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새해 첫날

하마사 2014. 1. 1. 15:47

 

프랑스 파리에서 맞은 2000년 첫날이 오랜 잔상(殘像)으로 떠오른다. 1999년을 10여분 남기고 식구들을 데리고 센강 미라보 다리로 갔다. 75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에펠탑이 보이는 곳곳에 모였다. 폭죽 2만개가 밤하늘을 수놓으면서 에펠탑 전광판 숫자가 2000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낯선 이에게도 "본 아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외쳤다. 그렇게 새해엔 모든 사람이 마음을 열어 하나가 된다.

▶새해 첫날엔 가슴이 순결해진다. 새로운 결심도 한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 해도 적어도 사흘은 새 삶을 산다. 새해 첫날엔 눈이 내리지 않더라도 우리 마음은 이미 새하얀 눈밭이다. 첫날의 시간은 알싸한 파스 향내를 풍긴다. 그 시간의 문턱 너머로 선뜻 발을 디디지 못하고 서성이게 된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처럼 서툴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딘다. 첫 키스 같은 첫날의 설렘이 가슴을 방망이질한다.

만물상 일러스트

▶태국에서 새해 첫날은 4월 중순이다. '쏭크란' 축제가 열린다. 불교의 음력으로 새해를 매기기 때문이다. 그날 태국 사람들은 서로 물을 뿌려댄다. 물벼락을 맞아도 화내지 않고 "싸와디피마이(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나눈다. 지난 한 해 묵은 때를 씻어내라는 뜻이다. 김연수 단편 '벚꽃 새해'에선 벚꽃이 한창일 때 연인과 이별한 여자가 태국 설을 떠올리며 몸에 차가운 물을 뿌린다. 새해 첫날은 스스로 거듭나는 날이다. 날마다 첫날인 양 마음에 물을 뿌리면 하루하루가 화창한 봄날이다.

미국 정신분석학자 조지 베일런트는 1937년 하버드대 2학년이던 268명의 삶을 평생 추적했다. '잘사는 삶의 공식'을 뽑아보기 위해서다. 70여년 대(代)를 이어 살펴봤더니 하버드 엘리트 중에서도 성공한 사람은 평범하게 보이던 학생들이었다. 베일런트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관계'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행복하게 사는 요소로 일곱 가지를 꼽았다. 고통에 넌더리 내지 않고 승화(昇華)와 유머로 극복하는 자세, 안정된 결혼, 교육·금연·금주·운동 그리고 적당한 몸무게다.

▶갑오년 말띠 해가 밝았다. 말을 잘 모는 이는 재갈과 굴레부터 반듯하게 물리고 씌워준다. 고삐와 채찍을 가다듬는다. 말의 마음을 순하게 어루만지니 굳이 큰소리로 닦달하지 않아도 말이 먼저 알아듣는다. 채찍을 들지 않고도 말과 함께 천리 길을 간다. 공자가 한 말씀이다. 날뛰는 야생마도 타는 이가 길들이기 나름이다. 야생마처럼 우리 곁으로 뛰어 온 새해를 슬기롭게 어르고 다스려 힘차게 내달려가자.

 

-조선일보 만물상, 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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