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

하마사 2013. 3. 30. 10:27

본문: 눅 23:1~56

제목: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

목표: 십자가를 생각하며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한다.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성금요일입니다.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6시간 동안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흘리시면서 일곱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을 가상칠언이라고 합니다. 가상칠언을 묵상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눅 23:34)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처럼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며 용서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라고 말씀 하셨으며, 일흔 번씩 일곱 번 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마 18:21-22) 또한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눅 6:35)

예수님은 평소에 이런 사랑을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면서 실천하셨습니다. 자기를 모욕하고 죽이는 무리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불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골 3:13절은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을 생각하면서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불만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들과만 살아갈 수 있습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운 사람도 있습니다. 가족들 중에도 있습니다. 공동체 일원들 중에도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랑스런 사람이 있는가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분쟁을 통해 미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 심한 모욕과 욕을 먹어 정말 용서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 저녁에 용서의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 힘과 의지로는 용서가 되지 않지만 주님의 마음을 품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하신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신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용서하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 280장

 

2.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두 명의 행악자가 함께 달렸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을 비방했지만 다른 한 사람은 그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꾸짖었습니다.

그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낙원을 약속하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위에서까지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소망을 주셨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은 정해진 때가 없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하고 행악자가 회개하지 않았다면 낙원을 약속받지 못했습니다. 비록 죽음의 직전, 세상에서의 호흡이 얼마 남지 않는 마지막 시각이라 할지라도, 진정으로 회개한다면 그 회개는 용납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회개에 있어서 너무 늦은 때는 없습니다. 어떤 죄라도 생각날 때 회개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고 처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바로 십자가에 함께 달렸던 강도였다는 사실은 복음의 은혜를 증거하는 사건입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포도원주인과 품꾼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포도원주인이 포도원일꾼을 구할 때 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 심지어 해가 지기 직전인 오후 5시에 장터에 나가서 놀고 있는 일꾼을 부르는 이야기입니다. 주인은 품꾼들에게 포도원에 들어온 시간에 상관없이 동일한 품삯을 주었습니다. 이 비유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보기에 늦은 때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구원은 자신의 노력과 행함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처럼 큰 죄를 짓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일찍 부르심을 받은 분들도 있고 늦게 부르심을 받은 분들도 있습니다. 부름 받은 시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또한 회개하면 어떤 죄라도 용서해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회개하고 용서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또한 주님처럼 이웃들에게 소망을 주며 살아야 합니다. 절망과 좌절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천국에 대한 소망을 전하며 살아야 합니다.

(찬송)149장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 19:26-27)

(요 19:26-27)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인간 사이에 있어야 할 돌봄과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네 명의 여인이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울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하시면서 어머니를 부탁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겪은 여인입니다.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하여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30년 동안 아들을 돌보며 보살펴준 어머니셨습니다. 이제 아들을 먼저 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은 한없는 슬픔으로 잠겨있었을 것입니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어머님의 마음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할 수 없습니다.

이런 어머니를 십자가 위에서 내려다보시는 아들 예수님의 마음은 찢어지는 고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지만 육신적으로는 어머니의 아들이었습니다. 불쌍한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신 것은 아들의 마지막 배려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탁을 받은 요한은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시면서 극진하게 섬겼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에게 효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님께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와 이웃의 어르신들을 공경하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찬송) 579장, 456장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마 27:46) 『제 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십자가에서 고통당하고 버림받으신 예수님의 거룩한 절규입니다. 시편 22:1절에 이미 예언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말할 수 없는 고뇌에서 비롯된 절규였습니다. 인간의 죄를 홀로 지시고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시는 단절의 고통을 호소하시는 모습입니다. 이런 절규를 통해서 우리는 주님도 우리와 같은 육신의 몸을 입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시면류관에 머리를 찔리고 십자가위에서 두 손과 두 발이 못 박히는 육체적 고난과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당하는 정신적 고통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단절되는 영적 고난까지 당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한 영적인 고통스러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버림을 당하신 것입니다. 마치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 제사장이 흠 없는 어린양을 번제단에 불태워 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이 버림당하심으로 우리는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에 저주를 받으심으로 율법의 저주와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억울한 일을 당하셨습니까? 주님보다 억울하십니까? 울분을 참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주님처럼 하나님께 하소연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누구도 들어줄 수 없는 우리의 고통과 억울함의 절규를 하나님은 오늘도 듣고 계십니다. 이 시간 어떤 아픔과 상처라도 하나님께 부르짖어 위로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찬송) 150장

 

5. 내가 목마르다.(요 19:28)

(요 19: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정오경의 팔레스틴 지역은 보통 사람도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서있기 힘들만큼 더운 날씨입니다. 하물며 십자가에 못 박혀서 고통을 당하고 계시는 예수님에게는 극심한 탈수현상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실제로 목이 타서 하신 말씀입니다.

또한 주님이 "내가 목마르다" 하심은 더 깊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의 갈증보다도 죄 아래 있는 영혼들을 향하신 사랑의 갈증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셨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사랑의 갈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어디서 무슨 물을 마셔도 그 심한 갈증을 해소할 길이 없지만 주님이 주시는 물은 우리의 갈증을 해소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수가동네의 여인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사랑과 관심에 목말라 있습니까?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를 바라며 목말라 있습니까? 경제적인 문제나 자녀들의 문제로 목말라 있습니까? 주님은 모든 목마름에 해갈함을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친히 인생의 목마름을 경험하셨기에 우리의 애타는 소원을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응답하십니다.

또한 주님처럼 영적인 목마름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영적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끝까지 애타하시는 주님처럼 오늘도 사랑을 목말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으로 영원한 생수를 공급하는 사랑의 전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 439장

 

6. 다 이루었다.(요 19:30)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거룩한 희생으로 모든 죄를 속하셨다는 하나님 어린 양의 승리의 외침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가죽 채찍으로 서른아홉 대의 매를 맞으셨습니다. 가죽 채찍 끝에는 낚시와 같은 쇠고리가 달려 있어서 가죽 채찍이 살에 닿을 때마다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터져 엉켜 붙었습니다. 가시관을 쓰신 머리와 대못에 박힌 양손과 양발에서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무지한 로마군병의 창에 옆구리를 찔리셔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주님의 옷은 군병들이 제비 뽑아서 나누어 가졌고, 벌거벗긴 채로 십자가에 높이 매달려 “다 이루었다.” 선포하셨습니다.

이 외침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온전히 성취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인간구원의 역사가 완성되었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최종적인 성취였습니다. 사단은 유대인과 빌라도를 동원하여 예수님을 죽임으로서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훼방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 일을 통해 구속계획을 온전히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승리이고 ‘다 이루었다’는 예수님의 선언은 승리의 외침이었습니다. 이 승리의 외침은 3일후 예수님의 부활로 확증되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그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의 이 외침으로 우리는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이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이 세상에 와서 자기의 일을 다 이루고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개인이나 어떤 공동체의 목적을 완전히 다 이룰 수 없는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자기의 꿈을 완전히 이루었거나 후회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꿈을 접고 무덤으로 갑니다.

하지만 주님은 세상에 오신 목적을 모두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주님 안에서 꿈을 꾸면 예수님이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찬송) 151장

 

7.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눅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예수님이 가상칠언 중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의 영혼을 부탁하는 기도였습니다. 마지막 숨을 쉬는 운명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셨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 잘 하시던 분이 마지막 운명의 순간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손들에게 교회 나가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허무하고 불행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십자가에 달렸을 때 구원받은 한 강도와 반대되는 사람입니다.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진실하고도 간절한 신앙을 고백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말을 어떻게 남기시겠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오늘 저는 이렇게 남기고 싶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함께 하신 여러분들께 감사합니다. 천국에서 만납시다.’

예수님은 아버지란 말씀을 즐겨 사용하셨습니다. 산상설교 가운데서 17번, 유월절 다락방에서 45번(요 14, 16장), 요한복음 17장에서 6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상에서 마지막 말씀을 아버지로 끝맺으셨습니다. 요즘은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떨어져 힘없는 아버지, 초라한 아버지의 모습이 생겨나고 있지만, 예수님은 그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존귀한 이름입니다. 능력있는 이름입니다. 권세있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얼마나 큰 특권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감히 부를 수조차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도 하나님 아버지를 부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도와주시는 든든한 보호자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많이 부르면서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144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중에도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상칠언 속에 예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1)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2)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3)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4)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5)내가 목마르다.

6)다 이루었다.

7)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을 생각하며 주님의 은혜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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