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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째 국민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 맡아온 송해

하마사 2013. 8. 7. 14:18

[롱런의 비결] 25년째 국민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 맡아온 송해

구봉서·이주일에 밀려 조연, 본업에선 별로 안 팔리던 사람
전국노래자랑 터줏대감으로 출연자 눈높이에 맞춘 진행… '서민 무대'의 名手로 활약
내일모레가 아흔인데도 노래방 가면 30~40곡 거뜬… 링거 투혼에 쉬라고하면 질색

①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②개인의 실력과 노력으로 ③20년 이상 버틴 특A급 현역이 '롱런(Long Run)'의 주인공이다. 45년 드라마 쓴 김수현(70), 31년 야구 감독 한 김성근(71), 39년 만화 그린 허영만(66)에 이어 이번엔 송해(88) 차례다. 그를 수십 년 지켜본 지기(知己)들에게 물었다. 남들은 반짝하고 사라지는데 왜 송해는 나이 먹을수록 펄펄 날아다닐까?

'롱런(Long Run)' 하면 송해(88)다. 그러나 그는 환갑 넘도록 'B급'이었다. 본업인 코미디에서 젊었을 땐 구봉서(87), 나이 먹어선 이주일(1940~2002)에게 밀렸다. 배삼룡(1926~2010)·서영춘(1928~1986)이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할 때 송해는 조연이었다. "바지런하고 소주를 좋아했어요. 하지만 본업에선 별로 안 팔리는 사람이었지요."(유신박 1980년 KBS 예능국장·82)

80년대 초 코미디언이 나갈 만한 KBS 프로그램은 '젊음의 행진'과 '유머일번지' 딱 두 개였다. '젊음의 행진'은 송해를 안 불렀다. "남는 게 '유머일번지' 하나니까 많이 해봤자 일주일에 한 코너였죠."(인운섭 1981년 KBS 예능국장·78)

그래픽=박상훈 기자. 송해 일러스트와 숫자로 본 송해 기록표
'전국노래자랑'도 B급 프로그램이었다. 종편도 민방도 없을 때라 지상파 프로는 어지간하면 시청률이 두자릿수 나왔다. '전국노래자랑'은 5%를 턱걸이했다. 광복절·제헌절 기념식 중계방송 수준이었다.

담당 PD가 새로 왔다. 1987년 김형곤(1960~2006)과 함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를 만든 안인기(66)였다. 신랄한 풍자에 시청자가 박장대소했다. "그해 여러 상을 받았어요. 근데 상 타고 나니 '가서 노래자랑 만들라'는 발령이 나데요."

그 발령이 '롱런 신화'의 출발점이 될 줄 그땐 아무도 몰랐다. 안인기는 오자마자 사회자부터 바꿨다.

①가르치려 들지 마라

'전국노래자랑'은 1980~87년까지 7년간 4명이 사회를 봤다. 송해 바로 앞이 아나운서 최선규(52)였다. 그때 나이 스물일곱, 키 182㎝. 요즘 청담동에 세워놔도 안 꿀릴 서울 출신 대졸 공채 아나운서였다.

안인기가 최선규를 내리고 송해를 세웠다. 그때 나이 예순셋, 키 162㎝. 6·25 때 해주에서 군함 타고 피란 와, 악극단에서 잔뼈가 굵었다. 노안에 탁성이라 젊어서부터 '할배' 역을 수없이 했다.

당시 예능국 간부들은 "지방 출장이 잦으니 시간이 넉넉한 사람을 고른 것 같다"고 했다. 안인기가 "천만의 말씀"이라고 했다. "상대방이 잘난 척하며 가르치려 들 때 좋아하는 사람 봤어요? 자기보다 어수룩한 사람이 자기 희로애락을 있는 그대로 들어줄 때 좋아하지요." 그런 사람이 송해였다.

②기본기가 탄탄하면 기회가 온다

안인기는 진작부터 송해를 눈여겨봤다. "그 양반이 '이나카(いなか) 쇼'의 명수였거든요."

'이나카'는 일본말로 시골이란 뜻이다. 지방 무대를 돌며 왁자지껄하게 벌이는 쇼를 속칭 '이나카 쇼'라 했다. 송해가 TV에선 구봉서·배삼룡·서영춘에게 뒤졌다. 무대에서 서민들을 상대할 땐 발군이었다.

임하룡(61)이 말했다. "송해 선생은 남녀노소를 폭넓게 포괄해요. 거기에 연세와 건강이 플러스 되니까 폭발력이 생겼죠." 2011~2013년 30차례 '송해 빅쇼'에 출연한 엄용수(60)가 "기본기가 탄탄해서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③상대의 리듬에 맞춰라

2002년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서 103세 김화유 할머니가 81세 맏딸과 함께 무대에 섰다. 둘이 합쳐 두 세기(世紀)를 살았지만 노래자랑 무대는 처음이었다. 모녀가 반주를 놓치지 않도록 송해가 구수한 목소리로 '대전 블루스'를 함께 불렀다. 딩동댕 소리에 주민들이 플래카드를 흔들며 열광했다. '김화유 할머니 파이팅', '인기상은 김화유 할머니에게.'

엄용수가 "그런 여유와 배려야말로 다른 방송인이 흉내 못 내는 송해 선생만의 장기"라고 했다.송해는 황해도 해주음악학교를 나와 14세 때부터 도립극장 무대에 섰다. 6·25 때 국군 통신병 한 것만 빼면 다른 직업을 가진 적이 없다. 노래·연기·사회가 다 되고 애드립이 발군이다.

④공감(共感)이 위로다

무대에서 특산물을 맛볼 때도 송해는 남다르다. "어디 한번 맛 좀 볼까?" 하고 웃고, "아이코, 이거 힘이 불끈 솟네" 하고 눙친다. 한 박자씩 쉬어가며 여유를 준다. 출연자 눈높이에 맞추니 시청자가 편해진다.

젊은 여성이 올라오면 총각이 된다. 어린애가 나오면 할아버지가 된다. 소방관이 나오면 소방서장이 된다. 송해는 얼굴과 목소리가 천 개다. 출연자가 "사업하다 망했다"고 하면 송해가 "저런, 어쩌다 망했는데?"하고 말을 이어간다. 그런 공감(共感)에 위로받은 출연자가 세상 시름 잊고 흥겹게 논다.

⑤'기억' 말고 '추억'을 심어라

'전국노래자랑'은 33년간 3만명이 출연하고 1000만명이 관람했다. 한 회 한 회가 그 동네에선 잊히지 않는 추억이다. 김화유 할머니는 2007년 별세했다. 그날 무대는 오미리 32가구 주민들에게 생생히 살아있다.

"노래자랑을 여러 군디서 했지만 최고령 출연자는 여그서 나왔어요." (토지면 주민센터 직원) "넘들이 다 '좋겄다'고 했어요. 어머니 건강하시다고요."(아들 왕학봉·75) "어르신들이 더운 날 팔각정에서 지금도 얘기하세요. '그날 참 재밌었다'고."(식당 주인 최명숙·40)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송해에게 배우는 롱런비결 그래픽
'짠짠짠 짜아잔 짜안―짠!' 이렇게 시작되는 '전국노래자랑'을 5년 전 이경규(53)가 무심코 봤다. 우연히 튼 채널인데 저도 모르게 확 빨려들었다. 꼬마가 할아버지에게 찡한 영상편지를 썼다.

"그때 속으로 '아, 지금 저 집은 할아버지·할머니부터 온 식구가 TV를 보고 또 보겠구나' 생각했어요. 다른 프로그램은 출연자가 '목적'을 가지고 나와요. 대학가요제 입상해서 가수 되려고, 오디션 통과해서 데뷔하려고…. '전국노래자랑'은 바라는 거 없이 나와요." 그때 영화 만들 결심을 했다.

⑥혼자서는 롱런 못한다

'전국노래자랑' 음악을 책임지는 사람이 신재동(54) 악단장이다. 전임자 김인협(1941~2012) 악단장 때부터 21년 함께했다. 1930년대 가요부터 최신 랩까지 다 소화한다."송해 선생님뿐 아니라 스태프도 수십년 함께한 고참이에요. 다같이 롱런한 거죠. 세트 담당까지 80명쯤 움직이는데 마흔 넘은 막둥이가 커피 탑니다."

23년 일한 엔지니어 김인기(46)가 "급할 땐 누가 따로 말 안 해도 음향팀이 보면대에서 악보를 척척 넘겨준다"고 했다. 22년 일한 작가 정한욱(49)이 "저희한테 '전국노래자랑'은 그냥 프로그램이 아니라 생활 겸 인생"이라고 했다.

⑦말술[斗酒]의 힘

이들을 하나로 엮는 끈끈한 힘이 송해의 '말술'이다. 내일모레가 아흔인데 지금도 노래방 가면 30~40곡을 연달아 부른다. 기분 나면 후배들을 이끌고 새벽 5시까지 소주병을 비운다. 신재동이 "선생님은 누가 잔 받아서 몰래 따라 버리는 걸 놓치는 법이 없다"고 했다. 새벽녘에 스태프가 여관방으로 도망가 장롱·욕조에 숨은 적이 있다. 송해가 프런트에서 비상키를 가져다 방마다 문을 땄다. "인기야, 어딨니? 재동아, 일루 나와라."

이튿날 무대에선 '언제 마셨나' 싶게 팔팔하다. 신재동이 "일에 관한 한 그렇게 철저한 분을 못 봤다"고 했다. 초대가수가 지각하거나 악단 반주가 틀리면 당장 송해 입에서 다양한 가축 이름이 튀어나온다. 신재동이 말했다. "저도 쉰 넘었지만 섭섭하지 않아요. 틀린 말씀 안 하고 같은 일로 두 번 화내지 않거든요."김인기가 말했다. "선생님은 누구네 집 몇째가 무슨 병을 앓는지, 어느 집에 어떤 우환이 있는지 다 꿰고 있어요."

정한욱이 "선생님은 링거 맞으면서도 '쉬시라'면 질색한다"고 했다. "리허설하러 나오는 시간도 계속 빨라져요. 오전 10시에 시작하면 예전엔 9시에 나오셨어요. 요샌 8시에 나오십니다."

 

 

-조선일보, 201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