼촌 라반은 야곱에게 열 번이나 거짓말을 하여 품삯을 바꾸었습니다. 사람에게 실망했습니다. 외삼촌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성도들은 사람과의 약속도 잘 지켜야 합니다. 상호간에 약속을 지키지 않아 상처를 주고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간약속을 잘 지켜야 합니다. 돈거래 할 때 약속을 잘 지켜야 합니다. 사업하는 분은 직원과의 약속, 고객과의 약속, 거래처와의 약속을 잘 지켜야 합니다. 직원은 일터에서 상사와 선후배 동료들과의 약속을 잘 지켜야 합니다. 집주인은 세입자와의 약속을 잘 지켜야 합니다. 세입자는 집주인과의 약속을 잘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한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은 힘들수록 벧엘에서 약속하신 그 약속을 더욱 굳게 붙잡았습니다. 절망과 좌절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는 버팀목이 되었고 인내와 용기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간증)
교회가 어려울 때 금식기도를 하고 응답이 없어 다소 실망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병원심방을 가서 시편 121편 말씀을 읽고 기도했습니다. 그 때 1~2절을 읽으면서 마음속에 감동이 왔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확신하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구절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내게 약속하신 약속의 고향으로 믿고 있습니다.
야곱처럼 낙망하며 혼자서 인생의 나그네길을 가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야곱에게 하셨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용기 얻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말씀으로 주신 약속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께 약속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평안히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기둥으로 세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의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20년 동안 그와 함께 하셔서 12명의 아들을 거느린 가문을 이루었고 큰 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야곱이 약속을 지킬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후에 성경을 보면 야곱이 형과 화해하고 곧장 벧엘로 가지 않았습니다. 세겜에서 정착하여 살다가 딸 디나가 세겜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아픔을 겪은 후에 하나님이 나타나 벧엘로 올라가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약속을 잊고 살았던 야곱을 하나님이 다시 깨우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모든 식속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창 35:3) 야곱은 드디어 약속의 고향 벧엘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약속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약속은 잊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했던 약속은 잊고 살았습니다.
(예화)
2012년 11월 26일 일간신문에 실린 기사입니다.
식물인간 상태로 42년간 누워 있던 에드워다라는 미국 여성이 죽었을 때 마이애미헤럴드 신문은 감동적인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에드워다는 17세 때 응급실로 가서 엄마에게 "엄마, 내 곁을 떠나지 말아줘요. 그래 줄 수 있죠?"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딸을 어루만지며 "물론이지. 엄마는 절대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거야. 약속할게"라고 답했습니다. 이것이 모녀가 주고받은 마지막 대화가 됐습니다. 에드워다는 곧바로 혼수상태에 빠져들어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이후 식물인간이 된 딸에게 튜브를 통해 음식을 먹였고,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두 시간마다 몸을 뒤집어주고 목욕을 시켰습니다. 책을 읽어주고 음악도 들려주고 말도 건넸습니다. 엄마는 딸이 혼수상태에 빠진 이후 한 번에 90분 이상 잔 일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38년간 딸을 돌봐온 바로 그 침실, 딸의 곁에서 80세 나이로 숨을 거뒀습니다.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38년 동안 헌신했던 감동적인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벧엘에서 했던 야곱과의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야곱이 라반 몰래 가족과 소유물을 가지고 도망쳤을 때 라반이 7일간 추격했습니다. 하나님은 라반에게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야곱을 해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야곱의 딸 디나의 일로 아들들이 세겜성읍의 모든 남자들을 살해했습니다. 그 일로 가나안족속이 복수하려 할 때도 하나님은 그들이 추격하지 못하게 막아주셨습니다.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고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나님은 신실하게 이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떠올릴 수 있는 고향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약속하고 서원했던 약속의 고향이 있습니까?
여러분 중에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고 사는 분이 계시지는 않습니까? 2014년 새해에 하나님과 약속한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한 달도 되기 전에 잊지는 않았습니까? 과거에 하나님과 한 약속이 있습니까? 지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약속의 고향을 떠올리며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또한 약속의 고향에서 하나님께 했던 약속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설 명절에 고향을 오가며 하나님과 맺었던 약속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향이 있습니까?
3. 소망의 고향이 있습니까?(9하)
9절 하반절,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내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고향은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고향을 이북에 두신 실향민들은 명절 때가 되면 고향을 더욱 그리워합니다. 가지는 못해도 언젠가 갈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벧엘에서 야곱을 만나주시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라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타향살이를 하면서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라반에게 고향으로 가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라반이 품삯을 줄 테니 그대로 있으라고 하여 20년 동안 라반의 집에 있게 되었습니다. 잠언 27:8절에 “고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보금자리를 떠도는 새처럼 살면서 고향을 그리워했습니다. 후에 야곱은 고향을 떠나 요셉이 총리로 있던 애굽에서 17년을 살다가 죽으면서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창 47:30)고 요셉에게 유언했습니다. 선조들이 잠들어 있는 고향에 묻히기를 소원했습니다. 비록 애굽에서 총리 아들의 효도를 받으며 평안히 살았지만 고향을 소망하며 그리워했습니다. 애굽에서 인생의 말년을 호강하며 살았지만 죽는 순간까지 고향을 잊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살기 좋아도 여기는 우리의 영원한 본향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애굽의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고향을 잊지 않고 소망했던 야곱처럼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 역시도 소망하던 고향이 있었습니다. 총리로 있던 애굽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이 유언하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창 50:25)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고향을 찾아 떠날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 해골을 가져가서 고향에 묻어달라고 했습니다. 죽어서라도 고향에 묻히고 싶어 했던 요셉의 소망을 400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면서 요셉의 해골을 가져와 가나안 땅 세겜에 장사하였습니다.(수 24:32) 야곱과 요셉의 유언대로 그들은 소망하던 고향 땅에 묻혔습니다.
총리아들 덕분에 호강하며 말년을 보냈던 야곱과 총리로 있으면서 부와 권력을 누렸던 요셉도 애굽이 영원한 고향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고향을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고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곳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본향이기에 고향을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이 있습니다. “여우는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로 향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도 고향을 그리며 삽니다. 철새와 물고기도 그렇습니다. 요즘 AI(조류인플루엔자)를 퍼뜨리는 것으로 인해 경계대상인 철새는 수천킬로미터를 날아 고향을 찾아갑니다. 연어는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죽습니다. 강에서 태어나 자란 후 일정한 때가 되면 바다로 가서 살다가 죽을 무렵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가서 죽습니다. 고향을 소망하며 사는 생물들도 있는데 만물의 영장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영원한 본향을 소망하며 사는 것이 당연합니다.
(간증)
저의 할머니는 천국에 계십니다. 평생 새벽기도 하면서 사셨던 분입니다. 맏손자가 목사 되기를 위해 기도하시다가 제가 목사가 되었을 때 너무나 좋아하셨습니다. 살아계실 때 할머니를 찾아뵈면 목사인 저에게 천국에 대하여 말씀을 자주 해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천국을 소망하며 사시다가 97세에 그토록 사모하던 소망의 고향 천국에 가셨습니다.
성경은 인생을 안개, 나그네, 풀과 꽃, 품꾼, 그림자, 장막, 잠깐 잠자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짧고 유한하다는 뜻입니다. 영원한 본향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위해 하늘의 영원한 본향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천국은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처럼 아름다운 곳,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는 곳,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않는 곳, 저주가 없는 곳, 밤이 없는 곳, 수고를 그치고 쉼이 있는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영원한 본향은 힘과 노력으로 갈 수 없습니다. 돈으로도 못갑니다. 지식으로도 못가고 권력이나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갈 수 없습니다.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갈 수 있습니다.
육신의 장막을 벗고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하늘의 본향이 있습니까? 소망의 고향이 있어야 합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천국을 소망한다고 해서 현실을 무시하거나 도피해서는 안 됩니다. 이 땅에서 작은 천국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소망의 고향을 사모하는 사람은 항상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향을 찾아 떠나는 민족의 대이동이 있는 명절 주간입니다. 안전하고 은혜롭게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고향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대답해보시기 바랍니다. 만남의 고향이 있습니까? 약속의 고향이 있습니까? 소망의 고향이 있습니까? 이런 고향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고 복된 사람입니다. 이런 고향을 마음에 간직하고 누리면서 사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