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자기관리(리더십)

읽지 말고 말하세요

하마사 2014. 1. 18. 20:09

박진영 "말하듯이 노래하라"
정치에 유머·박수·공방 없어… 연설 때 시선 맞추고 원고 외우며 이성·인품·감성 갖춰야 대중 설득
자기 언어로 자기 색깔 말하며 政治人 말이 노래처럼 들렸으면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를 맡은 가수 박진영은 "말하듯이 노래하라"는 주문을 자주 한다. 말하듯이 노래하라, 그래야 감동이 전달된다는 그의 지적에는 말과 음악의 사회성에 대한 이해가 묻어난다. 박진영은 또 "자기 목소리로 노래하라"는 주문도 심심치 않게 한다. 남의 목소리나 스타일을 따라 했다가는 혹평을 면치 못한다.

글이 사유(思惟)의 영역이라면, 말은 소통(疏通)의 영역이다. 글은 혼자 쓰지만, 말은 듣는 사람을 상정하는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다. 박진영이 주문하는 노래는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통 행위로서의 노래이다. 남의 목소리와 생각으로 소통할 수 없듯, 자기 소리를 찾아내 대화하듯 노래해야 사람들이 감동한다. 음악가에게 '사운드(sound)'가 중요하다면, 일반인에겐 자신의 정립된 견해나 주장 같은 정돈된 색깔의 '보이스(voice)'가 있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연이어 신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모처럼 서울말을 쓰는 세 정치인이 잘 다듬어진 문구의 모두 발언에 담은 비전과 다짐을 들으며 나도 주문하고 싶어졌다. "읽지 말고 말하세요." 그리고 "대화하듯 정치하세요."

우리나라 정치 연설에는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좌중을 웃기는 유머, 의회 연설의 경우 정파를 뛰어넘는 청중의 박수, 기자회견의 경우 기자와의 상호 공방. 정치인과 직접 소통할 일이 없는 대다수의 국민은 그들끼리의 상호작용을 지켜보며 '소통'이냐 '불통(不通)'이냐를 짐작한다. 수염도 못 깎은 얼굴로 천막에서 항의하던 야당 대표, 실제 목소리(보이스)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여당 대표, 국무회의 때 늘 혼자 말씀하시고 장관들은 뭔가 열심히 적는 장면 속의 대통령. 이들은 '지도자'임은 분명하지만 '대화하는 지도자'의 품새는 아니다.

'숭문어눌(崇文語訥)'의 전통을 지닌 우리는 말 잘하는 지도자를 썩 선호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우레와 같은 언어로 대중을 흔든 웅변가를 지도자로 가져본 기억이 별로 없다. 반면 서양에서는 말이 진리 탐구와 리더십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둘(dia)' 사이의 '말(logos)'로 이루어진 '변증법(dialectic)'을 통해 진리를 구하고, 아고라의 자유발언대에서 청중을 설득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어찌 되었건 우리도 서양식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게 되었고, 정치와 말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정치제도와 더불어 말의 문화가 함께 발달했더라면 계속되는 불통 논란도 조금은 덜했을지 모른다.

이번 신년 기자회견에서 야당과 여당 대표가 나란히 말에 대해 언급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비방과 막말을 마감하고 고품격·고효율 정치를 하겠다"고 했고,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막말과 저주를 하지 않고 언어 순화에 정치권이 앞장서겠다"고 했다. 막말이 사라지면 몸싸움도 사라질 것이다. 바른말로 치열한 설전(舌戰)을 벌이는 바람직한 국회의 모습이 기대된다.

몇 가지 팁을 드리자면, 연설을 할 때는 청중과 시선을 맞추는 것이 기본이다. 눈앞의 프롬프터에 초점을 두거나 카메라를 의식하면 눈의 초점이 흐려져 자연스럽지 않다. 말은 편하게 대화할 때처럼 높고 낮음이 있어야 하고, 표정과 동작이 살아 있어야 한다. 가급적 원고는 외우는 것이 좋다. 고대 그리스 수사학자들은 웅변술로 '기억법'과 '연기법'을 가르쳤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원고 없이 거의 한 시간을 매끄럽게 연설하는 능력이 있었다. 영국 의원들도 대정부 질문을 할 때 외워서 질문한다.

말의 내용은 이성과 논리를 갖춰야 하고(로고스), 말하는 사람의 인품이나 성실성·전문성에 하자가 없어야 하며(에토스), 청중의 감성과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해야 한다(파토스). 이 세 가지를 갖춰야 대중을 설득할 수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강조했다.

정치인은 무엇보다 자기의 언어로 자기의 색깔을 '말'하는 데 거침이 없어야 한다. 원고를 충실하게 읽는 것으로는 청중의 마음을 얻기 힘들다. '리더(reader)가 리드(lead)한다'는 책 제목에 현혹되지 마시라. 그건 사고의 폭을 지칭한 제목이지, 연설문을 읽으라는 뜻이 아니다.

지방선거와 신당(新黨) 출현이 기대되는 올해는 '말하는' 정치인이 늘어나고, 그들의 말이 노래처럼 들렸으면 한다. 희망찬 신년이니 그런 기대도 가져볼까 한다.

박성희 |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조선일보, 2014/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