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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의 '보험王' 왕관을 쓴… '보험업계 전설' 예영숙씨

하마사 2013. 9. 23. 09:42

"난 돈 냄새 맡을 줄 알아… 있는 사람은 절대 있는 척 안 하죠"
부자는 쉽게 지갑을 열지 않고 결코 손해보지 않으려 해
굉장히 알뜰하고 정확해요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된 것
고객은 언제나 더 나은 조건 이익이 더 많은 쪽으로 움직여
고객을 잡았다고 기뻐할 때 고객은 이미 떠날 준비를 한다


	열한 번째 보험왕 시상식 장면.
열한 번째 보험왕 시상식 장면.

 

 

 

 

 

 

 

 

 

 

 

예영숙(55)씨는 여왕(女王)처럼 나타나지 않을까, 이런 상상으로 기다렸는데, 외모로는 특별한 표시가 없었다. 약간 진한 화장과 머리 손질을 한 모습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보험 영업을 하려면 이렇게 인상이 좋아야 하는군요'라고 말한다. 거울 앞에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고, 턱을 당기면서 말하는 연습을 하는 등 숱한 노력을 해왔다. 이 일을 하면서 그전에는 못 듣던 '인상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영업의 성패에서 첫인상은 중요하다."

그 말을 듣고서 다시 쳐다보니 정말 복스러운 인상 같았다. 그녀는 10년 연속(2000~2009년) 삼성생명 보험왕이 됐다. 장기집권의 부담 때문에 3년간 다른 자리로 옮긴 뒤 다시 현장에 복귀한 그녀는 또 '보험왕(2013)'에 등극했다. 이를 기념해 '열한 번째 왕관'이라는 책을 냈다.

―보험 영업을 하려면 얼굴이 두꺼워야 한다고 들었는데.

"처음 할 때 내가 순진하게 보였는지, '보험은 얼굴에 철판 깔고 하는 일이다. 얼른 그쪽에서 발을 빼고 나와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못살아도 우리 집사람에게는 이런 일(보험 영업) 안 시킨다'며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내가 살림이 어려웠던 것도 아니었고, 정말 보험 영업을 할 줄은 몰랐다. 그전만 해도 나는 초등학생들에게 글짓기를 가르쳤다. 글쓰기를 좋아해 동인(同人) 활동도 했다."

그녀는 1993년 대구의 삼성생명 지점에서 계약직으로 출발했다. 어느 날 남편이 내놓은 보험증서의 약관(約款)이 이해되지 않아 보험사를 찾아간 게 계기였다. 거기서 신입사원을 위한 보험 교육 안내 포스터를 보고 '한번 배워보자'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한국전력에 근무하는 남편이 석 달간 외국 출장을 가서 마침 시간 여유도 있었다. 적은 돈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경제적인 대안을 마련해준다는 설명이 스펀지처럼 쫙 빨려 들어왔다. 보험은 꼭 필요한 제도라는 확신이 섰고, 이 사실을 나 혼자만 아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보험회사가 영업적으로 하는 말일 테고.

"정말 진심으로 말한다. 내가 보험 설명을 듣고 감동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고마워하지 않을까. 이걸 알리는 게 내 운명처럼 여겨졌다."

―남편은 뭐라고 했나?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와서는 '애들이 초등학교 1·3학년인데 이게 무슨 짓인가'하고 난리가 났다. 시댁에서도 야단을 쳤다. 하지만 이미 열정과 사명감으로 불붙었으니 아무도 못 말렸다."

―실적은 어땠나?

"한 달에 3~5건을 계약해야 최소 유지가 됐다. 남편 회사 사람들을 위주로 했는데 여섯 달쯤 지나자 한계가 왔다. 바깥으로 다니며 명함을 돌렸지만 어느 한 사람 반겨주지 않았다. 영업소에는 개인별 실적을 막대그래프로 붙여놓았다. 목덜미를 꽉 조르는 것 같았다. 그 시절 한 중소업체 사장을 찾아가니 '보험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왔다갔다 하는 당신이 한심하다. 다시는 오지 마라. 난 죽어도 안 든다'고 모질게 말했다.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것 같았다. 하직 인사를 하듯이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보험을 필수품으로 여기는 날이 올 것이다. 그동안 감사했다'고 말하고 나오니 눈물이 막 쏟아졌다. 사방이 온통 회색빛이었다."


	예영숙씨는“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물이 그냥 빠져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콩나물은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예영숙씨는“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물이 그냥 빠져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콩나물은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회색빛이라(웃음)…, 그쯤 해서 그만두지 않았나?

"보험 교육을 같이 받았던 동료가 30명이었다. 나 빼고는 이미 다 그만뒀을 때였다. 이게 내 한계구나, 나보다 먼저 포기한 사람들이 나보다 못나서 그런 것은 아니었구나. 좌절감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웃으려고 해도 얼굴 근육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 정체성을 찾아야 했다. 서점에서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을 샀다."

―하필 왜 '인생론'에 관한 책을 골랐나?

"영업을 어떻게 하고, 판매를 어떻게 하느냐는 관심이 없었다. 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주말 동안 틀어박혀서 책을 읽었다. 월요일이 되니까 정신이 맑아지면서 '보험은 사회제도로는 반드시 필요한데, 고객들이 두려워 내가 포기하면 누가 대신할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무엇이 달라졌나?

"목소리가 나오고 표정이 되살아났다. 일 년은 채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석 달쯤 지나서 어느 날, '다시는 찾아오지 마라'고 면박을 줬던 그 중소업체 사장이 나를 찾았다. '이제 초짜 티는 면했군. 장인어른 돌아가시고 마음이 바뀌었다. 내 부부 연금을 하나 들어야겠다. 길 건너 은행 지점장도 만나봐라. 내가 말해뒀다'고 하는 것이다. 한 번에 큰 건(件)을 3개 해냈다. 그날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렸다."

―운 좋은 하루였을 뿐, 다른 세상이 열렸다는 표현은 좀 과장된 것 같다.

"나는 콩나물시루에 물을 줬다. 물이 다 빠져나갔으니 헛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콩나물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영업은 고객의 거절에서 시작된다는 걸 알았다. 거절도 영업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걸 깨달으니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우리는 상대로부터 거절당할 것이란 두려움 때문에 말을 못 건다. 그런 두려움이 없으니 자신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다음 날부터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열정이 넘쳤다."

―내 열정이 넘친다고 해서 고객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 열정이 넘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내가 열정적으로 보험을 얘기하면 고객은 관심을 표시한다. 내 열정이 전파되는 것이다. 나는 아침이 기다려졌다. 내가 설득 못 할 사람은 없겠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길 가는 사람에게 '잠깐만요'하고 세워서 계약 하나를 따겠더라."

―고객의 거절에도 심적으로 흔들리지 않았고?

"과거에는 '내 인격 대접을 안 해주는구나' 하고 부끄러웠는데, 이때부터는 '이분은 아직 보험에 대해 이해를 못했거나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구나. 내가 이분을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쪽으로 바뀌게 됐다."

―당신 말을 들으면 영업에도 성인(聖人)의 도(道)가 있는 것 같다.

"그런 깨달음이 없으면 10년 연속 챔피언이 될 수가 없다. 억지로 하면 힘들고 부담이 심해질 뿐이다. 어떤 성취이든 시행착오와 자기 단련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설령 그러해도 한두 번이 아니고 10년 연속 '보험왕'을 달성한다는 것은….

"5년 연속 챔피언 타이틀을 따자 사내(社內)에서 '직원들의 도전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상(賞)을 만들었는데 한 사람이 저렇게 독식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이 나왔다. 어느 날 사장님이 이 문제를 꺼냈을 때, 나는 '회사가 정하는 대로 따르겠다'고만 말했다. 임원회의에서 논의가 된 뒤 사장님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의 프로에게 그만하라고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내가 마치 후배들에게 1등의 기회를 빼앗는 것 같아 마음이 짓눌려 있었던 것이다."

―능력이 너무 탁월해도 눈치 보고 문제가 될 수가 있으니, 세상이 공평한 건가?

"7연패를 달성했을 때도 다시 눈치를 봤다. 그렇게 해서 10연패까지 이루니까, 하고 싶어도 계속 하겠다는 말을 차마 못 하겠더라. 내 입으로 '더 보람있는 다른 역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회사에서는 '명예본부장'으로 임명한 뒤 운전사가 딸린 차를 내줬다. 나는 퇴직연금 법인 영업을 맡았다. 거기서도 실적은 좋았지만 그전 같은 성취감을 못 느꼈다. 그래서 3년 만에 다시 보험 현장으로 돌아온 것이다(돌아온 그해에 다시 '보험왕'이 됐다)."


	[최보식이 만난 사람] 11번의 '보험王' 왕관을 쓴… '보험업계 전설' 예영숙씨
―10년 연속 보험왕이 된 뒤'고객은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한다'는 책을 냈다. '고객'의 속성은 뭔가?

"더 나은 조건, 언제나 이익이 더 많은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파는 사람이 고객을 잡았다고 기뻐할 때 고객은 그 순간부터 떠날 준비를 한다."

―이미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고객을 어떻게 잡을 수 있나?

"떠나려는 애인을 붙잡는 노력을 하듯이 해야 한다. 내 술버릇이 문제인가, 배려심이 약한가,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는가, 고객의 요구에 따라 개선해줘야 한다. 특히 VIP 고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쪽으로 안테나를 세워야 한다. 지금의 관계를 지속하는 편이 훨씬 더 이익이 된다는 걸 확신시켜줘야 한다."

―당신의 개인 고객은 얼마나 되나?

"내 고객은 모두 3000명쯤 된다(그녀에게는 단독 사무실과 세 명의 비서가 있다). 이 중 600여명이 월 보험료 300만원 이상인 VIP 고객이다. 이들은 신경을 안 써주면 서운해한다. 일주일에 한 번 골프를 나가고, 주말에는 결혼식장을 돌아야 한다."

―이런 부자 고객들의 공통점은?

"부동산을 6~7개쯤 갖고 있고,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다. 계산을 끝까지 정확하게 해서 손해를 안 보려고 한다. 굉장히 알뜰하다. 우리는 종이 한 면만 쓰지만 이들은 이면지를 다 쓴다. 부자는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되는 것 같다. 없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돈을 헤프게 쓴다."

―당신은 돈 냄새를 맡나?

"돈 냄새를 맡을 줄 알지. 딱 보고서 잠깐 말을 붙여보면 안다. 없는 사람이나 있는 척하지, 있는 사람은 절대 있는 척 안 한다. 내가 이들이 갖고 있는 재산을 찾아내 어떤 상품에 계약하라고 한다."

―내게도 그런 냄새가 좀 안 나나?

"돈을 모으려면 타협을 해야 한다. 언론인은 궁하지는 않지만, 중상층보다 약간 밑으로 본다. 뭐, 언론인이야 돈 없어도 살 수 있지 않나."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보험업계에서 일한 지 20년이 됐다. 그동안 수입 보험료만 4000억원이 넘었을 것이다. 지난 한 해만 255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은행 지점 몇 개 몫을 한 셈이다. 지금껏 연봉이 10억원은 계속 넘었다."

―돈 많이 벌고 싶어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사람의 재능은 조금씩 다 다른 것 같다. 자기가 남보다 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택해라. 그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즐기면 최고가 되지 않을까. 어떤 사람들은 너무 빨리 포기해서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조선일보, 2013/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