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일 4:7-21
제목: 온전한 사랑
찬송: 604장
목표: 온전한 사랑을 누리며 살게 한다.
사랑이란 단어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중에 하나입니다. 유행가 가사도 사랑을 많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많이 원하고 노래하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온전한 사랑이 있고 불완전한 사랑이 있고 거짓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에 대하여 성경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본문은 온전한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1. 주는 사랑(9-10)
9-10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온전한 사랑은 주는 사랑입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죄인들을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을 주는 사랑이 온전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자식을 위한 부모님의 사랑도 주는 사랑입니다.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며 주는 사랑입니다. 연인의 사랑도 주는 사랑이 될 때 온전할 수 있습니다. 받으려 하면 서운함이 생기고 사랑에 금이 생깁니다. 남편에게 사랑을 주었는데 돌아오는 사랑이 없을 때 미움이 생깁니다. 자식에게 헌신하며 사랑을 주었지만 돌아오지 않을 때 서운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주신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믿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한 주는 사랑입니다.
온전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집니다. 받아서 사랑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이미 온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사랑은 어렵습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랑은 주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이번 명절에도 가족들이 모일 것입니다. 음식 장만하면서 힘이 버겁고 짜증이 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임을 생각하고 마음을 주고 음식을 주시기 바랍니다.
2. 담대한 사랑(17-18)
17-18절,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심판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미래에 닥칠 환난과 고난으로 인한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간직한 사람은 심판 때에 죄인들이 갖게 되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영적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내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이 내부에 있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자신의 생각과 마음 밖으로 던져 제거한다는 뜻입니다. 참된 사랑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없고 오히려 그것을 담대하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사랑할 때 담대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생명까지 버립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두려움을 이기셨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습니다. 순교자들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면 자녀를 위해 생명까지 던집니다. 조국을 사랑하여 국가를 위해 생명을 버립니다.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 생명을 희생할 수 있는 숭고한 사랑은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담대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동족을 사랑했습니다.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했습니다.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한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롬 9:3절에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하였습니다.
살전 2:8절, “우리가 이 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는 담대한 사랑입니다.
3. 진실한 사랑(20-21)
20-21절,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온전한 사랑은 진실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웃과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온전한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말과 혀로만이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이 온전한 사랑입니다.(요일 3:18)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 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성경은 단언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의 여부는 형제 사랑의 여부로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랑이 온전한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일치하는 진실한 사랑이 온전한 사랑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온전한 사랑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듯이 주는 사랑입니다. 두려움을 내쫓는 담대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형제를 사랑하는 진실한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