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태평양전쟁에 패배한 뒤 투항하지 않고 29년간 필리핀 정글에서 살아남아 1970년대 세계적 화제가 됐던 전 일본군 소위 오노다 히로(92·사진)씨가 16일 오후 지병으로 숨졌다.
1942년 20세 나이로 일본 육군에 입대한 오노다씨는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정보 장교였다. 1944년 말 필리핀 루방섬으로 파견된 그는 이듬해 2월 연합군 공격으로 현지 일본군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힌 가운데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오노다씨는 이후 일본의 패전을 믿지 않고 투항을 거부한 채 29년간 필리핀 정글에서 버텼다.
그는 1974년 2월 일본의 한 청년 탐험가에게 발견될 때까지 필리핀 경찰과 미군 등 30명 이상을 살상했다. 발견 당시에는 52세 나이에도 군복을 입은 채 소총과 수류탄 등을 지니고 있었다. 오노다씨는 전쟁 당시 직속상관이 직접 찾아와 "임무 종료, 무장 해제"를 명령하자 결국 투항했다.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 후 29년 만이었다.
오노다씨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일본 내 우익 진영은 "최후의 황군(皇軍)"이라고 추앙한 반면, 진보 정치인들과 국제사회 일각은 "그는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자일 뿐이며, 군국주의에 대한 일본인들의 향수를 자극했다"고 평했다.
오노다씨는 1975년 브라질로 건너가 목장을 경영하다 10여년 뒤 일본에 돌아와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는 등 우익 활동가로 여생을 보냈다. 1996년에는 필리핀 루방섬을 다시 찾아 1만달러를 기부했지만, 현지 주민들의 집단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17일 "긴 세월 정글에서 강인한 의지와 개척 정신으로 힘차게 살았던 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