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모두가 아들… 이광종의 황태자는 없죠"
[포기하지 않는 축구로 국민들에 감동… U-20 국가대표팀 이광종 감독 인터뷰]
이라크에 승부차기로 진 뒤 방에서 맥주 마시며 속 달랬죠
특정 선수 편애해서 팀워크 깨지는 걸 가장 경계했다
나도 선수시절 빛을 많이 못봐 벤치 앉은 아이들 마음 아니까…
"30년의 벽이 정말 높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0일 만난 이광종(49) U-20(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은 이번 U-20 월드컵을 회상하며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한국은 지난 8일 터키 카이세리에서 열린 대회 8강전에서 이라크에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1983년 이후 30년 만의 '4강 신화' 재현에 실패했다.
하지만 U-20 대표팀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은 축구 팬들의 찬사를 받았고, 팀을 지휘한 이광종 감독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잠을 잘 잤다는 이 감독은 "귀국 이틀 만에 시차 적응과 함께 아쉬움도 털어버렸다"고 했다.
- FIFA(국제축구연맹) U-20(20세 이하)월드컵에서 4년 만에 8강 진출을 달성한 이광종 감독이 10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 스튜디오에서 공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광종 감독은“평소 잘 매지 않던 넥타이를 매니 어색하고 불편하다”며 멋쩍게 웃었다. /김연정 객원기자
이번 대회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은 이라크와의 8강전에서 2―3으로 뒤지던 연장 후반 17분 정현철이 교체 투입 2분 만에 중거리슛으로 극적인 동점골을 뽑아낸 장면이었다. "(정)현철이가 키(187㎝)가 크거든요. 시간이 없으니 공을 길게 올려 현철이의 머리에 맞힐 생각이었는데 중거리슛이 들어갈 줄은 몰랐어요. 이것도 절묘한 용병술이라고 봐야 하나요?"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패한 뒤 이광종 감독은 호텔 방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며 아쉬움을 달랬다고 했다. "눈물은 안 났지만 많이 슬펐습니다. 이런 기회가 쉽게 오지 않잖아요. 선수들도 정말 열심히 해줬는데…."
이광종호(號)가 선전한 비결은 탄탄한 팀워크에 있었다. 한두 선수에 의존하지 않고 11명이 조직적인 플레이로 세계적인 강호와 맞섰다. 주장인 골키퍼 이창근은 "대회를 앞두고 '스타가 없다'는 언론 보도가 많이 나오자 감독님이 '우리 21명 모두가 스타'라는 말씀을 하셔서 선수들이 더 잘 뭉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광종 감독은 "내가 팀을 맡는 동안 '이광종의 황태자'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했다. 잘하는 선수를 편애해서 팀워크를 깨는 것을 경계했다는 의미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를 하고 그만둔 제 아들이 이번 대표팀과 또래인 1994년생이에요. 정말 선수들이 아들과도 같은데 어떻게 누구에게만 애정을 줄 수 있겠어요. 특히 경기에 못 나가는 선수들을 챙기려고 노력했습니다."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에게 관심을 쏟는 것은 화려하지 않았던 이 감독의 선수 경력과도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1988년부터 10시즌 동안 프로축구 유공과 수원에서 뛴 그는 변변한 대표 경력이 없다. "스스로 부족한 것을 잘 알기에 이를 채우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선수들은 '감독님께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해야 마음으로 따라오거든요." 이광종 감독의 노력은 한국 축구계에서도 큰 인정을 받고 있다. 특히 2000년부터 유소년 전임 지도자로 활동하며 지금까지 한우물을 팠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유·청소년 대표팀 지도자는 쉽지 않은 자리예요. 특히 자기 아이들을 뽑아달라는 학부모나 지도자의 청탁이 많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단호했던 것이 지금까지 잘 올 수 있었던 비결인 것 같아요. 한 번씩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스스로 떳떳한지 물어봅니다. 원래 남의 말을 워낙 잘 안 듣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하하."
이광종 감독은 한곳에 오래 얽매이는 것이 체질적으로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일정 기간 집중적으로 팀을 만들어가는 대표팀 지도자가 성격에 맞는 것 같아요. 물론 저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바탕이 된다면 프로팀을 맡을 생각도 있습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몇년 만에 맸다는 넥타이를 불편해했다. 이 역시 자유롭지 못한 것을 싫어하는 자신의 성격 탓이라고 했다.
이번 월드컵 기간 슬림한 양복 차림에 단추 하나를 풀어헤친 이광종 감독의 모습은 많은 여성 팬의 호응을 얻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감독을 맡게 되면 열정의 나라 브라질답게 단추 두 개를 풀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이광종 감독은 웃으며 말했다. "그땐 아예 가슴 파인 옷을 입으려고요. 아, 이렇게 말하면 올림픽을 맡고 싶다는 뜻이 되나요?"
-조선일보, 201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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