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나의 소망 하나님

하마사 2013. 10. 13. 19:54

본문: 시 62:5-8

제목: 나의 소망 하나님

찬송: 488장

목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한다.

 

 

1908년 독일에 살던 한 청년이 배고픔과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는데 너무 아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목을 매려고 허리띠를 풀어 목욕탕 고리에 걸고, 의자 위에 올라가 목을 매단 후 의자를 발로 찼습니다. 그런데 허리띠가 낡아 끊어지는 바람에 죽지도 못하고 그냥 바닥에 처박혔습니다. 바로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내가 죽다 살아났구나! 다행이다!” “그래, 한번 열심히 살아보자.” 열심히 노력해서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됐습니다. 바로 쇼팽 음악의 최고 권위자인 루빈스타인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책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오늘의 고통을 이겨내게 하는 힘이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거나 자포자기하고 만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을 강하게 하는 것은 희망입니다. 반면 사람을 나약하게 만드는 것은 절망입니다. 막혀있는 벽을 열 수 있다는 강렬한 의지와 희망이 있다면, 그 벽은 열립니다. 누구든 인생길에 벽을 만납니다. 때로는 너무 높아서 넘어설 힘도, 열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바로 그때 필요한 것이 희망입니다. 막힌 벽을 열게 하는 것이 희망이고,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벽은 열립니다. 희망이 곧 길입니다.

 

본시는 인생에서 가장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만난 사람이 지었습니다. 다윗 생애에 있어서 가장 참담한 시기였던 압살롬 반역을 배경으로 하는 비탄시 입니다. 당시 다윗은 매우 절박했습니다. 반역자들은 다윗을 제거하기 위해 총공세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아들 압살롬과 신하 아히도벨이 배신하여 자기를 죽이고 왕위를 차지하려 했습니다. 마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다윗의 심정을 담아 ‘나의 소망 하나님’이라 제목을 정했습니다.

 

나의 소망 하나님은

1. 소망의 근원입니다.(5절)

5절,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소망의 근원과 출발점은 하나님이십니다. 소망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샘에서 샘물이 솟아나듯 소망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소망이 솟아나옵니다. 감자나 고구마 혹은 땅콩을 수확할 때 줄기를 잡아당기면 땅 속에 있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줄기와 뿌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의 열매를 잡아 당기면 그 근원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순간에도 절망하거나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망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사단은 안 된다고, 할 수 없다고, 포기하라고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12명의 정탐꾼들을 가나안땅으로 보냈습니다. 각 지파에서 신체건강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40일 동안 정탐하고 돌아와 백성들에게 보고할 때 차이가 생겼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희망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아낙자손들이 강대하여 그들과 비교하면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하며 마귀가 주는 생각에 놀아났습니다.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절망하고 낙심했습니다. 그 보고를 들은 백성들까지 함께 절망했습니다. 불신앙은 절망을 가져옵니다. 어둠의 뿌리인 불신앙과 절망의 근원은 결국 사단입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 40:1-2)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 있을지라도 소망을 가지면 하나님은 구원해주십니다. 요셉과 예레미야와 다니엘이 그렇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죽음의 구덩이에 빠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서 구덩이 빠졌다가 미디안 장사꾼에게 팔렸습니다.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있는 진흙구덩이에 던져졌고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다 살아났습니다.

(예화)

저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추석 다음날에 처가 식구들과 함께 영월부근에 갔습니다. 다슬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모시고 갔습니다. 차를 몰고 강가로 갔습니다. 모래가 있었고 자갈밭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자동차 바퀴자국이 있어 자동차를 몰고 들어갔습니다. 모래밭을 가다가 차가 헛바퀴를 돌기 시작했습니다. 엑셀을 밟자 땅만 파이고 바퀴는 더 깊이 모래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근처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삽을 빌려와 모래를 파고 자갈을 바퀴 밑에 깔았습니다. 후진했다가 앞으로 가보았지만 점점 바퀴는 모래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당황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불안했습니다. 뒤에서 차를 밀어보았지만 바퀴는 점점 빠져갈 뿐이었습니다.

처제가 보험회사에 연락하여 레커차(견인차)를 불러보라고 했습니다. 보험회사에 연락하니 차를 보내준다고 하면서 20~30분 기다리라 했습니다. 안심이 되고 소망이 생겼습니다. 기다렸더니 20분 정도 후에 견인차가 왔습니다. 제 차 앞에 대더니 밧줄을 걸어 앞에서 끌었습니다. 모래에 박혀 있던 차가 빠져나왔습니다. 그 때 견인차가 오지 않았다면 지금도 모래밭에서 삽질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하나님으로부터 소망이 나오기 때문에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라라’는 말은 ‘기다리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기다림은 믿음과 소망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기다리면 반드시 하나님이 소망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가정도 개인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면서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우리의 걸음을 견고하게 하시는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나의 소망 하나님은

2. 소망의 대상입니다.(6절)

6절,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세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다윗은 심하게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들에게 쫓겨 왕궁을 내주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비참했을 것입니다. 죽고 싶었을 것입니다. 마음이 요동쳤습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볼 때 낙심이 되었습니다. 다시 요단강을 건너 예루살렘 왕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환경에 따라 흔들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말에 따라 흔들릴 수 있습니다. 시간에 따라 흔들릴 수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연탄가스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 정신은 말짱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천정이 빙빙 돌고 어지러웠습니다.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다가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내 몸이 흔들리자 세상이 흔들거렸습니다. 소망을 잃으면 내일이 흔들립니다. 소망은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세상이 흔들려도 내가 중심을 잡으면 평안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사 26:3) 하나님께 대한 소망의 심지를 견고히 하면 하나님이 평강하도록 지키십니다. 소망의 심지를 하나님께 두면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도 요동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습니다. 평정심을 잃지 않습니다. 소망의 대상이 무엇이냐가 중요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대상이어야 합니다.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대상이어야 합니다. 약속을 지키는 신실한 대상이어야 합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세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소망의 대상이 오직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처럼 오직 하나님만 소망을 삼으면 이런 담대함이 생깁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흔들리지 않습니다. 비록 왕궁을 쫓겨나서 급히 요단강을 건너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어도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삼하 22:29) 하나님이 등불 되셔서 어둠을 밝히실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소망의 등불이었습니다. 어떤 어둠과 절망이 몰려와도 하나님이 빛으로 어둠을 밝히실 것을 믿었습니다. 또한 의인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드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다윗은 소망의 하나님께 인생의 무거운 짐을 맡겼습니다. 하나님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주실 것을 믿고 소망했습니다.

시편 27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 27:1-3)

악인들과 원수 대적들이 살을 먹으려고 덤벼들었지만 그들이 오히려 실족하여 넘어졌습니다. 군대가 대적하여 진을 치고 전쟁이 일어나 다윗을 치려할지라도 여전히 태연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빛이요 구원이시며 생명의 능력이심을 믿고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소망의 대상이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누구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소망의 대상이 중요합니다. 누구를 혹은 무엇을 소망의 대상으로 삼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물질에 소망을 두는 사람은 물질이 사라지면 소망이 끊겨 삶의 의지를 상실합니다. 명예와 권력에 소망을 두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명예와 권력이 끊어지면 삶의 동력을 상실합니다. 사람에게 소망을 두는 것도 위험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시 146:3-4)

사도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를 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배에 타고 있던 선장과 선주를 비롯하여 로마 군인들과 모든 사람들이 배의 기구를 버리고 구원의 여망마저 사라졌을 때 바울만은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 반드시 살게 된다고 확신 있게 말했습니다. 바울의 소망의 대상이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전날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로마의 가이사 앞에 서게 하겠다고 하신 말씀을 믿고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배에 타고 있던 276명 모두가 흔들리는 가운데 유일하게 바울만은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희망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소망의 대상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소망의 대상이 하나님일 때 환경과 사람에 따라 흔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흔들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평안과 용기를 줄 수 있습니다.

(예화) 두 장례식의 차이

하루에 두 장례식장을 찾아 문상한 적이 있습니다. 성도님의 장례식과 중학교 친구의 장례식이었습니다. 소천하신 성도님은 일생을 사시면서 3남1녀의 자녀들에게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고 떠나셨습니다. 성도님의 장례식장에는 찬송이 울려 퍼지고 조문객들도 단정한 모습인데 반하여 중학교 친구의 장례식장은 친구와 유족들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기에 문상객들도 대부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술병이 즐비하고 담배연기가 자욱한 장례식장 분위기가 앞의 장례식과 많은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같은 세상에 와서 같은 시대를 살다가 같은 날에 죽음을 맞았지만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많이 달랐습니다.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소망하는 대상의 차이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소망의 대상은 무엇입니까? 잠깐 보이는 것에 소망을 두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낡아지는 겉사람이 아니라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땅의 것이 아닌 위의 것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윗처럼 오직 하나님만을 반석, 구원, 요세 삼고 어떤 절망적인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의 소망 하나님은

3. 소망의 능력입니다.(7~8절)

7~8절,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소망의 근원과 소망의 대상이 능력이 없다면 소망은 성취되지 않을 것입니다. 소망이 이루어지려면 소망의 대상이 반드시 그 소망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으며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구원’은 무수한 원수들의 지속적이고도 파괴적인 공격상황에 있는 다윗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위기에서 탈출하고 승리와 번영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소망했습니다.

‘영광’은 다윗이 압살롬으로부터 탈취당한 왕권을 회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영광을 찾게 하십니다. 실추되었던 명예를 회복케 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교회와 개인의 명예와 영광을 다시 찾게 하십니다. 낙심과 절망 속에 잃었던 상처도 아물게 하시고 더 큰 영광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영광을 회복하게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소망했습니다.

또한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지키심의 능력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위험 속에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시편 23편 4-5절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나님이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전하게 지켜주실 뿐만 아니라 원수가 보는 앞에서 잔치상을 차려주시고 승리의 잔을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무릎 꿇어 절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하만이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그의 동족인 유다인 모두를 죽이려는 악한 흉계를 꾸며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모르드개를 죽이려던 장대에 하만을 달게 하시고 모르드개를 높여 주셨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형들의 시기로 인해 미디안 장사꾼에게 팔려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후에는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히는 최악의 자리로 곤두박질치지만 하나님은 요셉이 어디에 있던지 그를 지켜주셨으며 바로의 꿈을 해석하여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도록 높여주셨습니다.

 

딸이 어릴 때는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길을 가는 것을 좋아하더니 어느 때가 되자 자기를 잡지 말라고 손을 뿌리칩니다. 혼자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혼자 가다가 고양이가 오거나 개가 짖으면 얼른 뛰어와 손을 잡고 안아달라고 합니다. 아빠의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아빠의 팔에 안기면 자기가 무서워하는 고양이나 개가 있어도 그 앞을 지나갈 수 있습니다. 아빠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 능력으로는 넘을 수 없고 이길 수 없는 문제가 생길 때 하나님을 바라보면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사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곤비하지 않고 피곤하지 않는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는 못해도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면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말했듯이 하나님이 능력과 힘을 주시면 할 수 있습니다. 자기 힘만 생각하며 못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계속 못합니다. 못해도 하나님이 힘주시면 할 수 있다고 믿고 소망하는 사람들은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화)

3년 전 칠레에서 갱도가 무너져 33명의 광부들이 지하 700m속에 매몰되었다가 69일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야기가 세계인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들이 살 수 있었던 것은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지상에서 굴착기를 동원해 매몰지점에 있는 그들의 생존을 확인하고 구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우르수아와 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지만 희망이 없었다면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 연결과 희망이 그들을 살렸습니다. 그렇다면 살면서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것이 살아나는 길입니다.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희망을 품을 수 없고 결국 죽음의 길로 가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희망이 없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희망이 지하 700m속에 있던 그들을 살렸습니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과의 연결고리가 그들에게 희망을 갖게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되어도 기도로 연결되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과만 연결되어 있으면 어떤 절망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나의 소망 하나님은 소망의 능력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수 천 미터의 암흑 속에 홀로 남겨져도 구원과 영광, 반석과 피난처가 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구원과 영광, 힘의 반석과 피난처로 믿고 소망했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두 가지 교훈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같은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소망하여 승리의 삶을 살았던 다윗의 간증이 담겨있습니다.

8절입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첫째는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시시로’는 ‘항상’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항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확신하고 담대히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도움이 필요할 때는 의지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평안할 때나 고난 중에도 항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둘째는 마음을 토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사정을 있는 그대로 내어놓으라는 뜻입니다. 슬픈 일, 괴로운 일, 근심되고 걱정되는 일, 부끄러운 일, 악한 일 등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쏟아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망하며 사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소망할 때 하나님은 피난처가 되시고 구원하시며 영광에 이르도록 하십니다.

나의 소망 하나님은 소망의 근원이 되십니다. 나의 소망 하나님은 소망의 대상이 되십니다. 나의 소망 하나님은 소망의 능력이 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소망삼고 사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원과 영광과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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